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에 대하여

by 예정


귀찮아서, 혹은 타이밍이 안 맞아서

재고처럼 오래된 호떡믹스로

동글납작하게 호떡을 구웠다.

겨울이면 붕어빵이고, 호떡, 호빵이지.ㅋ

아이들과 냠냠, 잠시 입은 즐거웠지만.

날은 추워서 집콕이고

뱃살은 두둑해지고 ㅠ

뭔가 시무룩.. 불만스러워진다.



<연루됨> 후반부에 <세계 끝의 버섯>을 읽고 쓴 저자의 글에

작년 초까지 벽돌책을 함께 읽었던 독서모임 멤버들과

어렵게 헤매며 읽었던 그때가 생각나 그리웠다.


겨울은 쌀쌀하다.
삶은 여전히 뚫고 나아간다.
<세계 끝의 버섯>


맞다. 삶은 여전히 나아갈 뿐이다.


삶의 구획마다 ‘마주치는’ 변수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나는 두려운가, 설레는가..

오늘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작년에 몇 달 미루기도 했던 “어글리어스채소박스”

정기배송 62회차가 되었다.

못난이 농산물 구제에 좀 기여를 했을까.

판로가 없는 채소가 덜 버려지도록 기여를 했을까..?

위급한 종류 위주로만 산 것은 아니라서 기여는 좀 미미했을 것 같지만..

좋은 채소를 다양하게 먹는 기쁨을 농부와 나누었다.


한 때 나는 아주 설레며 채소박스를 받았다.

스스로에게 긍지를 주면서.

자연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한 방울의 노력을 보태었다고.



새벽에 일어나 남편에게 샌드위치 도시락을 싸주었던 토요일.

평소에 별로 챙겨주지 못하는 아침밥, 오늘은 아내의 애정은 듬뿍 담았다.

소스가 좀 적어서 싱거웠던 듯. 소스 만드는 것도 좀 배워야 하는데..ㅋ


정성 들인 도시락에 받는 이보다 주는 이의 마음이 더 두근거린다.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 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
나는 다른 직업에서도 인공지능으로 인해 긍지를 잃을 사람이 많아지리라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어떤 일의 의미와 인간의 유능함을 납작하게 짓눌러 버릴 것이다.
그 영역에서 문학은 예외일까?

62쪽, <먼저 온 미래> 중에서


사실, 계속 ‘알파고’-바둑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 영역이 바둑 하나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읽힌다.

그래서 글쓰기에 진심이지만 실력은 하찮은 나로서는 AI를 사용하는 것이 아직도 찜찜하다.


그것보다 첫 문장에 꽂혔다.

사람은 의미 있는 일을 자신이 잘 해내고 있다고 믿을 때 긍지를 얻는다는 것.

내가 지금(요즘) 얻고 싶은 것은 그런 긍지.

그런 자신감이 아닐까.. 하고.


<프로보노> : 어제 재방과 오늘 편을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가슴이 뛰었다.


<노무사 노무진>을 보았을 때도 나는 아주 진지했고

감정이입했고, 마지막 편쯤 펑펑 울었었다. 개연성 없는 눈물이었다.

과잉감정이입이라 창피하긴 하지만 난 진심이었다.

정말 중대재해처벌법의 제대로 된 시행을 바랐고

청년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많은 위험과 죽음들, 고통들이 너무 마음이 아팠고 걱정되었다.

광장에 나아가 시위를 한 적은 없으나, 늘 시선이 가는 이슈였다.

김용균재단에 적게나마 후원도 하면서.. 사회가 바뀌길 바랐다.

이 모든 것들이 드라마라는 매개를 통해 내 안에서

끊임없이 스파크를 튀기는 것이다. 잊어버리지 말라고

외면하지 마라고..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지나고 있다.

이 차디찬 겨울에서도 안온한 내 삶이 그저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나는 가끔 멈추고, 아니 자주 멈추고 묻는다.

하나님께, 나 자신에게…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냐고.


내 삶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은

맛있는 음식, 단란한 가족,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가

삶의 긍지를 주는 어떤 행위였다가

어떤 대상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일이 아닐까.

피해자의 연대를 지지하고,

모두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상흔들을

드러내고, 보듬을 수 있는 그런 무리, 모임.

사회 어딘가에 무명으로 반짝이고 말 하찮은 불꽃하나가 되는 것.

그게 나의 이상이자 꿈이다.

그 꿈이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정말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2026.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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