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이렇게 시작해 보거라
땅버들 씨앗들이 의도를 가지고, 이번 물살이 좀 안전하니까 이번에 타야지, 하고 가는게 아니잖아요. 갑자기 급한 물이 내려오면 어쩔 수 없이 쓸려가야 해요. 우리 인생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내 마음대로 직조할 수 없어요. 시대라는 씨줄과 내 의지라는 날줄이 맞아야 해요.
살다보면 우리 뜻대로 되지 않아요. 급한 물이 밀려올 때가 있죠. 그럼 타야지 어쩌겠어요. 그러고 나서 결국 어딘가에 닿았어요. 사실 나는 거기에 닿고 싶지 않았는데, 아래쪽으로 3미터쯤 더 가고 싶었는데 그 지점에 가지 못하고 닿았단 말이죠. 그럼 어쩌겠어요. 땅버들 씨앗처럼 거기서 최선을 다해 싹을 틔워야죠. (154쪽)
‘책은 도끼다’라는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그곳이 어디든 마음에 들던 그렇지 않던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하는 싹을 틔우는 땅버들 씨앗처럼 다시 시작해보라는 말은 지금 있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마음을 다잡아 주고, 또 ‘그게 옳다’라고 말해준다.
수석 진급 후 3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출시된 제품에 배터리 이슈가 생겼다. 설계 이슈에 대한 대응도 힘들었지만 몇 달 동안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와 인터뷰, 보고서 작성 등 내부 감사의 요청에 답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심한 외부적 압박으로 인해 모두들 감정적으로 날카로웠고 서로 스스로를 지켜내느라 바빴다. 해결 방안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상사와 후배직원 간 의견이 일치하기도 어려웠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태도와 방식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상적으로는 한 팀으로 똘똘 뭉칠 수도 있을 것 같은 위기 상황이었지만, 오랜동안 고생하며 쌓아놓은 신뢰라는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참히도 갈라지고 깨져버려서 서로 등을 돌리는 원수가 되는 상처를 주고받는 시간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을 지나서 마무리 시점이 되었다. 경영층은 향후를 위해 ‘개발과 품질을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업무적 소통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2월 말 동계 휴가 중이었는데, 급한 호출이 왔다. 전화로는 안 되고 휴가 중인데도 꼭 사무실로 들어와야 한다는 상무님의 말씀에 조직 개편에 관한 이야기이실까 아니면 불분명한 소문처럼 누가 어디로 이동한다 일까 하는 생각을 가볍게 하면서 평일 오후5시쯤 회의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들은 말은 충격적으로 품질부서 2년 파견이었다. 거의 통보에 가까웠다. 사업부에서 개발과 품질 부서의 수석 초년차 우수인력 중에서 일부를 상호 순환 근무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우리 그룹에 수석이 열 명이 조금 넘는 인원 중에서 3년차 전후는 5명이었고 그중 한명은 바로 얼마 전에 타 사업부로 1년 순환근무를 가기로 결정이 되어 멘탈 붕괴 상태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았었다. 그런데, 내가 파견 2년 후보라니. 고과가 좋아야 한다는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단다. 이것이 진짜 사실일까? 어떤 트레이드에서도 일등을 내놓는 법은 없으니까 사실은 아닐 것이다. 파견 조건이 상위 고과 보장이라서 평가에 얽매여서 일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렇다고 우수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상위 평가를 받을 확률이 크므로 매력적이진 않다. 업무 경험의 확대 측면에서 본다 해도, 2년은 정말 많은 기술 트렌드가 바뀌게 되므로 개발에서의 커리어 단절로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과 복귀했을 때 조직의 리더 역할에 대한 위험도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업무와 조직을 셋업하느라 고생해서 이제는 좀 안정적이다 싶었는데 당장 스무명이 넘는 파트원들을 그대로 두고는 품질 업무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단다. 주변에서는 갈 수 없다고 못 간다고 버티라면서, 커리어가 뭐가 되냐고, 왜 굳이 가야 하냐고 했다. 또 파트원들은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 물었다. 나도 모른다. 이제까지 점과 점을 연결해서 선으로 잘 이끌고 만들어 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3차원 공간에 떠있는 홀홀단신 점이 된 기분이었다. 함께 일하던 무슨 부모 잃은 자녀들 마냥 파트원들은 흩어졌다.
