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흥청망청, 또 생각보다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적당히 평범한 집에서 자랐던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 필요한 돈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그때그때 타서 쓰는 생황을 했다.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나면 딱히 돈 쓸 곳도 없었을뿐더러 브랜드 옷을 입거나 비싼 화장품으로 꾸미는 데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당시 노스페이스 패딩과 미샤 비비크림 등이 유행이었는데 (이미 훼어니스 로션은 한참 지났다) 나는 지마켓이나 11번가 등에서 교복 위에 입을 스웨터를 저렴하게 사거나, 아웃렛에 가서 중저가 패딩을 여러 개 사 그때 기분에 맞추어 입거나 엄마의 화장품을 가끔 빌려 쓰는 게 전부였다. 돈이 많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딱히 쓸 데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 타 지역에서 홀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기억으로는 3-4개월의 기숙사 비가 120만 원 정도였고, 나는 매월 50만 원 정도의 용돈을 받았다. 다행히 내가 국립대를 다녔기에 등록금도 저렴했고 당시 아빠네 회사에서 학비가 모두 나왔었는데 그마저도 거의 전액 장학금을 받았기에 오히려 돈을 벌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나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기숙사에서 줬지만 점심과 저녁은 친구들과 먹는 일이 잦았고, 교복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으로 화장품이나 옷도 계절마다 샀다. 여기에 장거리 연애까지 했으니 50만 원도 꽤 빠듯했다.
그렇게 4년 간 월 50만 원씩 받으면 생활했다. 어떤 달엔 40만 원, 또 어떤 달엔 가불을 받아 60만 원이 넘게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때는 그 정도 쓰는 것도 적당히 쓰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타지에서 온 친구들은 보통 4-50만 원 정도의 용돈을 쓰는 편이었고, 자취를 하거나 하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으로 돈을 메웠지만 나는 그런 아르바이틀 가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였으나 부족한 돈을 채우기 위함이었고 대외활동으로 100만 원, 200만 원을 받기도 했는데 들여야 하는 시간이 6개월 이상이라 효율적으로 '돈을 벌었다'라고 보긴 어려웠다.
대학생 때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생활비만 2천만 원의 마이너스가 났었을 텐데,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그저 수중에 생긴 돈을 다 쓰기 바빴다. 신용관리와 소비생활 수업시간에 들었던 대로 짧게 돈을 모으는 데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CMA 통장을 만들긴 하였지만 나는 대체로 용돈으로 받은 돈을 조각조각내어 돈을 다 쓰고 다니던 아이였다.
되돌아보면 부모님은 나와 동생이 부족함 없이 자라는 데에 집중하셨다. '자란다'의 의미는 '교육기관에서 배움을 받는 기간'이었고, 대학생 생활이 끝나면 용돈이 끊긴다는 이야기였다. 용돈을 받게 된 무렵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었기에 대학생활이 끝나면 바로 돈을 모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용돈보다 더 큰돈이 꼬박꼬박 통장에 꽂혔다.
당시 회사를 함께 다니던 동료들은 돈을 모으는 것보다 '새로운 경험'에 더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며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씀씀이가 커졌다. 마침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서울과 평택을 오가며 통근을 했으니 내 용돈 기입장엔 교통비와 주류비가 꽤 큰 액수로 추가되었다.
추웠던 어느 날, 왕복 5시간 30분의 통근을 하다가 살짝 혼절을 하고 갑작스레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회사 앞 리빙텔에 살기 위해 필요한 돈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5만 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있을 건 다 있었지만 수건을 너는 빨래걸이 하나를 두면 가득 차는 테트 리스하기 딱 좋은 집이었다. 내게는 1,000만 원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손을 벌렸고, 월세는 내가 직접 내게 되었다. 휴대폰 비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발생한 정기적인 지출이었다.
매달 꼬박꼬박 45만 원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마가 입금해준 보증금 1,000만 원을 보며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인 <12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떠올랐다. 대학생 때 만들어놓은 CMA 통장에는 200만 원뿐이었고, 하루 이체 한도는 500만 원이었다. 부모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제 내가 직접 결혼 자금은 모아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곤란해질 것 같았다.
