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시작
온라인 독서모임을 1년 4개월 정도 참여했다. 기후정의 독서모임이라는 취지에 맞게 다양한 책을 접했고, 또 거미줄처럼 엮인 책들과의 만남이 이어졌었다.
2주에 한 번이었지만, 책을 읽고 담당 부분 발제준비를 해야 해서 나름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야 했던 부담감이 있었다.
가끔 지치고 피곤해서 쉴까, 고민한 적도 많았고, ‘이번 책은 쉬어갈게요’하고 발을 빼고 싶은 적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흩어지는 마음을 끌어모아 모임에 참석하면, 항상 여운으로 남았던 감동, 보람, 기대, 들뜨는 마음들이 나를 약속한 시간에 화면 앞으로 끌고 나왔다.
온라인이라 덜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어디서든 태블릿이나 핸드폰으로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오프라인 독서모임은 사람들을 직접 마주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장소에 제약을 더 많이 받게 되고,
애써 시간을 절충하고 정해도 꾸준한 참여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많을 것 같다.
온라인모임에서도 아이 셋을 케어해야 할 저녁시간, 혼자 방구석에 들어가 모임을 하는 것도 쉬운 것은 아니었는데 오프라인이라면 더 어렵겠다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남편과 그날 읽은, 혹은 읽고 있는 책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다.
둘 다 읽었던 책에 대해 주고받는 대화와 나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조금은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나 혼자 읽고 기억 속에 묻히지 않고 더 많은 담론을 끌어내어,
나 자신에게도 진일보하고, 나누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고 함께 길을 찾아 나서는 경험들을 하고 싶다는 갈망.
책을 왜 읽는가? 스스로 많이 하는 질문이다.
때에 따라 다르지만,
지식 충족, 유희, 즐거움, 일상에서의 도피, 타인의 세계 경험, 좀 더 고차원적인 삶을 위한 지적 허영심….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꾸역꾸역 책을 읽는 건,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이미 알았다고 하는 분야에도 새로운 것 투성이라는 것을 자주 깨닫게 되므로..
책은 그렇게 나를 겸허하게, 진중하게 만든다.
그러고 보면 다독의 허영이 삶의 허영을 몰아내주는 것 같다. 많은 책이 나를 다독여 흔들리는 나를 지탱해 주었다.
많이 읽는 것보다 깊이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독서모임은 책을 좀 더 깊이 읽게 도와준다.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서 많은 물결들이 일어난다.
그것이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서 들뜨고 불안하고 겁날 때도 있다.
그래서 계속 읽는다. 읽다 보면, 바라는 이상향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 같아서.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길벗을 만나고 싶다.
각각 다른 삶을 살아도 비슷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만나 더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또 새로운 길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 그런데 소심한 나는 누구처럼 용감하게 모임을 구성하고 주도할 용기가 없었다.
거창하게 어떤 주제, 방향성을 따지지 않아도 함께 책을 읽을 사람들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다. 앞으로도 우리가 하게 되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는지 둘이서 독서모임을 해보자고 했다.
모임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온라인독서모임의 경험을 나누어 서로 의견을 맞추었다.
첫 책은 무엇으로 할까.
마침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가 좋겠다고 제안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과 맞닿아 있다고도 여겼고
경험해 보지 않으면, 공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책을 구입하고, 남편은 밀리의 서재로 전자책을 보기로 했다.
매주 1부(총 4부)씩 읽고 책 내용을 나누고, 질문을 내놓고 이야기해 보기. (후에 어려운 책은 나눠서 요약발제도 해보기로 함)
시간은 내가 쉬는 날 저녁으로 잡았는데, 일이 생겨서 지난 일요일 오후에 첫 모임을 했다.
조금은 어색하고, 두서없는 말들도 많이 쏟아졌지만 책 속의 주제들을 가지고 생각을 나누고, 들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이 금세 흘렀다. 늘 책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좀 더 특별하고 유의미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이주민, 노동자.. 매주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앞으로도 함께 읽을 책과 우리가 살아갈 길과 방향을 기대하면서, 또 마음을 같이 할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우선은 우리들부터, 여보 다음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