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오만일 수도 있다. 스스로 이해를 돕기 위해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들어줄 마음이 없다면.
"이해가 안 돼."
그러니 네가 이상하다는 식의 눈빛, 혀를 차듯 내뱉는 말들은 나를 이해시켜 보라는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수학문제를 풀 때 이해가 안 되면 내 머리가 나쁘다고 탓할 거면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땐 왜 성급하게 상대방 탓을 하는지.
수학문제처럼 정답이 없는 거라면 더더욱 조심스러워야 하는 것 아닐까. 사람마다 살아온 삶과 생각이 다를 수 있으니까. 나도 살아봤자 나의 삶이었을 뿐인데, 아직 다 살아본 것도 아닌데, 왜 나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서만 상대방을 재단하고 있나. 나는 나일뿐이라서 나의 삶과 경험에 비추어서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 한계를 인정한다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성숙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많은 어른들이 증명해 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경험이 많다고도 성숙한 건 아니다. 경험이야 더 많았을지라도 인생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지혜가 깃들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그거 나도 해봤는데'라는, 어설픈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존재를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내게 묻는다. 사실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하고. 그렇다고 해서 뭐 잘못된 건가. 그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듯, 나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평생 이해하려 애쓸 필요 없이 갈라서면 될 것을. 하다가도, 그럴 수 없는 존재가 나는 아프다.
나는 결국 내가 더 소중해서, 내가 다칠까 차마 받아들이지는 못해도, 누군가에게는 필경 받아들여져야 할,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을 그 사람을 생각하며 눈물을 머금고야 만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시는 존재를 함께 떠올리며. 내가 담을 수 없는 그 사람을 그분께 부탁한다.
보소서 주님 나의 마음을
선한 것 하나 없습니다
그러나 내 모든 것 주께 드립니다
사랑으로 안으시고 날 새롭게 하소서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내 아버지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 MARKERS,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