조직이 원하는 대로, 조직의 필요에 따라 일하는 것이 직장인이라지만, 어쩌면 가장 큰 오너십을 가지지 못한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마음 구석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 내가 너무 순응적으로 무책임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된 것은 품질 부서는 주로 구미에 있었는데, 나는 같은 사업장의 다른 건물로 이동을 하였다. 책상 아래 쌓여있던 많은 책들을 주변에 나눠주고 집으로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겨울바람이 차가운 1월말이었다. 노트 PC와 모니터, 짐 상자를 실은 대차를 G프로와 나는 덜덜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한 손으로 끌고 밀면서 아스팔트 위를 지나고 있었다. 겨우 한 블록의 짧은 거리를 옮기면서 큰 소리로 웃으며 농담을 하며 나를 구박하는데도 왠지 마음이 그랬다. 굳이 건물 이층 자리까지 친절하게 짐을 자리에 놓아주고는 다시 덜그럭거리는 빈 대차를 가지고 돌아가던 뒷모습이 쓸쓸하게 마음에 남았다.
[신은 한쪽 문을 닫을 때,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을 열어 놓는다]
파견된 품질 부서에서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RF(Radio Frequency) 업무를 맡게 되었다. 기존 분들은 업무 경력이 최소 5년이 넘어서 모두들 베테랑인 것에 반하여 나는 명목상으로는 통신공학 전공이었지만 실무 경험도 단 1도 없는 개발에서 파견 온 빈 껍데기 리더였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몰랐다. 관리자이기에 업무 파악을 하고 개선이 필요한 업무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는데 아는 게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용어부터, 과제 정보, 테스트 결과에 대한 배경 지식 등 하나씩 하나씩 물어야만 했다. 어떤 결정을 할 때도 배경지식이 없어서 의견을 물어야 했다. 같은 과제임에도 다른 지역향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서로 공유해서 알면 편할 것 같아서 함께 모여서 정보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마음속으로 정하기는 개인 스스로가 자신이 하는 일을 가장 잘 빛나게 드러나도록 돕고 싶었다. 사실 내가 실적을 두드러지게 내보일 필요도, 평가를 잘 받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업무를 몰라도 도울 수 있는 게 무얼까 보면서, 내용을 몰라도 보고서의 논리를 잡고, 이미 완료된 일을 수정하고 정리해서 결과를 담당자가 직접 보고하게 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는 근거를 찾아서 업무로 만들고 내용 보충해서 계획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여 담당자가 직접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에도 명심보감에 나오는 면벽면장(面壁面墻)에서 유래된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알아야 담벼락을 마주 하고 있는 듯한 답답함을 면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친절하여도 바쁜 사람들에게 너무 기본적인 것들을 물어보는 3개월이 지나자 마음속에서 나는 정말 미안하고 무능력한 리더로 피해만 주고 있구나 싶어서 스스로 쓸모없고 한심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우리 파트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얘기해줬다. 처음엔 ‘으응?’ 그게 무슨 말이지? 싶었는데 예전과 다르게 생기와 활력이 있어지고, 점심에 밥도 같이 안 먹고 회식에도 잘 참여하지 않던 사람들이 바뀌었단다. 나는 리더십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단다. 나중에야 내가 알게 된 사실은 이렇다. 리더가 모두 다 알면 물어보지 않고 결정했을 텐데, 몰라서 물어본 것이 담당자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게 해주었고,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신의 업무를 동료들에게 표현하면서 다른 지역향의 문제와 해결방안 또한 알게 되니 스스로 업무에도 도움이 되었으며, 놓치고 있는 부분도 알게 되어 각자 자기 과제만 신경 쓰다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좋아진 것이다.