회사 생활을 한 지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은행에 갔다. 가로수길 한복판에 있는 내 주거래 은행은 vip들을 많이 데리고 거래를 하는 곳이었다. 창구 행원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처음으로 적금과 펀드를 들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 행원 분이 첫 설계를 잘해주신 덕에 ISA와 적금, 펀드를 적절히 시작하게 되었다. 5:3:2의 비율은 꽤 믿음직해 보였고, 내 월급의 50% 정도 되는 금액이라 월세를 내고 나면 적당한 용돈이 남았다. 이대로 모으기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장 3개를 들고 회사로 가던 발걸음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가벼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은행에 다녀온 이후 '돈을 모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온라인 쇼핑을 하지 않고자 공인인증서를 없앴다. 그리고 3-4개월에 한 번씩 은행에 가서 이런저런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세 번 정도 갔을 때, 행원 분과 친해져서 vip가 듣는 상품 설명도 들어봤다. 그래 봤자 시중에 돈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상품에 대한 이해를 높였고, 그제야 내가 가입한 상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상품들을 가입하던 날 행원 분께서 "회사 생활 짧게 하진 않으실 거죠?"라고 질문한 것에 별생각 없이 "길게 할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었는데, 눈을 비비고 보니 모든 상품을 모조리 3~5년 형으로 계약해버렸던 것이었다. 이 돈을 내기 위해 학교처럼 휴학 없이 이 회사를 5년 다녀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머리 위로 큰 느낌표가 쿵하고 떨어졌다.
다행히 적금과 펀드는 정기 이체 비용을 낮출 수 있었다. 낮춘 이체 비용으로 연말정산을 위한 상품을 추가로 들었고, 가끔 외주 일로 들어오는 추가 비용이나 전월에 쓰고 남은 돈이 이월되는 일이 종종 생겨 새로운 상품에도 눈을 돌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전체 월급의 80% 이상을 저금하고 있었다. 어떤 달은 입금된 돈만큼 저금한 달도 있었다. 정말이지 기적의 계산법이었다.
월세를 내고 나면 거의 남는 돈이 없었다. 이때쯤 되니 돈을 모으는 목적은 흐려진 지 오래이고 맹목적으로 돈을 모은다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내 즐거움은 통장 정리하러 ATM을 가는 것 정도였다. 당시 회사는 점심식대를 월급에 포함해서 급여 지급을 했고, 저녁 식대는 8,500원까지 추가로 지원했다. 어차피 일도 많았으니 나는 거의 매일 야근을 했고, 저녁 식대 8,500원으로 편의점에서 내일 먹을 점심까지 구매했다. 다행히 회사 사람들은 점심에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전날 샀던 도시락을 먹었다. 그렇게 6개월을 지내고 나니 삶이 너무 퍽퍽했다. 소비의 위축은 삶의 즐거움을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또 하나의 문제도 발생했다. 당시 내 돈은 1-2년 후에 빼는 것을 목표로 하는, 모두 묶여있는 돈이었는데 이직을 하면서 월세에서 전세로 옮겨야만 했던 것이다. 통장에 있는 돈은 많았지만 깨기엔 너무 아까웠다. 부모님이 주실 수 있는 지원금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상품을 깨며 '직접적 손실'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만기 2달 남은 3년짜리 적금을 깨고 돌아오는 길에 사 먹었던 붕어빵 맛은 아직도 잊질 못하겠다.
전세로 이사를 하고 다시 은행에 가서 포트폴리오 점검을 받으며 다시 설계를 받았다. 장-중-단기 목표에 따라 상품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재테크의 첫걸음이라는 통장 쪼개기부터 시작했다. 굴릴 돈은 없었지만 재테크 서적을 서너 권 보며 앞으로 내게 펼쳐질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리며 저금을 월급의 60%로 타협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아직 적극적 투자를 하는 단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계속해서 돈을 모으는 데에는 예전보다 조금 더 지식이 쌓였다. 지금의 나는 카카오 뱅크와 신한은행 두 곳을 주거래은행으로 삼고 있으며 장기 저축으로는 ISA, 저축보험, 연금저축, 주택청약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중기 저축으로는 ELF/ELS, 펀드를, 단기 저축으로는 예적금과 세이프 박스를 들고 있다. 그리고 내 씀씀이를 확인하기 위해 3년째 용돈기입장을 쓰며 월별 지출과 자산 운용에 대해 가볍게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다.
