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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의 강물 May 30. 2022

#8. 입사 10년차가 회사에서 엉엉 울다니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지혜를 얻는다.
우리는 종종 안 되는지 앎으로써 무엇이 되는지 발견하게 된다.
아마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그런 발견을 한 번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 새뮤얼 스마일즈 (Samuel Smiles) -


[실패도 실력을 쌓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변화경영연구소 고(故) 구본형 소장은 『내가 직업이다』 라는 책에서 이 세상에 실패는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 실패는 싫어하는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이다.두 번째 실패는 좋아하는 것에서 실패하는 것이다. 세 번째 실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73쪽).

첫 번째는 불행한 성공이다. 싫어하는 분야에서 성공한 것이 왜 실패일까? 성공했어도 잠시 기뻐할지는 모르지만 행복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다움을 드러내면서 즐겁게 일하면서 성공하면 성취감도 느끼지만 싫어하는 분야에서 성공하면 성공했어도 즐겁고 행복하지 않다. 자기 자신답게 삶을 살지 못했으므로 내면이 공허하고 만족과 행복이 없으니 불행하다.
두 번째 실패, 이게 진짜 제대로 된 실패라고 했다. 실패는 커다란 경험 학습이므로 그만두고 포기하지 않는 한 결국에는 진정한 성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번 맞닥뜨리는 실패마다 두 번째 실패가 되도록 노력하고 애써야 한다. 두 번째 실패는 실패를 했어도 크게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패는 도전했다는 증거이며,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어제와 다른 도전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이런 실패야말로 색다른 실력을 연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세 번째는 인생이라는 소중함을 낭비한 정말 완벽한 실패임에 틀림없다. 실패가 없다는 이야기는 실패할 수 있을 정도의 도전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큼 완벽한 실패는 없다. 실패를 통한 교훈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패를 통해서 한계에 도전함으로써 자기 성장과 변신을 거듭하는 기회도 주어지지 않게 된다.

야구 경기에서 마무리투수(投手)는, 경기의 후반부에 나와 경기를 끝맺는 투수를 말한다.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투수 중에서도 선발투수가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특히 경기 전력에 위기 상황이 닥칠 때, 전략적으로 투입된 투수를 구원투수라고 한다. 구원투수 중에서도 마지막 회인 9회에 등판하여 승부를 굳히거나 뒤집는 투수를 마무리투수라고 한다. 다른 어떤 보직보다도 강철 멘탈이 아주 중요하며 어찌 보면 야구가 멘탈 스포츠라는 것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포지션이라 할 수 있다.  마무리로서는 어떤 상황에서건 아웃을 잡아야하기 때문에 높은 탈삼진 능력이 요구되고, 특히 실력도 실력이지만 보통 2사 만루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상대 타선을 막아내야 하므로 중압감 따위는 씹어 먹는 강심장이 필수다. 더불어 한 경기를 시원하게 말아먹더라도 다음 경기에 다시 나와서 팀의 승리를 지켜야 하므로 오만에 가까울 정도의 자기 신뢰 역시 필수여서 아무나 맡을 수 없는 포지션이다. 잘하면 수호신, 못하면 방화범이라고 불리며 추앙과 추락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하지만, 팀이 우승할 때 마지막 공을 던지는 건 팀의 에이스가 아닌 마무리투수고, 포수와 맨 처음으로 껴안는 것도 마무리투수다. 그래서인지 선수의 절대적인 가치와는 달리 마무리투수가 팀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거나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된다거나 하는 일은 꽤나 많다.


