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불과한 출산
산 넘어 산이라는게 이런 걸까
40주가 되기 전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기가 뱃속에서 더 커질수록 출산이 더 힘들어진다는 조언을 들었다. 3.5kg 이상인 아기는 부담이 되어서였다.
6월 27일 저녁에 입원. cytotec이라고 자궁을 부드럽게 해주고 문을 열어준다는 알약을 4시간에 한 번씩 경구 투여했다. 오후 6시 20분, 10시 20분, 새벽 2시 20분. 오전 6시 30분부터 pitocin이라는 프로글락스타딘 호르몬이 들어있는 주사제를 맞기 시작했다. 새벽 3시 반에 이미 양수가 좀 새어나왔고 6시쯤엔 4cm 정도 열렸다는 진단을 들었다. 초산인 산모들은 자궁문이 3cm만 열려도 아프다고 하는데 별 무리없이 4cm가 열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겠구나 싶어 좋아했다.
마의 4cm. 무통주사를 맞아도 되는 시기. 아침 8시 반부터 진진통이 왔다. 트럭이 배위로 올라가는 느낌이란 표현. 송곳으로 배를 찌르는 느낌이 그위에 더해진다. 내진은 소변줄을 꽂아놓고 그 안을 더 휘젓는 느낌. 대체 마취과의사는 언제 와서 등에 무통주사를 꽂는거야! 왜 안 와! 진진통을 30분 겪으면서 느꼈다. 아. 난 무통빨이 꼭 필요해. 무통주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언제 진통이 왔냐는듯 배가 잠잠해졌다. 동시에 하반신도 움직이기가 힘들어졌다. 반쯤 마취가 된 상태였나보다.
자궁문이 생각보다 빨리 열려서 그날 오후 6시쯤에는 아기가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나머지 6cm 열리는데 11시간이 걸렸다. 10cm가 열리면 출산이 끝난 줄 알았다. 친구 중엔 힘 두 번만 줘서 아기가 30분 만에 나왔단 얘기를 듣고 나도 그럴 줄... 남들 경험담이나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출산장면은 짧기 그지없어서 그런 줄만 알았다...
힘주기가 시작됐다. Push time. 수축에 맞춰 힘을 주면 아기가 내려오고 그게 멈추면 다시 내려온 만큼의 반이 올라간다. 출산은 자궁문이 열려서 자궁에 있는 아기를 밀어내는 과정이다. 분만실에 나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자기는 딸 낳는데 push가 다섯시간이나 걸렸단다. 초산인 나도 빠르면 30분 오래 걸리면 4시간 정도 걸릴거라고...
수축이 올 때마다 똥이 마려운 느낌이 든다. 자궁이 수축하면서 괄약근도 영향을 받나 보다. 밀어내는데 한 시간 반. Push를 함께 해주는 간호사가 아기 머리가 얼마나 내려왔는지 확인할 수 있게 거울을 설치해주셨다. 힘을 줄 때마다 아기 머리가 더 내려오는게 보였다. 거의 다 내려왔다고 생각이 될 때쯤 담당의가 분만실로 들어와 체크하셨다. 무통주사를 맞아도 힘주는 시간 내내 아팠는데 고통을 더 끌고 싶지 않았다.
"Can I vacuum him out?"
빨아들이면 끝난다. 다음번 수축에 머리가 나오길! 미국이라 회음부절개를 안 하는 건지 미리 해달라고 얘기를 했어도 긴박한 상황이라 못한건지 모르겠다. 아기가 나올 때 회음부가 찢어지는 고통따위 느끼지 못했다. 대신 골반이 벌어지고 조그마한 산도를 통해서 아기가 나오는 그 고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여태까지 안 나왔던 악쓰는 고함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누가 봐도 신생아머리는 작지만 좁은 산도를 통해서 나오는 아기머리가 너무 커 보였다. 이러다 자궁까지 딸려 나오는 게 아닐까? 출산하는 동안 느끼는 고통의 하이라이트! 진진통이 100이라면 나오는 순간은 1000이었다.
유도분만으로 그 전날 오후 5시에 입원해서 진진통이 오는데 15시간 반. 진진통에서 자궁문이 다 열리는데 12시간. 출산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힘주기는 2시간. 진통부터 총 14시간 걸렸으니 초산에 순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둘째는 없어.
아기가 나오자마자 눈물이 흘러나왔다. 고통, 드디어 만났다는 감격, 내가 엄마가 된다는 신호. 온갖 감정이 뒤범벅된 상태. 태어나자마자 우는 아기를 내 상반신 위에 올려주었다.
"아가, 엄마야. 울지마."
신기하게도 아기는 울음을 바로 그쳤다. 그리고 그다음 단계인 유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