리더가 바뀌지 않는 오랜 조직은 안정성이 있지만, 구성원 입장에서는 기존에 구축된 자신에 대한 선입견, 평판, 이미지를 바꾸기가 어렵다. 그러나, 리더가 바뀌면 자신을 새롭게 증명할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겨서 다시 시작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리더의 알지 못함으로 구성원들의 말을 경청했고, 질문을 통해서 더 좋은 솔루션을 찾도록 했으며, 상대방을 전문가로 인정하고 존중하므로 나도 모르게 코치형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쨌든 기존보다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이번 기회에 공부하라는 주변 권유로 전에 합격하고도 가지 않았던 MBA를 다시 알아보았다. 마침 추가 지원 마지막 날에 리더십과 연관되어 보이는 코칭 전공으로 지원했다. 나에게 코칭은 무엇인지도 모르고 호기심으로 기웃대며 어쩌다가 들어선 샛길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 샛길을 따라가다 보니 그 길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면서 삶의 의미와 연결되었다. 직장 생활이라는 바다에 예기치 않게 ‘파견’이라는 파도가 쳤고, 그 흔들리는 파도에 조금 적응해보려고 ‘코칭’이라는 나만의 작은 배를 만들어 파도 위에 띄웠다. 파도가 없었다면 작은 배를 만들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 파도가 나를 덮쳐서 삶을 파괴할까봐 두려웠고 싫고 원망스럽고 실망스러웠는데, 이 파도로 인해서 삶의 바다에 작은 배 하나를 띄워 흘러갔고 그렇게 흘러갔기에 바다는 결국 더 큰 바다로 연결되었다.
사무실 책상 위에 선물로 받은 다육식물 ‘꽃기린’이라는 작은 화분이 있다. 일년 내내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고 들었는데 6개월 동안을 피지도 않고 가시만을 보여주더니 이제야 앙증맞게 작고 귀여운 꽃을 앙칼진 가시 사이에서 기린처럼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라는 꽃말을 지닌 꽃기린의 영문명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 때 썼던 가시면류관을 뜻하는 ‘Crown of Thorns’ 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모두 때가 있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가 가장 최적이고 일어나야만 하는 때인 셈이다.
또, 좋아하는 꽃 중에 민들레가 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친정 엄마와 함께 가까운 산과 들에서 깨끗한 민들레를 캐러 많이 다녔다. 고혈압에도 동맥경화, 간기능 개선에도 좋다고 하여 여기저기 길가에 피어있는 앉은뱅이 꽃인 민들레를 캐었다. 잎 뿐 아니라 뿌리까지 살짝 데쳐서 양념을 잘 무쳐서 나물이나 무침으로 먹으면 특유한 씁쓸한 맛이 깔끔하고 입맛을 돋게 한다. 이렇게 길가에 아무렇게나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면서 사람들이 밟고 지나 다녀도 다시 일어나 꽃을 피우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기에 모진 인생을 꿋꿋이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민들레 같은 인생이라 비유하기도 한다. 외부의 환경에 상관없이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바라보며 살아내는 사람들은 길가의 민들레처럼 많다. 그럼에도 민들레처럼 또한 아름답다.
어떤 순간에도 그 순간의 삶의 목적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사람 앞에 열린 모든 문은 바로 기회가 된다. 활짝 열리지 않아도 된다. 그냥 슬쩍 밀었을 때 열리기만 해도 좋다. 지혜로운 사람은 ‘신께서 한쪽 문을 닫을 때,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을 열어 놓는다.’라는 것을 알고 그 문 바로 뒤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안다.
살다가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가 닿은 곳에서 어쩔 수 없이 싹을 틔우는 땅버들 씨앗처럼 시작해야만 할 때, 초라하다 생각 말고, 자책하지도 부끄러워하지 말라. 그렇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이겨냈으며, 진정한 용기를 지녔으며, 자신의 인생에 책임질 줄 알며, 최선을 다해 사는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도리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