아마도 책임 6년차였었나 보다. 원가혁신 전시회 준비 때문에 한참을 눈코 뜰 사이 없이 바빴다. 그때 사업부에서 SCM(Supply Chain Management)의 중요성이 대두되다 보니 모든 직원들은 SCM 시스템 사용법과 개념 등을 공부하고 체크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했다. 주변 동료들은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간간히 서로 내용을 주고받으면서 SCM 개념과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었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공부할 여유는 없었다. 당장 눈앞에 해야 할 일이 더 중요했다. 그러다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시험을 봤다.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도 잊은 채 다시 자료 데이터를 모으고 자료를 만들고 전시회 준비에 정신없이 일하고 있을 때 그룹장님이 내 뒤로 쓰윽 지나가면서 한마디 하셨다. ‘남 책임, 시험을 다시 봐야 해서 어떡하냐. 내가 너무 일을 많이 시켰나보다.’ 응?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좇아가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다시 여쭤 보았다. 저런. 대답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우리 그룹에서 전시회 준비에 바빴던 A과장과 나만 시험에 통과를 못해서 교육을 다시 받고 재시험을 봐야 한단다. ‘아 바보 멍청이. 제 꺼도 못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일을 도와준다고 이러고 있다니. - 원가혁신 전시회는 본연의 일이 아닌 헬퍼로 투입된 일이었다 - 자기 꺼는 제대로 챙기지도 못해서 빵꾸를 내고 지금 도대체 뭐하고 있는 거냐. 진짜 부끄럽다. 매번 이게 뭐냐.’ 하던 일은 내팽개치고 회의실에서 엉엉 울었다. 신입사원도 아니고 입사 10년차가 얼굴이 팅팅 붓도록 친한 남자 동료를 앞에 앉혀놓고는 신세 한탄하면서 울었다. 그날이 마침 과장급 이상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회사 입사 이래로 술 한 잔도 하지 않았던 내가 그날은 소주 두 잔을 연거푸 원샷으로 마셨다. 동료들은 무슨 일이 있냐며 물었다. 나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나 자신을 위하기보다 매번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돕다가 정작 내 일을 못 챙기는 패턴이 이렇게 반복되는 게 화가 났다. 의도치 않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으므로 그것은 실패라고 여겼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중학교 1학년 때 한국청소년연맹에서 공군 부대에서 며칠 동안 동계 훈련 받은 기억이 떠오른다. 도착하자마자 운동장에 짐을 놓고 눈밭에서 구르기로 시작해서 철제로 된 정말 얇은 패드의 2층 침대에서 잠을 잤다. 새벽 5시에 별이 총총 떠 있는데도 ‘상쾌한 아침입니다‘를 외치고 뛰면서 훈련받았다. 그 이후로 나의 모든 힘듦의 기준은 공군 기지에서 훈련받았을 때이다. 그때 보다 덜 힘들다고 느껴지면 그건 힘든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준은 그때였다. 그러다 보니 나의 원래 업무에다가 누군가의 업무를 도와주는 헬퍼로 다른 일을 하게 될 때도 나름 최선을 다해 돕곤 했다. 일의 초반에 헬퍼로 들어가서 하던 일이 마무리에는 계속 내가 하게 되는 패턴이 생겼다. 일 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면 원래 업무 담당자도 집에 가고 혼자 덩그러니 남아서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만큼 고개를 쳐 박고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하고 있는 나를 몇 번이나 발견하곤 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또 다른 하나를 포기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몰랐다. 선택을 할 줄을 알았지만 한쪽은 놓아버리는 자신감은 없었다. 내적 동기가 순수하고 좋으면 나머지도 자연스럽게 어떻게든 될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했지만 씨앗을 심어야만 무엇이든 자라는 법이다. 스스로의 선택을 온전히 신뢰하면 다가오는 어떤 실패도, 손해도 감당할 자신감이 비로소 생긴다. 나 자신을 온전히 믿을 때 생기는 자신감은 어떤 결과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가슴으로 넓혀 준다. 자신감이 있을 때만 선택할 수 있으며, 아무리 작은 선택일지라도 그것에는 삶에 대한 거룩한 책임이 뒤따른다. 자신감으로 선택한 책임은 때때로 실패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수용하는 내면의 고요함으로 드러난다. 


마무리투수 오승환이 2012년 연정樂서 고려대 편에서 강연 중에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자신감이란 게 어떻게 하면 생기는지 누구도 가르쳐 준 적이 없어요. 남들보다 운동장 한 바퀴를 더 뛰고 한 번 더 연습했을 때, 그 때 나오는 안도감, 전 그것이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성실함이 자신감이다. 이 자신감이 있는 사람만이 어떤 선택에도, 자신의 삶에서도 당당하게 마무리투수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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