궁금해요? 궁금하면
희극인이라는 직업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공개코미디 무대가 사라지면서 예능인이라는 범주로 묶여서 불리더라도, 개그콘서트와 웃찾사를 보고 자란 사람으로서 희극인들의 자부심을 알아주고 싶다. 무대 뒤에서 끝없이 회의를 하며 아이디어를 짜내고, 분장을 한 채 사람들 앞에서 진땀을 흘려가며 연기를 하는 희극인들의 재능과 노력을.
"개그맨 같아."
초등학생 시절 가장 인기가 많았던 친구는 단연 개그맨 같은 친구였다. 익살스러운 말투와 표정을 넘어 재치와 센스가 돋보이는 친구들. 그들은 제 한 몸 바쳐 남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희생정신과, 우스꽝스럽게 망가져도 창피해하지 않는 용감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어느 집단이든 웃기는 사람들은 꼭 있었다. 개그도 코드가 맞아야 재미있건만 어찌 됐든 개그 욕심이 있어서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던 사람들. 그러나 그중에서 내가 마음이 갔던 사람은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잽을 날리듯 드립을 치는 사람, 다른 사람을 희화화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 떠벌거리며 큰 웃음소리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여유 있게 흐름을 이어가며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
이런 이유로 개그우먼 중에서는 장도연, 개그맨 중에선 허경환을 좋아한다. 특히 허경환은 허를 찌르듯 본인만의 유행어를 틈틈이 들이미는데, 느린 리듬감의 말투 때문인지 그것조차도 여유롭고 자연스럽다. 분명 커다랗지만 부릅뜨지 않고 반쯤 뜬 것 같은 눈에서도 여유가 느껴진달까. 무엇보다 그의 진정한 여유로움은 대화 방식에서 드러난다. 어떤 조롱과 질문도 일단 받아주는 자세에서.
허경환이 유일하게 조롱받는 부분은 키가 작다는 점인데, 키 큰 여자가 바라보는 허경환은 충분히 멋있는 사람이다. 키 큰 여자가 키 큰 남자를 간절히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여유 있는 품이다. 물리적인 품이 커야 나를 감싸 안아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간의 로망을 내려놓고 옆으로 누워서 밑으로 한없이 내려가 안기면 된다는 장도연의 명언(?)처럼 안기려면 어떻게든 안길 방법이야 있다. 중요한 건 영혼까지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결국은 받아들이는 자세다. 키가 작다는 점도 나의 한 부분으로서 받아들이고, 남들의 조롱도 받아들이고, 출연자로서 애매한 자신의 위치도 받아들이고, 그 많은 유행어 하나 몰라주는 사람도 받아들이고, 퇴근 후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질문 폭탄과 후배들의 저질스러운 개그도 받아주는 그의 자세에서 넉넉한 품을 느낀다. 마침내 그의 진가를 많은 이들이 발견하고 있는 것 같은 요즘, 바라건대 그가 여유를 잃지 않길 원한다. 파도에 휩쓸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파도타기를 마음껏 즐기는 멋진 서퍼가 되기를.
* 사진 출처: 궁금하면 허경환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