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형은 아니더라도
이십 대 시절의 어느 화이트 데이, 못생긴 걸로 유명했던 동기에게 초콜릿을 받았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찾아와서 전해 준 그것은 파베초콜릿이었는데, 직접 만들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맛있었다.
화이트데이였음에도 부담스럽지 않게 받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나만이 아니라 두세 명의 여자 동기들에게 함께 돌렸기 때문이다. 초콜릿을 선물 받은 자들은 그에게 비교적 친절하게 대해주었단 공통점이 있었다.
다른 동기들의 짓궂은 놀림에도 그는 특유의 바보 같아 보이는 웃음만 짓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사랑의 고백보다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그의 존재를 깎아내리지 않았던 것과 그의 발언을 존중했던 것 정도에 대한 게 아니었을까 하고.
그는 대체로 성실했고 외모와는 달리 음흉한 구석이 없었다. 한 판을 가지런히 채운 네모반듯한 초콜릿은 그의 면면 같기도 했다. 그가 장가갈 수 있을까 염려하던 주변인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그는 예쁜 처자와 결혼 후 아이까지 낳아 잘 기르고 있다. 그가 고마운 아내와 아이의 몫을 부지런하고 가지런하게 챙기며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어느덧 나도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하며, 달콤 쌉싸름한 사랑의 맛을 알게 되었다. 마냥 달콤하기보단 카카오처럼 쓰디쓴 인내와 고통이 적절히 녹아든 초콜릿과도 같은. 고급스러움이 함유된 깊은 초콜릿 맛은 내게 황홀함보단 기분 좋은 안정감을 선사한다.
파베초콜릿은 특별한 모양틀이 필요 없다. 녹여낸 초콜릿을 적당히 네모진 통에 담아 굳힌 후 먹기 좋게 자르면 된다. 투박한 컷팅에는 정성이 깃든다. 나는 화려하지 않아도 파베초콜릿같이 가지런한 사랑을 알고 있다. 끓어오르는 심연에서 자신을 녹이고, 단단히 굳히고, 가지런히 조각낸 채 언제든 꺼내 먹도록 내어주는 사랑을.
작년 연말부터 쇠약해지다가 결국엔 입원해 계신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입이 쓰다는 아버지를 위해 달콤한 간식을 골랐다. 어릴 적 아버지가 타지에서 내게 보내온 빨간색 하트모양 틴케이스에 담겨있던 예쁜 초콜릿이 떠올랐다. 온전한 내 몫의 사랑이었다. 꿈꿀 수 없던 가난 속에서 그가 내게 선사한 낭만이었다. 마침 화이트데이라 초콜릿을 살까 하다가 입이 쓰다는데,라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고급스러운 걸로 드리고 싶지만 단맛이 강할수록 싸구려초콜릿이라는 게.
고민 끝에 양갱세트를 손에 넣고 보니 묵직하다. 파베초콜릿처럼 가지런하면서도 말랑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간식이다. 개별포장되어 있으니 아빠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씩 아껴드시려나. 이마저도 입에 쓰다고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진 않았길 바랄 뿐이다. 그 시절 그가 내게 선사한 낭만처럼, 지금 그가 겪어내고 있는 고통이 마음속에서나마 사르르 녹아버렸으면.
바라건대 내가 하는 사랑은 특별한 날에만 선사하는 화려한 사랑이 아니라,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부요하고 부지런한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말로 완벽을 의미하는 육각형은 아니더라도 사각형으로 가지런하게 누워있는 파베초콜릿처럼, 밤양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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