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그러는 걸까

9월 23일 : 일반병실로 가다

by 예정

“아빠가 새벽에 또 전화 왔었다. 상태가 괜찮으면 일반 병실로 올라가겠다고 의사 선생님께 말해봐야 되겠다.”


다시 내과 면담이 있었던 날. 엄마는 만나자마자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기운을 차리시면서 배가 고프다, 무엇이 먹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등 계속 엄마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

112 신고 사건 이후 전화기를 그냥 뺏어오라고, 엄마도 잠도 못 자고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아직 그럴 상태가 아니라고 여러 번 얘기했었는데

“아빠가 혼자 있어서 불안해서 더 그런 거 아니겠냐. 내가 옆에 있으면 좀 나을 거야.

배가 얼마나 고프겠어, 이 상황에서 그거라도 해주고 싶다. 살 시간이 얼마나 남았다고…”


입원한 날, 엄마는 속이 좀 후련해 보이셨었다.

병원에 안 가겠다고 버티며 악다구니를 하는 아버지에게 얼마나 질리셨을까.

아버지와 좀 떨어져 있고 싶다고도 했다.

아버지 때문에 답답하고 스트레스받아서 심장이 더 안 좋아진 것 같다고.. 너무 힘들다고 했었다.

그런데 일반 병실로 가신다고요? 24시간 사람이 붙어있어야 하는데?

예전에 허리수술도 하셨으면서 힘들어서 어떡하려고..

점점 아버지에게 다시 휘둘리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떨 칠 수가 없어 화가 났다.

“일반 병실 가면, 너희들도 자주 들여다볼 수도 있고… 뭐라도 좀 먹을 수 있으면 낫지 않겠나?”

- 아니라고요, 엄마, 정말 진력이 날 거예요! 아버지를 아직도 몰라요? 분명 집에 가자고 또 조를 거고..

엄마 혼자서 욕창치료하고 기저귀 갈아주고, 음식 못 먹는 아버지 앞에서 끼니라도 제대로 드시겠어요?

아버지 음식 먹으면 배에 가스도 차고, 염증도 심해지면 도돌이표예요, 또... 아직은 아니에요.

언니도 너무 바쁘고, 나도 일하고 집에 애들 챙기느라 시간 쪼개서 이렇게 오는데..

이럴 거면 귀국한 둘째 언니라도 붙들어 놓지..


중환자실 입원 1주일이 지난 오늘,

혈압이 안정되어서 승압제는 떼었고, 염증수치가 꽤 떨어졌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고,

빈혈수치가 떨어져 수혈을 받았는데 좀 좋아졌고, 음식을 먹으면 다시 장에서 정체되면서 염증이 심해질 수도 있어서 금식해야 하고,

욕창이 발생한 엉덩이 쪽과 봉와직염 진단을 받은 다리가 아파서 때마다 진통제를 맞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환자실보다는 케어가 쉽지 않겠지만,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고, 4인실에 자리 하나가 비었으니 바로 오후에 일반병실로 옮기기로 했다.

말은 의논한다고 하셨지만, 늘 두 분의 문제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결론은 엄마에게 있다. 그 배후엔 아버지가 있다.

아직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비추시며 결의를 다지시지만, 나는 물음표다.

아버지는 여전히 자기 멋대로이고, 엄마의 희생과 수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니까.

지난주 내내 휴일과 오후출근인 날에 시간을 내어서 병원을 오가며,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전달하고, 의논하며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애들 중간고사 기간이라 집에도 신경 쓸게 많았던 터라.. 모든 일이 끝나고 한밤이 되면 남편을 붙들고 우는 날이 많았었다.

그런데, 또 제자리가 된 기분이었다.

엄마를 좀 맘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고민과 노력들이 또 부정당하는 것 같다.

집으로 입원준비물을 챙기러 가기 전, 엄마와 점심을 먹었다.

안 그러면 엄마가 점심도 제대로 못 챙겨 드시고 병원에 들어가실까 봐..

마음은 그러면서도 말은 곱게 나오지 않았다.

- 이제 두 분이서 알아서 하세요.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우리가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서운해 마시고요.

엄마에게 화낼 일이 아닌데 왜 그렇게 속상했을까?


