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으로 향하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좁은 보도블록으로 인해 한두 발짝 차이로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고 있었다. 조잘조잘 대화를 하면서.
분명 옆에서 함께 걷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그 평화가 깨졌다. 딸아이의 앞니가 깨지면서.
재수 없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앞으로 넘어졌으니 앞니가 깨진 것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 억울했다. 순간적으로 짚을 수 있는 두 손만 주머니에 넣지 않았어도 앞니까지 바닥에 닿지는 않았을 텐데, 나는 왜 장갑을 챙겨주지 않았던가.
아니 그보다도 내가 바로 옆에 있었는데 나는 왜 딸을 잡아주지 못했던가. 휴일에 도서관에 가는 게 뭐가 그리 급하다고 겨우 한 발자국을 앞서 걸었던가. 딸이 얼굴을 그대로 바닥에 갖다 박기까지 나는 옆에서 무얼 하고 있었던가. (맹세코 핸드폰 따위를 들여다보고 있진 않았다) 순발력이 좋은 남편이라면 달랐을까.
아무 소용도 없는 생각들을 지금에 와서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나름 꽤 침착했다. 아프고 놀라서 크게 우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러게 좀 조심하지 그랬어' 라며 눈치 없이 한마디 하는 아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 발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외상이 심하진 않으니 바로 앞에 있는 도서관 화장실로 들어가서 눈물+콧물+피를 씻겨내 보기로 했다.
그리고나서 위와 같이 사진을 몇 장 찍어서 치과 의사인 고모부(나는 시누이를 아이들과 같이 고모로, 시누이의 남편을 고모부라고 부른다)에게 전송했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단체 카톡방 대신 고모부에게만 전송해 놓고 상태를 알렸다. 다행히 피가 많이 나진 않고 흔들림이 심하지 않아서 응급상황은 아니고, 미관상 깨진 부분을 잘 다듬을 수 있는지를 문의했다.
고모부는 특유의 덤덤함과 함께 첫째 조카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조카도 그것보다 더 깨졌는데 살짝 다듬어 쓰고 있다고. 자주 만나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던 나는 숙모로서 괜한 미안함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다. 해맑은 조카의 미소를 떠올리며. 그간 앞니가 깨졌다고 해서 입을 가린다던지 하는 모습은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고모부와 카톡 하고 있는 사이에 딸은 조용히 책을 보고 있었다. 어쨌든 일차 수습은 했지만 미관상 치료라는 이차 수습과 그전에 혹시 모를 엑스레이 촬영까지 마음이 완전히 놓이진 않았다.
"속상하겠지만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받아들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어요."
고모부의 위로는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넘어진 딸아이를 부축하던 순간 나는 두려운 마음을 붙잡고 속으로 기도했다. 더 심하게 다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가 크게 부러지거나 완전히 뽑혀 나가지 않고, 입술과 얼굴에 흉이 날만큼 꿰매야 할 정도로 찢어지지 않은 것에. 진심이었다. 그 정도의 상황이었으면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 같다.
이 사이사이로 새어 나오는 피를 보고, 마음을 뒤집어놓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동안에도 바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갈지, 우선 지켜볼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내 마음은 우선 진정시키고 지켜보고 싶었는데도, 처음 겪는 상황에 사이렌처럼 울려대는 딸의 울음소리는 당장이라도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지혜를 달라는 기도를 한 뒤에 고모부가 생각나 연락했던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는 말은 매우 현실적이라 슬프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엔 되려 마음을 단단히 하는 위로가 되었다. 이뿐이겠는가.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이.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릴 만큼의 사건들도 이렇게 순식간에 일어나 버린다면, 받아들이는 데 과연 얼마큼의 시간이 걸릴지 가슴이 아득하게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이 순간조차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현재의 삶이 과거를 수습하기 위한 시간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인 순간부터는 이전보다 더 단단해졌다는 걸 알아야 한다. 쓰라린 경험은 내가 돌아갈 수 없는 과거만큼이나 현재를 끈질기게 붙잡을 수 있는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건 내 영역 밖의 일일지라도, 넘어졌을 때 짚을 손이 있도록 앞으로는 반드시 주머니에 손 넣지 말기. 한쪽 손이라도 꼭 빼놓기. 장갑 끼고 다니기. 딸과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