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업무 성과는, 보이는 멘토와 보이지 않는 멘토의 합작품이다]
이렇게 양극단의 혼란스런 지지를 받으면서 나의 내면에 이미 마법 능력이 있음을 발견해 가는 마법사처럼, 어떤 두려움도 용기를 가지고 이겨내며, 직관을 믿고 결정하여 나아갔다. 조직을 위해 옳다 여겨지는 목표를 향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면서 거침없이 일했다. 워라벨 (Work&Life Balance)이라는 단어가 생기기 이전인지라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통용되었으나, 그럼에도 지금이나 그때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퇴근 시간을 몇 시 이렇게 정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퇴근 시간을 정하는 나의 방식은 그날 하루 계획했던 일을 모두 마쳤는가에 있었다. 12시가 넘거나 말거나 회의록과 정리된 보고서를 송부하는 것이 예사였지만, 마지막 일을 마치고 목록에 밑줄 쫙 긋고는 PC 전원을 오프할 때면 뿌듯하고 보람찼었다. 내가 재미있어서 몰입하여 일하면 그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놀이가 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주어진 시간을 억지로 채우면서 반복하는 일은 노동이 된다. 일을 하는 과정이나 성과를 통해서 새로운 깨달음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노동보다는 놀이에서다. 직장인의 궁극적인 꿈은 일을 놀이처럼 5시간도 5분처럼 지나가도록 만드는 데 있다. 어차피 할 일이라면 ‘그냥 하자’ 보다는 ‘어떻게 재미있게 놀이처럼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에서 일을 통한 자기성장과 발전을 이루는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구현할 때면, 실사용자들의 요구사항을 많이 반영하여 정말로 필요한 기능에다가 회사의 방향성에 맞는 혁신적인 프로세스와 효율성 높게 설계했다. 내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구현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며, 누군가가 그건 아니라고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에게 좋은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자신의 업무 프로세스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사람들이 너무 고마웠었다. 거의 매일 야근하는 일정에도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여러 번의 인터뷰에 참여하고, 귀찮았을 텐데도 여러 개선 의견과 아이디어를 주었다. 프로젝트 리더는 나였지만, 과정 중에 모여진 시너지 정보에 대한 시스템의 주인은 바로 우리 모두임을 엔지니어들에게 최대한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감사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회의 때마다 개인 비용으로 간식을 사게 했고, 프로젝트 마일스톤이 하나씩 달성될 때마다 저렴하지만 작은 선물인 양말, 초콜렛 등을 사서 가장 많은 의견을 내신 분들에게 전달하거나 Thank You 메일을 쓰기도 했다. 이런 자체 이벤트를 하면서 서로에게 신뢰의 마일리지를 쌓아가며 행복하게 일하는 회의시간이 너무 재밌고 즐겁고 마치 업무시간에 게임을 공식적으로 허락받은 듯 했다. 함께 협업해준 많은 사람들이 있다. 요청한 것보다 더 편리한 기능으로 구현해주고 꼼꼼하게 일정, 기능, 검증을 챙겨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머릿속에 한명씩
한명씩 스치고 지나간다. 함께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프로젝트 성공의 보증 수표와 같은 사람들이다.
업무 수첩에는 일 년 내내 수시로 언제든지 목표와 할 일을 볼 수 있도록 월 단위, 주 단위로 달성해야 할 KPI, 상세 항목까지 자세하게 적어서 작은 사이즈로 프린트해서 붙여놓았다. 그리고, 완료된 업무는 그때그때 줄을 그어 버렸다. 아침에 출근하면 PC를 켜고 제일 먼저 빈 메모장에다가 나만의 리추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의 목표와 완성된 모습을, 그에 대한 나의 기대와 각오를 10번씩 쓰곤 했다. 그리고 스티브잡스처럼 시스템 설명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것은 목표에 집중하도록 마음을 잡고 짧은 기간에 많은 일을 성공하고 싶어서 만든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야 이러한 방식이 해내는 사람들의 성공 원칙으로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꿈을 실현하는 자기 암시의 일종임을 알았다. 이렇게 숨겨져 있는 잠재력을 꺼내어 스스로를 이끌도록 통로가 되어 준 멘토는 바로 나의 내면에 있었다. ‘코칭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비유 중 하나가 ‘줄탁동시(啐啄同時)이다.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댄다는 뜻의 줄(啐), 안에서 쪼아댈 때 어미 닭이 그 신호를 알아차려 바깥에서 부리로 알 껍질을 쪼아줌으로써 병아리의 세상에 나오도록 돕는다. 이렇게 어미 닭이 밖에서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 생명은 온전히 탄생한다. 바깥에 있는 탁월한 멘토가 아무리 도움을 주고자 해도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려는 의지와 용기가 없다면 아무리 탁월한 멘토라 할지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부의 자극이 내면으로 들어가 소화가 되어 생각이 내면화되면, 자신의 언어와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런 표현을 창조하고 통합해서 만드는 사람이 바로 ’내 안의 보이지 않는 멘토‘다.
스스로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렇다. ‘그 기한을 내가 정할 수는 없다. 하나님, 신, 우주, 삶에게 맡기는 것이다.’ 라는 제한적 신념을 가졌다. 이것은 어쩌면 내게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에 시도하여 혁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경험을 해보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회사에 기여해보자,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무엇을 성취하고 남길 것인가 라는 시간의 배수진이라는 간절함을 만들어 냈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내 안에 존재하면서 나 스스로를 움직이게 만드는 가장 가까운 찐 멘토는 누구인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