엄마는 항상 그랬다.

우리에게 아버지 때문에 힘들다고 만날 때마다 하소연을 하면서 아버지를 떠나지 못했다.

아니,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날은 일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고 했다. 왜 그냥 딸내미집에 간다고 말을 못 하냐고 하면 볶이기 싫다고 했다.

손주들을 이뻐하고, 잘 놀아주는 다정한 할머니는 너무너무 자주 오고 싶은데, 이렇게 와서는 나에게 아버지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한 날은 광분한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듯 나와, 큰언니에게 연락을 했다고 했다. 겉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그 모습에 언니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고..

그렇게 아버지를 피해 둘째 언니네 집에 갔다가 며칠 뒤 우리 집에 와서 하루 묵고 가시는 날, 나에게는 우리 집에 온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너한테까지 왔다고 아버지가 더 난리 칠 거라고...

왜 나는 항상 모른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왜 나에게 분노하고, 화낼 기회를 주지 않나요?

그때 4남매 모두가 이혼하시라고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결단을 내버리고 싶었다.

홀로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 언니는 미친 듯이 화분을 깨고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싸우다 눈에 실핏줄이 다 터졌다.

그렇게 며칠을 자녀들 집을 돌다가 마음을 정리한 엄마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전화를 하니 괜찮다고 걱정 말고 잘 지내라고 했다.. 어떻게 괜찮을까, 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큰언니, 작은언니, 나는… 한동안 잘 지낼 수 없었다.

태풍이 지나간 뒤 부서지고 폐허처럼 남겨진 마음은 분노와 무기력함에 타올라 까만 잿더미가 되었다.

우리들의 일상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엄마는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 간극이 참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게 간신히 이어온 인연이다. 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아이들에게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이니까 때가 되면 친정을 찾았었다.

때마다 용서하고 용서하려고 했지만, 잊을만하면… 둔해질 만하면 아버지와 엄마가 던지는 돌에 일상이 흔들었다.

너무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가도 엄마는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고, 그런 엄마에게 나는 조금씩 멀어졌다.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엄마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일찍 만난 아버지는 유일한 가족이 되었겠지.

아이를 낳고 살면서 가장 역할을 못하는 남편과 시댁에 기대어 버티는 삶은 얼마나 서러웠을까?

그럼에도 기댈 친정도, 형제도 없이 외롭기만 한 엄마에게 아버지는 큰 존재였을 것이다.

지독한 가난 속에 네 아이를 길러내는 것이 쉬웠을까?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와 헤어지지 않은 것이 때로는 엄마의 훈장이 되었다.

그것이 참 감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묶어두는 좁은 울타리가 되었을 뿐, 지붕이 되어주지 못했고

엄마는 팍팍한 삶을 살아내느라 따뜻한 담요같이 우리를 덮어주지 못했다.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는 집, 그나마 형제를 의지했던가..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애쓰고,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집안일을 도우면서도 참 외롭고 시린 시절이었다.

지금도 기억하는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서 부모님은 나에게 아무 역할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억압하고 상처를 더 깊이 내는 역할을 하고,

아파서 괴로워하는 나를 엄마는 안아주지 못했다. 자식 많은 집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겠지.

엄마의 삶을 나는 다 이해할 수도 없겠지만, 엄마도 이렇게 자란 내 속을 다 알지 못한다.

칠순이 넘은 엄마에게 이래야 돼, 저래야 돼 야단치듯이 말 할 때는 나도 내가 참 모지고, 냉정한 년 같다.

아직도 엄마와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요청할 땐 언제고,

결국은 자식들 말보다 아버지 뜻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움직인다.

본인이 힘든 감정을 우리에게 다 흩뿌려놓고, 얼룩진 우리의 마음과 감정, 그건 안중에도 없고.

오직 아버지, 아버지..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는 것 같은 그 이를 버리지도 이기지도 못하는 엄마.

어떤 이론으로 설명하고 이해한다 해도 나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마음일 것이다.


엄마는 집에 가서 짐을 챙기고, 나는 욕창방지매트를 사서 병실에 가져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또 돌아가는 길에 언니와 통화를 하고.. 엄마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엄마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겠지. 마음은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언제 엄마는 아버지에게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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