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뜨거워! 한 연애를 하고 싶었던 20대의 나에게
나의 초중고 연애심리를 한 줄로 적어내면 '남자 친구는 있으면 좋겠는데 사귀는 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먼저 사춘기를 겪은 친구들은 남자 친구를 한둘 정도 사귀어 보았던 것 같은데 학창 시절의 나는 소극적인 편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있었지만 친구들이 은근하게 몰아가는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지 그 애와 사귀게 되어서 무엇인가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우리 집은 성적인 부분에 대해 꽤나 엄했기 때문에 내가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을 갖기도 전에 부모님은 '남자 친구는 성인이 되고 나서'를 주입하셨다. 열네 살인가 열다섯 살 크리스마스엔가 내가 선택한 '내니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가족들과 보게 되었는데 키스신이 나왔다는 이유로 한바탕 혼났던 적이 있었다. 겨우 12세 관람가였고 키스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영화였는데 외설적인 장면을 함께 보려 했다는 의도가 잘못되었다고 혼났다. 그런 분위기였다. 이 분위기에서 연애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 직전, 첫 남자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인싸와 아싸 사이 정도 되면서도 꽤나 자기 스타일이 있는 심오한 친구였다. 심리학과 철학에 빠져 윤리 공부를 꽤 잘했고, 여러 가지 글을 쓸 줄 알았으며, 넬과 성시경 노래를 즐겨 들었던 게 매력적이었다. 결정적으로 그와 왜 만나게 되었는지는 거의 8-9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나질 않는데 내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나를 도와줬었나 그랬다.
그때 나이는 열아홉. 곧 성인을 앞둔 나이였지만 연애에 대해서는 싸이월드에 짝사랑하는 글 올려본 게 다였던 나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공교롭게도 그 친구의 부모님이 양호선생님이셔서 내게 성교육을 비롯한 중요한 정보들을 하나씩 알려줬다. 자기가 배운 대로 누군가와의 만남은 소중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걸 지켜야 한다는 것을 그대로 내게 공유해줬다. 한 편으로는 정말 답답했을 법도 한데 그 친구에게 이 부분이 가장 고마웠다. 그 덕분에 20대 초반, 내가 잘 몰라서 당하게 되는 소위 나쁜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친구와는 도서관에 가서 심리학 관련 책을 읽거나 한강에 가서 칸트나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해, 또 나는 김소월과 윤동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데이트를 했다. 그런 취향이 잘 맞아서 그 친구와 장거리 연애였음에도 불구하고 편도 3시간을 달려가서 주 2-3회를 만났다. 그러다 1년 반 정도를 만났을 때 군대 입대를 앞두고 3개월 동안 여러 차례 헤어지게 됐다. 뜨거운 열정으로 만났던 사람이었으니 펄펄 끓는 물을 식히는 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안타깝게도 편도 3시간은 서로 연락처만 지우면 남남으로 살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게 첫 연애가 끝났다.
고등학교 때 만났던 남자 친구와의 헤어짐은 대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 꽤 이슈였다. 이제야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느니 장거리 하는 게 너무 버거워 보였다느니 나를 위로한다고 여러 이야기를 건네줬다. 처음으로 연애를 해본 사람에게 차이고 얼얼한 마음을 식히기엔 그들과 어울리는 게 최고였다. 처음으로 술을 마셨고 이런저런 행사들에 가보았다. 친구들과도 시간을 보냈고, 학교 외 생활도 여럿 해보았다. 분명 바쁘고 즐거웠는데 묵직한 외로움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연히 졸업한 선배와 서울에서 몇 번 만나게 되었다가 두 번째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나이차도 꽤 났었고 연애를 많이 해본 사람이라 능숙했다. 무엇을 해야 내가 좋아할지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 덕에 많은 것들을 함께 시도해봤고 그러면서 '사랑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첫 연애와는 달리 '좋다', '편안하다' 외에도 '슬프다', '기쁘다', '좋다', '싫다' 등 무수히 많은 감정을 느꼈다. 이게 바로 사랑하는 감정인가 보다 싶었다, 그는 내 첫사랑이었다. 그 선배와의 만남을 통해 '연애는 자고로 뜨거워야 하고, 그 뜨거움이 동력이 되어 만남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와는 장거리인 데다 직장인과 학생의 만남이었기에 좁혀야 할 간극이 많았고, 내가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기에 헤어지게 되었다.