ISA는 이제 곧 5년 만기가 되는데 나는 연봉을 많이 받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돈을 불리는 용도로 사용하진 못했다. 그래도 5년간 한 번도 안 밀리고 꾸준히 납입했다는 데에 의의를 뒀다. 이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하나 공부하게 만드는 계좌이기 때문에 내게는 고마운 계좌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해에는 여러 이유들로 연말정산으로 인해 많이 뱉어내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는 연말정산을 할 때마다 연금 저축과 주택청약 덕을 톡톡히 봤다. 이제 슬슬 내 집도 마련해보고 싶어 부동산을 공부해보고 있는데 내가 고등학생 때부터 주택청약을 들어주신 아빠에게 다시 한번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해 본다.
1년 내로 필요하지 않은 돈은 ELF/ELS에 넣어 굴리고 있고, 벌써 9번째 묶고 있어 은행에 가면 '설명 안 드려도 충분히 아시겠네요'를 들으며 상품에 가입하고 있다. ELS는 3개월에 한 번씩 조건이 기준점에 맞는지 확인하고 상환 기준에 충족하면 상환을 받는 형태의 펀드이고, ELF는 ELS와 ELD의 중간 형태로, ELS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펀드다. 이 상품의 장점은 조건을 낮게 설정하면 6개월 또는 9개월 내에 조기 상환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예금과 달리 수익률이 꽤 큰 편이라 조기 상환을 받게 되면 수익을 용돈으로 쓰고 다시 ELF/ELS로 묶을 수 있어 내게는 6개월에 한 번씩 받는 용돈이라 생각하고 수익이 생길 때마다 가보고 싶었던 마케팅 세미나에 참석해보거나 큰돈이라 못했었던 원데이 클래스를 가보곤 했다.
적금은 적은 금액을 쪼개어서 1년 단위로 2~3개씩 들었고 적금이 모이면 다시 ELF/ELS에 넣어 6개월의 용돈을 만든다. 예금은 혹시나 당장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돈을 6개를 나누어 들어놓고, 2개월에 한 번씩 예금이 만기 될 수 있도록 하여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사용하고 틈틈이 채워놓는 형태로 운용하고 있다. 카카오 뱅크의 장점인 세이프 박스를 통해 비정기적으로 나가는 각종 대소사나 갑자기 떠나게 되는 여행 비용을 충당하고 한 번 쓰고 나면 다음 달의 나와 그다음 달의 내가 일정 비용이 될 수 있도록 다시 채워놓는다.
나는 아직 돈을 모는 정도의 단계이지 투자를 하거나 불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작년부터 어피 티 레터도 받고, 푼푼도 보며 2030이 어떻게 돈을 모으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봐왔다. 올해는 부동산과 투자에 대해 공부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출퇴근길에 소일거리로 설문조사를 하거나 좌담회 아르바이트도 해보는 게 목표인데 말이 쉽지 실천하긴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핑계를 대본다.
내가 하고 있는 60%의 저축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높은 비율이 아닐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저축 비율을 높여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내 삶을 즐겁게 하기 위해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데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내게 고정지출은 휴대폰비, 교통비, 최소한의 데이트비, 취미생활비 총 4가지로 구성되어있다. 작년 말에 휴대폰을 바꾸면서 고정지출을 조금 줄였고, 그 덕에 SNS에서 핫한 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먹 리어 답터'로서 새로운 먹거리를 매달 2-3개씩 사보는 취미도 시작했다.
내게 적당한 소비란 '내가 가능한 선에서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돈이 노예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며 고군분투를 통해 계속해서 배워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