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있다
– 톨스토이 -
그림자를 두려워 말라. 그림자란 빛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비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루스 E. 렌컬 -
사람은 빛의 존재에 대한 판타지가 아닌, 내면의 어둠을 인정함으로써 빛이 난다.
- 칼 융(Carl Jung) -
[일의 다름과 사람의 다름을 마주하며 나 자신과 싸우다]
8년 만에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유관부서 개발자들이 나의 부재를 염려해서 요청한 덕택으로 이제까지 업무 변경으로 함께 일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일까 기대감을 가지고 입사 지원서의 사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보통 신입사원 입사 지원서에는 한껏 보정된 프로필 사진을 붙어있는데 무슨 연유인지 머리 짧은 군인의 사진이다. 회의실에서 첫 대면으로 상호 인사를 하면서 선배로서의 덕담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 무엇을 하고 싶은가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청소를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무슨 일이든 내가 하면 다르다 라는 자세로 함께 했으면 좋겠다.’ 라는 마음의 태도에 대해 얘기했다. 이런 나의 말에 그는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라면서 ‘인생을 장기가 아닌 바둑처럼 살아야 한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장기는 이미 갖추어진 있는 상태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면서 상대의 질서 상태를 깨고, 바둑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점점 자기 마음대로 질서를 만들어가면서 판을 짜며 돌을 놓는다고 부가적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서로 공통점이 많았다. 같은 대학에다가 잠깐 활동했던 동아리도 같았으며, 전공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명목상 전자공학 전공이었다. 기독교인이었으며 성향도 비슷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는 엄청 부딪쳤다.
업무 회의에 함께 참석한다는 것은 내용을 파악하고 배우는 기회인데 그냥 순수하게 참석만 해서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을 적어야 하는데 회의시간에 받아 적은 내용이 없었다. 보고서 초안에 대해 수정 내용을 알려주면 얼굴에 싫은 내색이 가득했다. 업무 메일을 보내는데 개인 메신저 말투 그대로, 때로는 영어 철자가 틀린 채로 보냈다. 업무로 오가는 메일은 개인이 아니라 파트의 얼굴이며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이런 잦은 실수는 부끄러웠다. 그러다보니 어느 새 나는 점점 마이크로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었고, 서로간의 관계의 틈 사이에 작은 일들이 점점 쌓여서 우리 사이는 점점 벌어졌다. 나와 그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지만 업무에 있어서 분리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힘들게 정성스럽게 공들여 쌓아놓은 신뢰, 자부심, 품질, 역할에 흠집이 날까 조바심을 냈다. 파트를 대표해서 좀 더 신중하게, 좀 더 완벽하게 잘해냈으면 싶었는데 실수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나와는 다르게 매사 ‘그럴 수도 있지요.’였다. 그렇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뒷수습을 모두 내가 해야 한다는 것도 힘들었다. 사람은 둘로 늘었는데 일의 진척도는 60% 수준에다가 감정적 부대낌이 많으니 점점 지쳐갔다. 마치 한 몸에 머리 둘인 샴쌍둥이 같이 분리할 수 없었다. 분명히 그의 강점이 있음에도 너무나 딱 붙어있어서 볼 수가 없었다. 두 개의 머리가 하나의 몸에 서로 오너십을 가지려고 했다.
