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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Feb 09. 2020

요즘도 바쁘시죠?

사실 정신이 없는 것뿐입니다

비전공자, 비전문가는 싫어

나는 국어국문학과 국제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교에서 회사생활 잘하는 법을 가르쳐준 적 없었고, 대외활동에 매진하느라 아르바이트도 안 해보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첫 사회생활을 하게 된 장소가 첫 직장이었다. 첫 직장에서 나와 함께 입사한 입사동기 둘이 있었는데 한 명의 책장에는 '신입사원의 일 잘하는 법' 같은 책이 늘 꽂혀있었다. 그 책에는 이메일을 쓰는 법이나 상사와 이야기를 잘하는 법이 적혀있었다. 어떻게 일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주어진 일을 부단히 해냈다. 모른다고 해서 무작정 못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마케팅팀에서 소셜 마케팅을 했다. 당시 소셜 마케팅은 모든 회사에서 뽑는 대세 직무이긴 하였지만 시장에 따로 전문가가 없었기에 그저 '소셜의 핏을 아는 사람'이 전문가였다. 더군다나 그 회사는 온갖 에디팅의 천재들만 모여있는 곳이었다. 적당한 센스는 아예 돋보일 수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깨어있는 시간엔 최대한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 카카오스토리 (6년 전만 해도 소셜 채널 중에서 카카오스토리가 페이스북만큼의 효과를 냈었다)를 중심으로 빙글, 인사이트 등까지 확인하는 게 일과였다.


아직 햇병아리 같은 연차지만 전문가의 반열에 들고 싶었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핸드폰의 SNS 폴더에 속한 앱들만 번갈아 들어갔다. 비공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괜찮아 보이는 광고나 조회수, 댓글 반응이 심상치 않은 콘텐츠는 모조리 공유하고, 누군가 마케팅 관련 인사이트를 올리면 따라 적으면서 외웠다. 에디터들만큼 희뜩한 아이디어가 없으니 나는 모조리 빨아들이는 게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 5회 야근 택시를 탔습니다

나는 거의 자타공인 야그너였다. 첫 직장에서도 야근이 당연했고, 두 번째 직장에서도 야근이 당연했다. 지금 직장은 심지어 거의 야근을 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초반 3개월 동안 꽤 많이 야근을 했다. 현재 직장에 오기 전까지의 라이프 사이클을 야근을 하고 피폐함으로 집 대문을 열고 누군가에게 내가 이렇게 열심히 힘들게 살았노라 이야기하고 잠들었다가 다시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두 번째 회사는 아는 야근 권장 회사였기에 다시 그 회사를 다닌다고 해도 당연하게 야근을 할 테지만 첫 회사는 야근 강도가 그렇게까지 심한 회사가 아니었다. 퇴사를 하고 알았지만 그 야근의 8할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당시 나는 어영부영 일을 한답시고 저녁을 거르고 식음을 전폐하며 일했다. 내가 받아온 교육과정에서는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성과가 난다고 배웠기에, 책상 위에 앉아있는 시간을 늘렸다. 그래서 당시 회사는 강남에 있었는데 강북에 있는 집을 가기 위해 매일 한강을 건넜다. 회사에서 택시비를 지원한 덕분에 반짝이는 한강을 많이 보았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 중 가장 만족스러운 복지였다.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싶어서 술자리도 꽤 빠짐없이 갔다. 10시 넘어서까지 일을 하고 회사 근처에서 3차 정도 달리고 있는 팀에 합류해 그들의 5차까지 맨 정신으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듣다가 서너 시쯤 집에 갔다. 대학교 때 까지는 주량이 소주 1잔 정도였기 때문에 술을 마시는 것보다 취한 사람들을 챙겨주며 이야기 한 번 나누는 게 목표였다. 5일 중 3일은 일하느라 밤을 새우고, 2일은 술을 마시느라 밤을 새웠다. 그래도 나는 강철도 씹어먹을 수 있는 나이, 스물셋이었다.


이런 사이클로 살면서도 나는 이 어마어마한 취업난에서 노동자로서 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가지고 일을 버텨냈다. 평일에 많은 에너지를 회사에 쏟았지만 동시에 대학생 때만큼이나 대외활동을 했다.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원데이 클래스, 마케팅 스터디 등 업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있던 에너지도 모두 소진했다. 하루하루가 에너지를 소진하기 위한 날들이었다. 그렇다고 일을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사회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성과를 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성실한 사람

저 연차의 사람이 빼어난 성과를 만들어 냈을 때 둘 중 하나가 뒷받침되면 된다. 탁월한 리더가 성과를 조명해주거나, 자기가 스스로 성과를 만들었다 어필할 수 있는 말발 즉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졌거나. 전자는 우주의 기운이 모여야 얻을 수 있는데 반해 후자는 개인의 노력이 전부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에서 동료들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정적으로 나는 이 부분이 많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온갖 일은 다 하고 다니는 하는 사람, 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하긴 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대부분의 키워드가 조금 부정적이었으나 단 하나의 키워드는 조금 긍정적으로 보였다. 그 '꾸준히'라는 키워드가 마음에 들어 할 수 있는 건 모두 꾸준히 했다. 심지어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에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있는 시간은 모두 뭔가를 하고 있었고, 에너지가 소진되었을 때는 내가 못난 사람인 것 같았다. 수더분했던 나는 결국 예민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일을 하면서 점점 외로워졌다.

