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허락된 시간

by 조이랑

침실 창문에 드리워진 베이지색 커튼 아래로 빛이 흩어지는 걸 보니 아침인가 보다. 이제 일어나 볼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좀 더 자기로 마음을 먹고 잠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서둘러 눈을 감는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날이다. 게으름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는 어쩜 그렇게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의 바닥까지 떨어진 듯한 체력과 집중력을 타이레놀과 커피로 억지로 끌어올려가며, 결국 그날의 업무를 해내곤 했다. 지난날의 나를 떠올리면, 초인이라도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게으름을 허락한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해야 할 일도 정해두지 않는다. 졸리면 자고, 무료하면 드라마를 몰아본다. 이 날만큼은 성실함에서 잠시 손을 놓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다독이며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게으름을 온전히 즐겼던 것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그날이 다가오면, 밑도 끝도 없는 우울감이 밀려왔다. 바닥난 체력에 눈을 뜨기조차 힘들고, 반나절이면 후루룩 읽었을 법한 추리소설조차 한 줄씩 더듬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그 와중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과, 무언가를 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쯤 되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나는 이토록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 걸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싹이 움트고 꽃이 피며 화려하게 세상이 물드는 시간. 매화와 목련,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벚꽃을 지나 철쭉까지 꽃들이 줄지어 피어난다. 봄에 돋아나는 새싹의 연둣빛은 다른 계절에는 찾을 수 없는 생명력을 담고 있어 더 귀하다. 그런데 이러한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겨울이 필요하다. 겨울은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나목의 시간. 그 시간이 있기에 봄날의 새싹이 더욱 빛난다. 봄의 연둣빛 생명력은 겨울이 길고 깊었기에 더 귀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도 계절의 시간에, 자연스러운 몸의 흐름에 순응해 보자. 타이레놀과 커피로 버텨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대신 게으름의 시간을 기대하며 나머지 시간을 더 충실히 보낸다. 정주행 할 드라마는 게으름의 날을 위해 남겨두고, 그날의 몫까지 바쁘게 움직인다. 직장인의 삶을 뒤로한 채, 나의 시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활용하다는 것은 매일의 할 일의 양과 질 또한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나에게는 더 많고 복잡한 일을, 에너지가 부족한 나에게는 더 쉽고 단순한 일을 배정한다. 그리고 에너지가 사라진 나에게는 게으름을 허락한다.


그리하여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되는 귀한 시간. 그저 멍하니 흘러가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게 오늘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선택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나눔의 온도를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