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 중환자실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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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 입원하지 일주일이 된 아버지가 가족단톡방에 올린 링크이다.
입원 4일째 되던 날에는 쿠팡으로 휠체어를 주문하시더니, 그날 밤중에는 112에 신고를 했더란다. 자기가 여기 갇혀있다고..
일종의 섬망 증세인가 했지만.. 대화를 해보면 너무 멀쩡해 보였다.
승압제 투여와 부정맥 약으로 혈압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항생제 투여로 조금씩 염증수치도 떨어지고, 영양제를 달아 기운이 좀 생기고
아플 때마다 진통제 주사를 맞으니 조금은 살만해졌나 보다.
중환자실은 하루 한 번, 오후 1시에 30분간 면회가 가능하다.
매일 엄마는 물론이고 큰딸, 손주들, 아들, 큰사위 돌아가면서 면회를 하고, 멀리 사는 아버지의 여동생도 왔다 갔다.
(주말에는 우리 아이들과 귀국한 둘째 언니도 얼굴을 보았다.)
손주들을 볼 때는 한없이 너그럽고, 간호사들에게는 공주님~하면서 고맙다고 말도 잘하시는 온순한 할아버지 행세를 하다가..
컨디션이 좋아질수록 새벽에도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수시로 문자를 보내면서 퇴원하고 싶다고 압박을 했다.
중환자실에 혼자 남겨진 아버지를 불쌍히 여겨 전화기를 가져다준 건 엄마였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나서야 전화기를 수간호사에게 잠시 수거당했다.
입원 5일째 되던 날, 내과 선생님과 면담이 있었다.
중환자실에게 환자에 대한 조치나 치료에 관해 안내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 때문에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서 상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정형외과에서 봉와직염 진단을 내렸고, 근본적으로 장에서 구멍이 난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다리근육조직에 농양이 심해지고,
그것 때문에 다시 패혈증이 오거나 괴사와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것이 없기 때문에 전원 하셔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셨다.
전원 신청을 하고 알아봐 줄 수 있지만,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정말 주의 깊게.. 상세하게 설명해 주신 의사 선생님에게 감사하며, 가족들과 의논해 보겠다고 하고 나왔다.
큰언니도, 엄마도 나도 어떤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그냥 결정을 내려야 하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원 해서도 우리가 기대하는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아버지 몸상태가 그 모든 걸 견딜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병원만 돌며 고생만 하다가 가시게 하는 건 아닐까.. 아버지가 전원 얘기만 해도 화를 내는데 어떻게 하겠냐..
면회시간이 다가왔다.
언니는 일 때문에 헤어져고, 엄마와 내가 남았다. 큰고모와 고모부가 오셔서 함께 기다렸다.
아버지에게 한 번 더 상황을 설명하고 병원을 옮기자고 설득할 요량이었다.
틀니를 빼고 목소리가 작아 잘 들리지 않아서 얼굴을 가까이 대고 이야기를 하는데,
아버지의 사나운 얼굴을 보았다. 아직 큼지막한 주먹이 내 얼굴가까이에서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의 말은 대략 이랬다.
여기가 어떤 곳인 줄 아냐, 여기서 나가야 한다, 네가 내 고통을 아냐, 너는 알지도 못하면서 또 그 전원 얘기냐, 나는 안 간다, 퇴원할 거다..
사실 좀 충격을 받았다. 분노에 일그러진 표정과 부르르 떨던 주먹이 이미 내 가슴을 한 대 치고 지나갔다. 속이 상하면서도 정말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빈혈수치가 떨어져서 수혈이 필요해, 수혈동의서를 쓰고 있는데..
면회온 엄마 옆에서 이불을 걷어차고, 수액줄을 잡아당기는 액션을 보았다.
그래 우리 아버지가 쇼맨십이 있는 사람이었지. 남한테는 함부로 절대 못하고, 약한 엄마와 어린 우리들에게 막대하고 분풀이하던 사람이었지.
병실을 나와 수간호사가 다시 한번 전원의사를 물었다.
결정을 해야 했다.
정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전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 기회를 차버려도 되는 걸까.
이것은 나 혼자의 의견이 아님에도, 이것이 옳은 결정인지 훗날에도 끊임없이 의심할지도 모른다.
큰고모는 여러 수술경험을 이야기하며, 전원 안 하는 게 낫다고 여러 번 잘 결정한 거라고 했지만..
나는 내 입으로 그런 결정을 전달하는 대표자가 된 것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누구를 향한 원망인가? 아버지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마지막까지도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구나.
이제껏 인연 끊고 살고 싶었던 마음을 돌이켜 들여다보고, 노력했던 가족들의 마음을 짓밟고 상처 주는 당신.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생의 길목을 가로막은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무게에 짓눌려.. 슬픔과 분노에 잠겨 들고 있었던지도..
그리고 나는 출근을 했다.
일상에 계속 균열이 생겼지만,
슬픔과 분노에 삼켜져서는 안 되겠기에
나는 또 살아야 했다.
환자의 권리를 들먹이며, 자신이 당하는 ‘정당하고도 마땅히 필요한’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를 볶아대던 아버지는
일주일 뒤에 일반병실로 내려왔다. 엄마의 24시간 간병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