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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Jan 26. 2020

좀 부족하면 어떻냐고? 나는 불편하던데

완벽을 꿈꾸는 반쪽 짜리 사람의 하루

열댓 글자 남짓한 이 제목을 쓰기 위해 나는 무려 6번이나 노트북을 켜고 빈 화면을 응시했다. 주제를 명확하게 잡은 것도 아니고 제목만 적은 것인데 이렇게나 오래 걸릴 일인가?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답답함에 머리 끝이 쭈뼛 곤두서며 키보드 위 손가락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손 끝에 1kg 짜리 추를 달아놓은 줄 알았다



아 - 글 어떻게 쓰는 거였더라?

새해가 되었으니 뭔가를 꾸준히 하는 습관을 들여볼까 해서 주 1회 글을 쓰는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이번 주는 글쓰기 모임에서 첫 글을 적어내야 하는 주간이었다. 예전부터 글을 꾸준히 써왔기도 하고 어떤 주제로든 글을 적어내는 데에 크게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적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노션을 열었다. 막상 노션의 흰 바탕을 보는 순간 예상치 못한 크고 작은 벽에 부딪혔다.


'그동안 페이스북 페이지,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글을 써봤으니 이번엔 브런치에 써볼까?

'브런치는 소설보다 에세이 등의 자기 경험담이 잘 맞던데 이런 건 어떠려나'

'근데 이런 소소한 이야기는 카테고리에도 없는데 조금 더 구상을 조금 더 하고 써봐야겠다’

'아니 근데 이거 이렇게 쓰는게 맞는건가 사람들은 잘 써내는 것 같은데 주제를 바꿔야하나'

‘쓰고 싶은 말은 많은데 뭐부터 써야하는건지 모르겠네’


회사 생활을 하면서 퍼스널 브랜딩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들어왔고, 사회에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자칫 나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함께 들었다. '글을 쓰려면  써야하고, 조심해서 써야한다'는 건데 서두를 적다보면 부족함이 느껴져서 빈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목차나 적어볼만한 꺼리같은 걸 끄적이고는 노트북을 덮었다. 걱정과 고민이 글감보다 먼저 떠오르니 머리가 아파왔다. 그냥 쓰면 되는데 자꾸 부담감이 밀려왔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혹자는 '겨우 글 한 편 쓰는 건데 웬 호들갑이냐' 싶을 것이다. 어느 날 밤엔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도 아니고 몇 번이나 퇴고를 해야 하는 소설도 아닌데 왜 이렇게 부담을 느끼는 걸까.'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자신있게 주제를 끌고나갈 수 있을까.'

'글쓰기는 내가 잘하는 건데 왜 자꾸 멈추게 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내가 계속해서 반복하는 문구가 있었다.

'아 내가 잘하는 건데'라는 자부심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내 삶은 글과 떨어져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정확히는 글을 적는 창작 행위와 멀어진 적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에게 뭐 하나 잘 하는 게 없다고 했을 때, 딱 하나 '저는 글을 조금 쓸 줄 압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게 내 강점이었다. 들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들인 시간은 들인 시간이고 잘 쓰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이 부분이 마음에 쿡 박혔다.

' 아직 부족한 사람이구나'



부족한 걸 못견디는 성격의 사람

어떤 부분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결 해야하는 성격의 사람이 있다. 내가 바로 그 성격의 사람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에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 때부터 머릿 속에서 생각이 휘몰아친다. 벌 1,000마리가 생각을 헤짚으며 부족함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생각을 한다.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 온힘을 다한다. 그래야 어떤 일이든 자신감있게 임할 수 있다.


어떻게든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 거의 50편이 넘는 브런치 글을 읽었다. 그런 다음에 나는 이 별거 아닌 글을 여섯 번의 노력 끝에 겨우 적어내고 네 번의 수정을 더 거듭하며 총 열 번을 들여다봤다.다른 사람들의 글처럼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나타나고, 읽을 가치가 있는 개인의 통찰력을 듬뿍 담았으며, 전문적이기까지 한 멋진 한 편을 적어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글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노력한다고해서 완벽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정말 완벽해지려면 이런 가벼운 노력이 아니라 전력투구형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완벽은 애초에 이루기 어려운 목표다. 다만 나는 반쪽짜리 사람이기 때문에 부족함을 빠르게 채워야 안정감을 찾기 때문에 소모적인 노력을 했다. 어떤 때는 강박이라는 느낌까지 들지만 뗄레야 뗄 수 없는 내 고질적인 습관이다.



