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온도를 묻다

by 조이랑

내 첫 직장은 개인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대기업이었다. 덕분에 계절마다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참 많이 했다. 종류도 다양했는데, 겨울이 되고 주위에서 김장 소식이 들려오니 김치와 관련된 봉사활동들이 떠오른다. 역시 한국인에게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모양이다.


첫 번째는 쪽방촌 어르신들께 김치를 포함한 여러 물건을 배달하는 일이었다. 당시 부서에서 매년 꾸준히 해오던 활동이라 몇 년간 번갈아 참여했다. 우리가 담당한 곳은 영등포 쪽방촌. 처음엔 쪽방이라는 단어만 듣고 산동네 어디쯤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시장 골목의 평범해 보이는 건물들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집 하나가 등장할 것 같은 대문으로 들어가면 한 평 남짓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열악한 환경이 펼쳐졌다.


어르신들은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셨다. 그토록 열악한 환경에서도 사탕 하나라도 쥐어 주시려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활기찬 시장 뒤로 그런 풍경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내가 한없이 죄송했다.


두 번째는 김장을 직접 담그는 봉사활동이었다. 매년 겨울, 여의도 공원 한복판에 여러 부서 직원들이 모였다. 절임 배추와 양념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에게는 배추에 양념을 골고루 바른 뒤 통에 담는 간단한 일이 주어졌다.


그날 누군가 보온병에 믹스커피를 담아왔다. 추운 날씨 속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 다들 김치를 담그며 웃고 떠들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일상을 얘기하다 보니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김치… 깨끗할까?’

도심의 공원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했으니 위생 상태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사실, 공장에서 깨끗하게 만든 김치를 사서 보내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우리가 김치를 담그는 동안 높으신 분들은 사진 찍기에 바빴고, 봉사의 대상이었던 이웃들보다는 우리만 즐거웠던 시간 같았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 봉사활동을 외부에 자랑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다. 때로는 그런 모습이 대중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기도 한다. 하지만 봉사활동이 진짜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어쨌거나 봉사활동은 대중을 위한 ‘보여주기’에 앞서 그 대상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연말 봉사활동조차도 봉사보다 보여주는 것이 먼저인 기업이, 진정으로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와 상품을 만들거라 기대할 수 있을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 또한 관심은 고객이 아니라 상사였다. ‘고객이 먼저’라는 구호를 늘 외치면서도, 부장님, 팀장님 마음에 들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그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눈치를 보며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일하고 싶다. 의미 있는 일에만 내 시간을 쓰고 싶다. 내가 즐겁고, 그 일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런 일. 그런 하루하루를 만들어가는 게 진짜 삶이 아닐까, 조심스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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