그는 주변에 다른 남자 동료들의 심리적 지지를 얻으며 자신의 감정을 나에게 점점 대놓고 표현했다. 회사에서는 업무로만 엮이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은 착하고 좋기 마련이다. 빠른 습득으로 자신의 업무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생각과는 달랐다. 우리는 생각의 속도 뿐 아니라 방향도 스타일조차도 맞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할 때마다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진짜 너무 힘들어서 퇴사하고 싶었다. 그러다 부서 내부에 신입 사원들끼리 서로 업무 변경을 할 수 있는 공식적인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정작 가기 싫단다. 칭찬은커녕 계속 지적당하고 힘들었을 터인데 가지 않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여름에 부서 워크샵에서 나는 ‘서로 일하는 스타일을 알아보자’며 ‘영리하게 일하라’ 책을 읽으면서 직접 정리했던 내용으로 부서원들의 ‘실행능력 측정 질문지’를 각자 작성하게 하고 해석해 주는 활동을 했다. 세상에나. 혹시나 했는데 우리는 성향은 같았지만 일에서의 강점과 실행 방식이 정확하게 반대였다. 나의 강점이 그의 약점이고, 그의 강점이 나의 약점이었다. 우리는 일에 있어서 극과 극이었던 것이다. 서로 최대 차이를 가졌으니 얼마나 크게 느껴졌겠는가.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며 살아오면서 그 동안 숱한 문제에도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배우려고 했지만, 위기였다. 회사가 싫어서가 아닌 함께 일하는 사람과 계속해서 부딪히는 직장생활이 싫어졌다. 아니다. 사실은 나의 그림자를 자꾸만 드러나게 만들고, 거울처럼 그림자를 보여주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나 자신의 그림자를 감당하고 이겨낼 용기가 없어 피하고 싶었는데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싫었다. 다양한 일을 처리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다.
[존재를 인정할 때 소중한 존재로 거듭난다]
혼자서 뚝딱뚝딱 일하면서 성과를 만들어내기에 익숙했던 하이퍼포머가 기껏 두명이라는 팀으로 일하면서 스트레스 나락으로 떨어져서 헤매던 시기였다. 한발짝 떨어진 다른 사람들의 강점은 너무 잘 보였지만 샴쌍둥이 같은 후배의 강점을 찾게 된 것은 시간이 훌쩍 지난 후였다. 이 시기는 회사 생활에서 가장 깊고 어두운 내면의 그림자가 나 혼자만 알게 드러나서 나를 괴롭혔던 때이다. 겉으로는 밝은 빛으로 빛이 나도록 잘나갔지만 반대편 내면으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저항하고 비하했던 시기이다. 나름의 빛나는 성취감 뒤에 있던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어둠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때로는 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빛보다 그 빛 덕분에 생기는 그림자가 오히려 한 사람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한다. 밝음보다 어둠, 양지보다 음지, 정상보다 바닥, 희망보다 절망, 기쁨보다 슬픔의 이면에 삶의 본질이 숨어 있다. 그렇다. 그럼에도 자신의 어둠과 음지, 바닥과 절망, 슬픔을 보는 것은 힘들다.
후배 직원의 보이지 않는 능력을 믿고 맡기는 것이 권한 위임이건만, 만족스런 업무 수행 수준이 되면 그제서야 위임을 하려 했는데, 기대 수준이 높고 가진 잠재 능력을 보려 하지 않으니 볼 수 없었다. 많은 강점을 가졌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시각이, 마인드가 내게 없었다. 대부분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들의 눈에는 잘하는 건 당연하고 나머지는 부족해서 칭찬할 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후배도 나처럼 부스트업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한 스타일이었는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고 기다려주질 못했다. 어떤 업무를 좋아하는지 알았을 때 좀 더 자유롭게 그 일을 즐기도록 놔두기보다 먼저 미래를 나의 관점으로 설계해서 데려가고 통제하려고 했다. 상사의 강점이 나의 약점일 때가 가장 불리한 상황임을 인지하지 못해서 이해해주지 못했다. 조직 관리에서 자유와 방임의 경계가 어디까지 인지를 잘 몰랐다. 너무 잘 되기를 바라서 욕심을 부렸고 스스로 덧씌운 책임감으로 내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려했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고 스스로의 길과 방법을 선택하도록 열어놓지도 않았으며 결정권을 준 이후에도 믿고 맡기지 못했다.