좀 부족하면 어떻냐고? 나는 불편하던데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면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습관을 조금이나마 떨쳐버리고 싶다. 그동안 이 부족함에서 기인한 불편함은 내 삶의 동력이었다. 누구보다 바쁘게 헤르미온느 같은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도 누구보다 빠르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것 때문이었다. 불편함은 나를 채찍질하고, 부족함은 내게 목표를 설정하라고 다그쳤다. 그렇게 나의 가치관이 만들어졌다. 그러다보니 부족한 것이 불편했다. 나 뿐만 아니라 주변에 부족해 보이는 것들은 모조리 불편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예민한 성격으로 굳어졌다. 이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는 게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부족함을 대하는 내 태도에 변화가 필요해


20대 초중반까지 이 부족과 불안 덕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지만 20대 후반에는 이 습관에서 벗어나 부족함이 있어도 어느정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근거의 유무와 상관없는 자신감이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을 보며 완벽을 꿈꾸는 나는 또 한 번 저렇게 완벽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이 완벽에 대한 집착은 벗어나기 힘든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천천히 움직여보려한다. 큰 심호흡과 함께 부족함을 껴안아보려한다. 좀 부족하면 어떻냐고? 그러게  어때! 가 될 수 있도록.


짧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길게 풀었다. 앞으로 나는 나를 움직이는 동력인 '부족'의 대서사시(?)를 담을 예정이다. 글을 통해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나의 민낯을 마주하고 싶다. 여전히 나는 부족한 게 불편하다. 내일은 완벽했으면 하는 상상을 하며 매일 잠에 들고 있다. 20대 후반의 6년 차 직장인으로서, 환갑을 앞둔 부모님의 맏딸로서, 강남구 도곡동에 겨우 발 붙이고 사는 거주자로서 등 내 경험들을 담담히 적어낼 예정이다.




[참고] 나의 글쓰기 연대기

초등학교 - 엄마와의 교환일기를 6년 간 거의 매일 써왔고, 국문학과였던 엄마의 감성을 담아 친구들에게 엽서 쓰기를 즐겨하는 어린이였다. 독서클럽이 한창 유행이어서 청소년 독서 대회에 나가 상도 받고 다양한 주제로 동네 언니, 오빠들과 토론도 했다. 방학숙제로 독후감을 쓰는 일이 생기거나 교내외 글짓기 대회가 있다면 꼭 상을 타겠노라 글을 적어냈고 대상은 못받았지만 최우수상 정도는 받아왔다.
중학교 -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던 터라 그 때의 감성이 돋보이는 일기 (라고 쓰고 비관적이며 우울감으로 가득한 비문이라고 적는다)만 몇 권이 나온다. 감정을 토해내는 수준으로 적었지만 나중에 커서 읽어보니 꽤 건질만한 문장이 많았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비공개로 올린 글만 1천 편이 넘는다.
고등학교 -  문학반을 하며 잠시나마 문인의 꿈을 키웠고, 논술반을 이끌며 논리적인 글쓰기에 집중했다. 동시에 서울대 추천도서를 읽느라 정신없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글을 논리정연하게 쓰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쓰는 것이 더 편했다.
대학교 - 문예창작학과를 꿈꾸었으나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가 글을 읽고 해석하는 것을 공부했다. 틈틈히 시 소모임도 나가고 창작 수업을 필수적으로 수강하며 어떤 학기에는 하루에 2권 읽기를 목표로 살기도 했다. 그 때 소설의 맛을 처음 알고 단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직장인 - 첫 직장에서는 에디터들이 글을 쓰면 두세 줄로 그 글의 매력을 축약하는 업무를 했다. 그러다보니 창작과 거리가 잠시 멀어졌다. 두 번째 직장에서는 여러차례 글쓰기 모임을 가지며 단편 소설을 지었다. 최근엔 업무에 집중하느라 창작을 손에서 떼게 되었다. 곧 다시 적는 것에 몰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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