첫 연애와는 다르게 두 번째 연애는 그 후유증이 꽤 오래갔다. 결국 내 욕심으로 헤어지게 되었으니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 생활에 100% 몰입하기 어려웠다. 그 이후 연애를 6개월 이상 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쉽게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것을 따지며 만나진 않았다.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며 숱한 외로움의 밤을 헤쳐나갔다. 계속해서 상처 받는 연애를 하게 되었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바닥을 치게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장 마지막에 만났던 남자 친구는 인턴을 하게 되었다고 꽤 오래 잠수를 탔다가 한 달 만에 연락해서는 내게 본인의 인턴 중간평가 자료를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때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멍청하게도 피시방에 가서 2박 3일을 꼬박 새워 그의 자료를 만들어줬다. 그는 그 이후에 또다시 잠수를 탔고, 인턴에서 정직원이 되었을 때 '오롯이 자기가 이루어낸 결과물'이라는 단어와 함께 함께한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페북에 남겼다. 나는 그날 밤 그에게 연락 올 것을 기다리다가 그제야 내가 차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후에 우리는 헤어진 것이냐고 묻는 내게 '아르바이트 경력 같이 돈 벌어본 경험이 없어서 넌 사회생활을 몰라'라는 폭언을 남겼고, 나는 그 폭언을 들은 날로부터 23일 뒤 서울로 상경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상처투성이의 날들이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정식으로 만납시다'하는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동안은 보통 알음알음 아는 사이와 우연한 일로 사적인 만남을 갖게 되어 연인이 되곤 했지만 이곳은 내 눈에 그저 정글로만 보였다. 학생 때와는 다르게 사람을 만날 일도 많이 없었고, 대체로 누군가의 고백으로 연인 사이가 되었던 내 연애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아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마음에 든다라고 생각하려면 서로를 좀 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사회에서는 아쉽게도 호감을 잠시 드러냈다가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둘 중 한 명이 먼저 발을 빼는 관계가 많았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에게 깊게 빠지기도 했었는데 첫사랑의 영향인지 나이차가 많이 났다. 그들은 남들이 보기엔 많은 것을 이루어놓은 사람들이었는데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내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때 나는 사랑에 빠졌다. 나만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그 부분을 내가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지냈다. 내가 하나 망각했던 건, 그들은 이미 연애를 해볼만큼 해본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내 크나큰 착각이자 실수였다.
어영부영 마음 가는 대로만 지내며 20대 중반을 보냈더니 금세 20대 후반이 되었다. 두세 살 차이나는 동료나 친구들은 어느새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이르렀고, 주변 사람들은 '널 아는 동안 한 번도 연애한 적이 없었던' 20대 후반의 샐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모두 나를 신경 써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마운 마음에 소개팅 제안을 거절도 못했다. 이제야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2년 동안 서른 번이 넘는 소개팅을 했었다.
소개팅은 으레 비슷했다. 연락처를 받거나 먼저 연락이 오고, 가득 차있는 일정표에서 겨우 시간을 내어 만나는 날짜를 잡고, 어색하게 만나서 통성명을 하고 각자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이 정도 얘기로는 상대를 알기 어려우니 차 한 잔이라도 마시며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를 모조리 긁어내면 네댓 시간이 흘렀다. 소개팅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오늘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했을지에 대해 상상했다. 가벼운 책을 후루룩 읽거나, 짧은 글을 쓰거나,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파티를 하거나, 영화를 두 편이나 볼 수 있었을 것 같다는 등의 잡생각하며 잘 귀가했노라 인사말을 남기면서 소개팅의 막을 내렸다.
