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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빛 Oct 02. 2019

책임감이 나를 누를 때

버리고 싶은데 버릴 수 없는 강박

글감 : 버려야 하지만 버릴 수 없는 것


 나는 가끔 피터팬이 사는 원더랜드에서 살고 싶었다. 배가 고플 때 상상력을 발휘하면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펼쳐지고 요정의 가루면 나는 하늘을 날아 어디든 갈 수 있는 원더랜드. 내가 할 일은 후크를 피해 잘 놀고 잘 자면 되는 것이다. 우리 집은 어릴 때 부모님이 바빠 내가 누군가를 챙겨야 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피터팬이 되는 상상을 했다.


 어른이 되지 못하고 아이의 모습으로 사는 피터팬.  그래서 그런지 동화 속에서 피터팬의 그림자는 자꾸만 도망간다. 어릴 땐 그 도망가는 그림자를 잡는 피터팬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웬디가 그림자를 꼬매주며 달래고 또 웬디를 만나 성장하는 피터팬을 보면서 그림자와 하나가 된 피터팬이 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림자가 어른의 책임감쯤 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책임감쯤 도망가버리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자 하면 사회의 구성원이 되려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역량이다. 그래서 피터팬은 어른이 되긴 싫었지만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그림자(책임감)를 잡아야 했으리라.


 심리검사를 하면 나는 이 책임감이 너무 강해 강박처럼 자리 잡고 있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진다는데 나는 너무 강한 책임감을 좀처럼 내려놓을 수가 없다. 아주 오래 있어서 오히려 내려놓는 것이 불안하다.


 그래서 울고불고 한 번 못한 내 유년시절로 돌아가 책임감을 버리고 아이처럼 살아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후회를 덜하지 않을까?  조금 더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이미 또 다른 역할을 부여받고 또 다른 책임을 지고 사는 내가 그럴 수는 없어서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게으름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거리며 사는 삶, 그리고 생떼 한 번 부려보는 삶.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겠지 하며 허허 웃으며 현재를 살아간다. 그림자가 있기에 내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겠지 하면 내 길 앞에 선다. 


 오늘도 여전히 나의 그림자를 돌아보며 서 있다.


 


 이 글은 공대생의 심야 서재 108일 글쓰기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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