 

"사실 저는 바빠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렇게까지 바쁘진 않아요."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여기저기 써붙이고 싶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시간적 여유도 마음적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시간이 흘러버렸다. 나는 계속 바쁜 사람이었다.



나는 어떤 직장인이 되고 싶은가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에 접어들게 되니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런 사이클로 살 순 없었다. 뒤쳐지기 싫은 마음은 점점 커졌지만 목표가 필요했다. 막무가내로 주어지는 일을 해내고 있었지만 주어진 시간을 빽빽하게 보낼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어떻게 살 것인가, 왜 일을 하는가 등의 고민을 두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한 분이 상담을 해주시겠노라 연락을 주셨다. 그와는 마케팅 스터디를 함께 한 것 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따로 사담을 많이 나누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는 내게 그동안 해봤던 모든 일을 상세하게 적어보라고 했다. 경력기술서를 쓰기 위해 적었던 '마케팅 제휴, ' 콘텐츠 마케팅' 등의 멋있는 단어가 아닌 '푸시 문구 정하기', '포토샵으로 광고 소재 만들기' 등 내가 최근 3년 동안 가장 많이 했던 일을 최대한 자세하게 적었다. 100개의 문장을 적는 게 목표였지만 78개의 문장이 나왔고 그 문장들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앞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 '해야 될 것 같은 일'로 분류됐다. 그 분류를 보며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을 확인했다.



19세까지의 인생은 대학교를 들어오기 위한 자기소개서를 적으며 한 번 정리가 되었지만 20대의 인생은 적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새로웠다. 그리고 그 과정은 너무나도 험난했다. 퇴근 후 혹은 주말에 카페에 가서 빈 종이와 펜을 두고 머리를 싸맸다. 내가 한 일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잘하고 있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년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모든 활동을 접었다. 회사 일과 나에 집중하면 뭐라도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지만 비어있는 무언가를 위해 시간을 들여보기로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합니다

전 직장에 다니면서 상사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었다.

"샐리는 어쩜 이렇게 잘 컸대? 내 아이도 샐리처럼만 컸으면 좋겠는데 부모님께서 육아를 어떻게 하셨을까?"

상사와 함께한 2년 반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두세 번은 들었다. 그녀는 유치원에 다니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는데 내 어떤 모습 때문일지 당시에는 그 말의 뜻을 정확히 헤아리진 못했다.


전 직장에서 나는 종종 큰 캠페인을 맡아 진행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만들어진 캠페인을 더 효과적으로 디벨롭하거나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서브 캠페인을 빠르게 치는 일을 맡았다. 그 상사는 굉장히 불 같은 사람으로, 적극적으로 일을 잘하는 분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으로 큰 캠페인을 하는 동료들에 더 집중하실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칭찬해주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속이 뜨거워졌다.


퇴사일을 정하게 되면서 주말과 평일 저녁을 모두 이용해 인수인계 문서를 만들었고 드라이브에 기획과 실행 문서를 모조리 넣었다. 혹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나는 막무가내로 거의 모든 문서를 남겼다. 그래야 이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제대로 끝인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간 식음을 전폐한 탓에 완료된 인수인계 문서를 훑어보는데 내게는 팀 내에서 진행하는 큰 캠페인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진행한 브릿지 업무가 더 많았던 게 보였다. 조금 더 욕심을 냈다면 더 큰 캠페인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내 일을 하면서 최대한의 욕심을 내왔기에 이 정도면 됐다고 나를 위로했다.


퇴사를 앞둔 날들에 상사와 면담을 하면서 '네가 원하면 돌아와도 된다'라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듣게 되었다. 당연히 붙잡는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느 날 밤인가 그 말이 계속 생각나서 잠을 쉽게 잘 수가 없었다. 내 인수인계 문서에서는 그렇게 멋지지 못한 사람으로만 보였는데 그 상사는 내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주 빼어난 아이디어를 낸 것도 아니었고, 엄청난 성과로 유입을 끌어온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이 회사에서 한 것이라고는 내가 할 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했던 것뿐이었다.



조금 더 천천히, 내가 만족할 수 있을 때까지

첫 직장, 두 번째 직장, 현재의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은 마케팅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는 일이 많이 달랐다. 모르는 부분이 많을 때는 조금 더 공부를 해놓으면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기에 앞으로 비전문가, 비전공자로서 잘 알기 위한 노력은 내 성격과 성향상 지금처럼 해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가적으로 내가 해야 할 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주변 사람들을 보며 어떻게 멋지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지 많이 보고 배우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또는 대외활동을 하면서 스쳐가는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가 바쁘지 않음을 어필하는 게 필요하다. 내 에너지를 내가 스스로 알고 체크하며 넌지시 다채로운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장인으로서, 최종적으로는 알고 보니 성과도 괜찮고 여러 면이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에게는 썅년이다'라는 말처럼 모든 면에서 잘 해내진 못할 것이다. 다만 잘 못하는 날이 51%, 잘하는 날이 49%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잘 못했으면 내일 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내일을 꿈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주 늦더라도, 그런 마음 가짐이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2018년 여름에 만들어진 '내가 빛나기 위해 발버둥 친 기억과 기록들'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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