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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빛 Oct 14. 2019

5. 아이는 감정이라는 옷을 입는다

부모가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하는 이유

 아이를 낳고 처음 만난 아이를 보고 나는 아리 달송 했다.


 "아가야 넌 누굴 닮은 거니~?"


 아이가 하는 것이라고는 우는 것과 어디를 보는지 모를 멍~한 표정뿐이었다. 지금까지 신생아를 본 적이 없었기에 흡사 외계인과 비슷한 쭈글쭈글한 모습과 눈을 맞추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 아이가 내 뱃속에 있던 그 아이가 맞는지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모성애라는 것이 나에게 없는 것이라고만 느껴졌다.


 매일 우는 아이의 모습을 보다가 배냇짓이 아니라 아이가 눈을 맞추고 웃는 모습을 보았을 때 처음으로 아이한테서 행복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가면 아이는 감정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다양한 표정을 짓게 된다.


 불쾌에서 쾌로, 낯가림으로, 짜증으로 쑥쓰럼으로, 삐짐, 성취감, 창피함, 분노, 즐거움, 사랑, 미안함 등 다양한 감정을 입는다. 하지만 어른들이 잘 관찰하지 않으면 이러한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아니면 그 감정을 부정적으로 여겨 무시하면 그 감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엄마로서 제일 힘들었을 때는 아이가 말도 하나도 못하고 분노나 짜증을 드러내느라 한 시간이고 드러누워서 울 때였다. 그럼 나는 약간 거리를 두고 기다렸다. 지금은 그 횟수가 많이 줄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럴 때 당혹스럽고 감정은 받아주되 안된다는 것을 몇 번이고 이야기해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퇴근한 나에게 까꿍 놀이를 하며 신이 나서 어쩔 줄 모르던 아이가 '이놈~'하면 도망가는 아이를 잡자 아이는 꺄꺄 웃으며 갑자기 내 팔을 물었다. 아이는 신나는 감정을 드러낸 것이지만 나도 모르게 너무 아파서 아이의 엉덩이를 때리며 나에게서 멀리 내려놓았다.


 아이는 아팠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한 행동에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잘못하고 미안한 것은 바로 사과를 한다.) 하지만 엄마를 무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선을 그어주었다. "엄마가 아프니까 미안하다고 표현해줘."라고 하자 아이는 막 울다가 나를 꼭 안고는 "미안 미안"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마 혼나는 분위기라서 한 습관적 '미안'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놀이를 시작하고 한참 뒤에 아이 손을 모기가 물었는지 긁기에 "모기 물렸어? 에이~ 엄마 속상해. 우리 아들을 물다니! 엄마가 모기 잡아줄게."라고 하자 아이는 갑자기 내 팔의 옷을 걷고는 내 얼굴을 쳐다보고 "나, 앙, 미안(내가 물어서 미안해)"이라고 말했다.


 우리 선배가 어릴 때 화가 나서 친구들이 하는 욕을 했단다. "에잇! 씨 x." 소리를 지르고 나니 화가 조금 가라앉았다고 했다. 그것을 본 어머니가 "00아! 소리를 지르고 나니 좀 풀렸니? 그런데 씨 x는 신발을 잘못 이야기한 것이란다. 그럴 때는 신발, 슬리퍼라고 크게 외치는 거야."라고 알려주셨다고 했다. 선배는 그 후로도 화가 나면 옥상에 올라가 "에이, 신발, 슬리퍼.!"라면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화가 나는 감정을 잘 받아주었고 나쁜 말 대신 다른 말을 외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게 방향을 바꾸어 주었다. 선배가 어릴 때 욕을 한다고 화나는 감정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리를 지르면서 그 스트레스가 풀리고 표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선배는 지금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노래방에 간다.



 우리 아이가 잘못할 때 미안이라는 행동을 가르치고 '미안'이라는 단어를 100번은 더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미안하다는 감정을 이해하고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고 표현할 때 우리 아이는 사람에게 달려와 안긴다. 우리 집은 '사랑해요'를 안아주는 것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또 고마울 땐 손을 잡고 고맙다고 표현한다. 화가 날 땐 잠시 그 자리를 피하고 생각이 정리되면 말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은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할 때 가능하다.


 사람들은 감정이 타고난 것,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감정을 배울 수 있는 환경에 놓여야 한다. 감사함을 표현하고 미안함을 표현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등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화가 나면 엄청나게 흥분하고 분노를 표출하는 편이었다.  내가 어릴 때 본 화를 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다 이러했다.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때 화가 나면 물건을 잘 집어던졌다고 했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피해자들이 등장하면서 동문회에서 엄청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성인이 된 나는 물건을 던지지는 않지만 1년에 한두 번은 학교에서 학생에게 소리를 지르며 폭발을 할 때도 있고 지금도 가끔 아이를 향해 화를 버럭 내는 나를 멈추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더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고민하고 생각한다.


 아이가 이 감정의 옷을 입는 것을 지켜보고 잘 입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아이가 감정을 입는 동안 부모도 어쩌면 자신이 입은 감정이라는 옷이 잘 정돈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옷을 다시 고쳐 입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은 부모가 건강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야 아이도 그것을 보고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하고 또 생각한다.


아이도 나도 건강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아이와 싸움을 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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