대체로는 면접을 보는 것처럼 딱딱하게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이 많았다. 운 좋게 생각이 맞거나 눈길이 가는 사람을 만나면 이상하게 타이밍이 참 안 맞았다. 보통 어떤 무리 안에서 아는 사람과 만나왔던 터라 이렇게 해서는 괜찮은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고, 그중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는 것은 로또보다 희박한 가능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도 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괜찮게 봐왔던 사람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나를 필요할 때만 불렀고 나를 아끼는 존재가 아닌 자랑하고 싶은 존재로 여겼다. 그의 무례함이 극에 달하던 날, 나는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는 엄포를 놓고 드디어 그를 끊어내 버렸다. 그를 끊어내지 못했던 건 내 탓이었다. 나는 연애에 있어서 꽤 많은 겁을 내왔다. 내 의견과 그의 의견이 다르면 어쩌지, 그로 인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를 버리고 그를 취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랬더니 연애가 끝나면 그 사람의 성향과 취향이 내게 남고, 나라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카멜레온처럼 매번 상대와 동일한 사람이 되었고, 연애가 끝나면 어떤 색으로 돌아와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문구점에 가서 노트를 하나 사서 내가 그동안 해온 연애 방식에 대해 적었고, 그 옆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반대의 연애방식을 적어봤다. 6개월에 걸쳐 적고 나서 형광펜으로 내가 꼭 지켜보겠노라 생각한 방식들에 줄을 쳤다.
'어떤 행동을 하든 아니면 말고를 마음속에 새기기'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이야기하기'
가장 핵심은 '아님 말고'였다. 앞으로 남은 내 인생 중 가장 빛나는 시기는 지금일 텐데 아니면 어쩌겠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만나지 라는 생각으로 배려를 조금 덜 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가짐이야 6개월 간 갈고닦았으니 이제 상대만 걸리면 됐다.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생판 모르는 일이지만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삽질을 정말 많이 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자연스레 그와 나를 이어주고자 분위기를 조성해갔고 나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 실낱같은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이 힘들지 실낱 하나를 품게 되니 털 뭉치가 불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모쪼록 협업하던 일을 다 마치고 나는 그와 사적으로 밥을 먹게 되었다. 말도 안 되지만 이 밥도 내가 먼저 먹자고 했다.
협업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고, 카페에 가서 차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사담을 쭉 나누다가 '아님 말고'의 효과인지 나는 정말 토씨 하나 안 틀리고 호감이 있던 그에게 저 말을 건넸다.
"저는 그쪽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쪽은 어떠세요?"
그는 매우 당황한 것 같았지만 나는 이기적 이게도 대답이 어떻든 상관없이 내 마음을 전했으니 됐다는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내 감정을 이야기했다는 것에 묘한 성취감이 들었다. 그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하여 이야기를 정리하고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 1달 여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그와 만나게 되었다.
돌직구를 통해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을 이루었지만 그것을 계속해서 내 습관으로 가져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와 만나는 100일간 매일 '아님 말고'를 5번씩 외치며 하루를 시작했다. 돌직구를 던지며 시작했으니 계속 일관된 행동을 보여주고 싶었다. 딱 내가 노트에 적었던대로만 습관을 들이면 괜찮은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말도 잘 하고, 감정을 내어 놓는데에 익숙한 사람이라 내가 의견을 낸다고 한들 그의 발치에도 못미치는 듯 했다. 벌써 그렇게 지낸지 400일이 넘었고 다행히 나는 그에게 어느정도 의견을 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물론 그 사이에 있었던 다양한 일들로 '아님 말고'라는 생각이 많이 옅어졌지만, 가끔 그를 배려를 한다고 내가 억울해지는 것 같을 때면 '아님 말고'를 입 안에 머금으며 그에게 내 이야기를 해본다.
뜨겁게 연애를 하는 것을 바라던 20대 초중반과는 다르게 지금은 서로 맞춰가고 조율하며, 각자의 의견과 생각을 내고 그 속에서 관계라는 퍼즐을 맞춰가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배우고 있다. '적당히' 따뜻한 온도를 위해서는 수많은 실험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도 인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