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 겸손해지는가

by 조이


사람은 언제 겸손해지는 걸까. 겸손이란 뭘까. 풀이 죽어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풀이 죽을 대로 죽어버린, 그러나 여전히 자아가 살아 날뛰는 자의 덧없는 질문이다.


모든 것이 평안했다. 평화로웠다. 연휴는 달콤했으나 그 속에 기대어 쉬던 나는 금세 씹던 껌처럼 늘어져버렸다. 얼마 전엔 누군가 씹다 뱉은 껌이 정말로 내 신발에 붙어있었다. 걸을 때마다 쩍, 쩍, 소리가 났다. 기분이 오염되었다. 다른 일로 별안간 예민해진 탓에 쏘아붙인 나의 거친 말들에도 상대의 기분은 그랬을 것이다.


그 상대는, 가장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었다. 나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들. 남편에게는 이미 못 봇 꼴을 다 보였으면서도 아이들 앞에서는 처음이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그런 거친 말을 듣게 한 것이. 그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평소에도 아이들에게 사과를 자주 한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쉽게 용서를 한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었지만,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제야 새삼 깨달았다. 사과를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나를 먼저 받아들여야 가능하다는 것을.


그날 나는 종일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무엇도 보지 않을 것처럼. 그러는 사이 남편은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고,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남편을 만나기 전, 고립-은둔 생활을 할 때 어둡고 작은 방에 누워 며칠을 그러고 있던 때가 생각났다. 어두운 관에 누워있는 것 같은 기분. 죽은 사람의 얼굴을 덮는 멱목처럼, 나는 이불을 끌어올려 내 얼굴에 덮곤 했다.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하고.


다행인 걸까. 그때였다면 삼일이고 사일이고 그 방 안에서 벗어나질 못했을 텐데-생리현상만 겨우 해결한 채 다시 그 속으로 파고들었을 것이 뻔한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다. 다음날 남편은 평소처럼 먼저 출근을 했고, 나는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했다. 출근하기 전 겨우 내뱉은 사과에 아이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가 지나도 많이 놀랬던 마음은 그대로일 터였다. 처음 보는 엄마의 모습이 아이들은 영 낯설었을 것이다. 개학 날이었다. 새로운 모든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날, 필경 두려운 마음으로 맞이했을 엄마의 민낯을 보여주고 말았다.


아아, 아이들아. 너희는 내게 다행이고 구원인데, 나는 너희에게 어찌 이런 만행을 저질렀을까. 약하고 약한 너희보다 내가 굳센 것이 무엇일까. 괴물같이 포효한 엄마라는 존재를 차마 부인할 수 없어서 급히 베풀어버린 너희의 용서를 엄마는 어디에 간직해야 할까. 마음의 보석함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사서 넣어두고 싶어라. 까맣게 변해버린 마음속에서 끝내 부패되지 않을 견고한 보석함이 있다면.


남편은 여전히 나를 아내라는 이유만으로, 또한 아이들의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감싸 안았다. 가족 구성원들이 애써 지켜준 덕분에 다시 찾아온 것 같은 평안한 일상 속에서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풀이 죽어서 그런 것이 분명한데 행동거지를 보니 썩 겸손해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은 언제 겸손해지는가. 무엇이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가.


얼마 전 브런치 작가님 중 한 분께서 겸손에 대해 '자신의 밑천을 정확히 아는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여유'라고 정의한 문구가 생각났다. 내가 그동안 여유를 부린 거였구나 싶다. 나름대로 그간 여러 상황 속에서 알게 된 나의 밑바닥을 반질반질 닦아가며. 지금의 나는 여유롭지 않지만, 새로운 밑천을 발견하게 된 건가. 이렇게 생각하니 우습게도 위안이 된다. 자신의 밑천을, 자신의 밑바닥을 정확히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거겠지 하고.



늘푸른 노병 작가님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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