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작된 '작지만 큰' 변화는 매일 독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브런치 독서챌린지가 아니었다면 하루쯤은 빼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이틀, 삼일이 되었겠지. 간헐적으로라도 독서는 했겠지만 단언컨대 지금과 같진 않았을 것이다. 단순히 독서량과 독서 시간이 아닌 독서를 통해 뻗어 나온 세계가 그러하다.
마치 아이들이 스티커를 모으는 것처럼 즐겁게 참여했다. 독서 시간을 기록하면 찍히는 스탬프가 쌓여갈수록 뿌듯하기도 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사유하는 시간이었다. 그것은 마음에 남는 문장들을 한 줄씩 기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오늘은 어떤 문장을 만날까 설레기도 했다. 때로는 문장이 아닌 삶이 만져졌다. 소설 속 인물의 삶에 사무치는 날들이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 한 달을 채웠다. 체감상 흐르기만 하던 시간을 채웠다는 기분은 기실 오랜만이었다. 운동장을 십오 분씩 뛰던 것보다 훨씬 쉽게 채웠다. 게다가 어플로 십분, 이십 분 기록한 시간보다 앞뒤로 더 많은 시간을 독서에 할애했다. 주로 읽었던 책이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이라서 자연스레 독서량이 늘었다.
이렇게 만난 책과 작가와의 만남은 내게 그야말로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새해가 되면서 특별한 목표를 세우지 않았던 내가 벌써 일월이 갔네, 이월이 가네 하며 크게 아쉬워하지 않은 이유다. 도서관 책장을 서성이다가 전에 알지 못했던 작가를 우연히 만났고, 그 작가의 책을 읽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책을 통해 들여다본 타인의 삶은 내가 근 십 년 간 가졌던 어떤 만남보다도 내밀하고 깊은 만남이었다. 다시 누군가를, 누군가의 삶을 돌아볼 용기를 주는.
그러니까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인 셈인데, 독서챌린지 이벤트에 당첨되어 브런치팀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키링과 자석 책갈피까지 동봉되어 온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기념으로 독서대에 살포시 올려두었다.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북커버로 소중히 감싸서 읽어야겠다.
사실 <가녀장의 시대>는 작년에 이미 읽었다. 화려한 표지에 끌려 선택했다가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고, 다양한 사람을 관찰하는 시점이 인상적이라서 작년 소설을 쓸 때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책을 받고 싶어서라기보단 챌린지 자체에 의의를 두고 참여했는데 막상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아보니 기분이 좋았다. 스페셜 에디션이라 달라진 표지가 새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새로웠던 건 이슬아 작가의 필체다. 천재는 악필이라더니 역시 이슬아 작가는 천재인가 보다. 처음 가녀장의 시대를 읽고 느낀 점은 '책이 맛있다'였는데, 그녀는 글을 맛깔나게 쓸 뿐만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천재가 맞다. 인물과 배경에 자신의 실제 삶을 반영한 소설이라서 더 재미있게 읽었다. 다가오는 삼월에 웅이와 복희, 슬아를 책 속에서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반갑고 설렌다.
한편으로는 진짜 낯을 마주해야 할 나의 사람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어쩌면 도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펼치면서도 그렇기에 더 파고들 수밖에 없다.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이 나는 오늘도 책 속으로 숨어든다. 내가 이 인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 자기 의심으로 시작한 독서는 작가의 힘을 빌려 와 기어이 희망을 발견해 낸다.
모든 것은 작가의 시선에 달려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그가 보여준 인물의 삶 일부를 기꺼이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그것은 지극히 일부가 아니던가-나머지 삶에 대해서도 읽어나갈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을 실제 현실에 적용해 보자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용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 소설을 한낱 허구라고 치부했던 과오를 지금에서야 감히 수정해 보자면, 외면하고 싶은 인생에 대한 시도라고 말하고 싶다. 수많은 인생 속에서 나라면 어떨까, 혹은 그 사람도 이럴까 하는 수많은 가정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나는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