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벌어도 계속하고 싶어요"
'셀학' 김지향 대표를 만나다.
창의성 연구의 선구자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창의적 작품이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명문 예술대학인 시카고 예술대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그의 연구팀은 실험 스튜디오에 테이블을 두 개 가져다 놓고 한 테이블에 포도 한 송이, 철제 기어 변속기, 벨벳 모자, 호른, 오래된 책, 유리 프리즘을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 중 몇 가지를 골라 빈 테이블에 원하는 대로 배치하고 그림을 그리게 했다.
이후 학생들이 한 행동은 두 가지로 분류되었다. 한 집단은 몇 분만에 사물들을 배치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 집단의 학생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에 음영을 넣거나 세부적인 묘사를 하는 데 사용했다. 다른 집단의 학생들은 사물을 배치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사물 몇 개를 선택하여 배치하여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고, 다시 사물을 바꾸어서 배치하고 관찰하기를 반복했다. 정해진 시간의 대부분을 배치, 관찰, 재배치에 사용하고는 불과 5분이나 10분을 남기고 최종 아이디어를 결정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연구팀은 첫 번째 집단을 '문제 해결형' 유형, 두 번째 집단을 '문제 발견형' 유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예술 대학생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 결정하는 것(문제 발견)과 실제 작품을 그리는 것(문제 해결) 중 어떤 것에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가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연구팀은 학생들의 작품을 교수들에게 창의성 관점에서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를 하는 교수들에게는 학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최종 작품에 대해서만 평가를 하도록 했다. 교수들의 평가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문제 발견형의 작품이 문제 해결형의 작품보다 훨씬 창의적이라는 것이었다. 연구팀은 그림을 그렸던 학생들이 졸업 후 6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이들의 모습을 추적했다. 누가 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실험에 참가한 학생 중 29%가 예술계에서 탁월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뉴욕의 일류 갤러리에 전시되거나 유명 박물관에 영구 소장되었다. 그런데, 이런 성공을 거둔 예술가들은 대부분 학생 시절 실험 당시 '문제 발견형'에 속했던 사람들이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실험은 창업가에게 있어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 같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있어 창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최근 (주)셀프트리의 김지향 대표를 만났다. 몇 달 전에 한번 만났었는데, 가끔씩 그녀의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기회가 있어서,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김지향 대표는 '셀학'(셀프 학점제를 의미함)이라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학점은행제를 통해서 학사 혹은 전문학사를 취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지향 대표가 이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계기가 독특하다.
학점은행제는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학습 및 자격을 학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좋은 취지를 가지고 1998년부터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교육제도이다. 하지만, 학점은행제를 활용하는 많은 학습자들은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그 결과 학점을 취득하기 위해 지불하는 학습료 외에도 '학습 플래너'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곤 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가 흔하게 발생되곤 했다.
김지향 대표는 셀학을 운영하기 전, 우연한 기회로 학점 은행제 관련 업체에서 '학습 플래너'로 일했다. 마케팅을 좋아하고 일 욕심도 많았던 성격 덕분에 입사 첫 달부터 좋은 실적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일을 해 나가면서, 정확한 정보를 취득하지 못한 학습자들이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현실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김지향 대표는 자신이 학점은행제로 학습을 할 때 8과목에 총 8만 원(과목당 1만 원)을 지불한데 반해, 일부 학습자들은 과목당 10만 원 내외의 비용을 지불해서 한 학기에 100만 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곤 했다. 그리고 '학습 플래너'로서 일하는 자신은 이런 시장 구조 속에서 이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불편함은 그녀가 창업을 통해 '셀학'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셀학은 '학점은행제' 정보가 부족한 학습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정보 비대칭'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학습자들은 셀학을 통해 아무런 비용 없이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 많은 학습자들은 셀학의 서비스에 만족해하고 있으며, '셀학 앱'은 플레이 스토어에서 4.8점의 높은 고객 평가를 얻고 있다. 셀학은 현재 학점은행제 정보뿐 학위 취득 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들(사회복지사, 보육교사, 평생교육사 등)에 대한 정보, 독학 학위제, 편입,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셀학'은 현재 무료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회사의 수익이 거의 발생하고 있지 않다.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개선해 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금을 확보해가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다행히도 셀학 외에 다른 아이템으로 일부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한다. 김지향 대표는 셀학 서비스에 대해 애정이 깊다. 그녀는 "돈 못 벌어도 계속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김지향 대표는 '고객의 문제'를 자신의 '학습 플래너'라는 직업을 통해서 발견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이익과는 배치되는 선택을 통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녀의 선택과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