칼 융(Carl Jung)이 ‘깨달음은 빛의 형상을 상상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의식화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어둠과 그림자의 피해를 입고 휩쓸리기만 했지 정작 의식 수준에서 다루어야 할 그림자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거울처럼 그대로 나의 약점이 후배를 통해서 다른 형태로 비춰졌을 뿐 임에도 자신의 그림자와 어둠을 인식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니 당연히 후배의 약점만 눈에 더 잘 보였다. 가리고 싶었는데 내 것이 아니니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스스로 독립하여 잘 되길 바라면서 믿어주게 된 것은 이미 때늦은 다른 조직으로 우리 둘만 덩그러니 이동되었을 때다. 이제는 내가 그를 책임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샴쌍둥이가 강제로 동등한 독립체로 분리되었다.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시점에서야 스스로 만들어 입었던 두꺼운 책임감이라는 갑옷을 벗었고, 이제까지 함께 묶어 놓았던 올무를 풀었다. 진심으로 각자의 커리어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여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젠가 후배는 이때를 언급하면서 당시에는 내가 그를 이제 버렸나 하는 서운함이 들었다고도 했다.
사람은 저마다의 고유함을 지니고 태어나며, 대체 불가능하다. 그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 사람 특유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 소우주다. 오로지 그 사람만이 선호하는 가치와 두터운 신념으로 자기다움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닌 것처럼, 내가 타인을 바꿀 수 있는 확률은 정확하게 0% 이다. 그 어떤 사람의 사랑, 강압과 설득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다만, 본인 스스로 변화하기로 결정했을 때만 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역할을 변화를 결정하도록 넛지, 트리거일 뿐이다.
[젖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런 상황에서 후배는 자신의 어려움을 어디에 가서든, 어떤 형태로든 자유롭게 토로할 수 있지만 선배는 그렇지 못하다. 함께 일하는 후배와 잘 맞지 않음이 자신의 무능력, 리더십의 부족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후배가 선배를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 것 같아 안쓰러운 면도 있었지만 서로 마음고생하며, 서로에게 생채기 내며 배워야 할 것들을 그 때는 우리 둘 다 배우지 못했다. 각자 자신의 입장만을 고수했으며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말과 행동과 같은 메시지 보다 메신저의 존중과 관심 기반의 진정성 있는 마음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나 자신의 그림자를 맞닥뜨리며 삶 속에서 빛과 함께 그림자의 소중함 또한 알게 되면서 빛과 그림자를 통합하는 과정을 경험으로 깨우치고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배가 아버지께서 산에 가셔서 구해온 거라며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라는 도종환의 시 구절이 적힌 희귀한 나무뿌리 하나를 주었다. 당시에는 ‘뭐야 앞으로도 계속 고생하라는 얘기네.’ 했지만 고마웠다. 10년이 훨씬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책상 앞에 귀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내 그림자가 너무 깊어지진 않았는지, 너무 길어지진 않았는지 깨워주는 도구이다. 가장 교만한 시절에 내가 겸손하도록 친히 트레이너의 역할을 해 준 후배에게 많이 고맙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이따금씩 주변인들이 정황도 잘 모르면서도 신입사원이 업무를 정착할 동안 막연하게 후배에게는 자비심으로 감싸고, 선배를 비난하기 쉽다. 이렇게 선배를 비난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동병상련, 아전인수 격으로 겉으로 부리는 힘은 선배가 더 가졌을지 모르나 속 알맹이 힘은 후배가 더 많이 가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하면서 은근슬쩍 선배 편을 들곤 한다. 후배 편드는 사람은 많은데 선배 편드는 사람은 적어서 그 선배가 얼마나 외롭고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지 알기 때문이다.
2013년 5월 회사 엘리베이터 배너에 ‘공부는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는 것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는 것은 배움의 극히 일부분이다. 배움은 가르침에서 유래되기보다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혼자 터득하는 경우가 많다. 진짜 소중한 배움은 혼자 터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직장이 배움의 터전인 이유는 난생 처음 해보는 일도 많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기간 내에 끝내야 되는 프로젝트를 통해서 끊임없이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일만 하는 곳이 아니다. 회사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함께 일하면서 나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만나며 소중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