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 일기
문득 강의를 듣다가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
궁금한 책이라는 것이 더 정확하다.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쓴 <담론>이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퇴근길에 그냥 집에 가서 쉴 것인가 아니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것인가?
순간의 갈림길에서 운전대를 잡은 손은 갈등 끝에 언덕배기에 있는 도서관에 차를 밀어댔다.
부랴부랴 책 6권을 도서대에 올려놓고 회원증을 주었는데 아뿔싸 오래된 회원증이라
재발급이 필요하다고 했다.
코로나 19라는 뼈아픈 현실은 도서관 문턱을 수없이 들락날락하던
나를 단숨에 멈추게 하였다. 한동안 도서관을 못 왔고, 급히 챙겨 온 회원증이 문제였다.
6시부터 1시간 동안 방역을 위한 소독시간이라 대여시간은 고작 5분 남았다.
다행히 사서는 감사하게도 빠른 발급을 해주었다.
하루를 묵힌 두껍고 빛바랜 책을 새벽녘에 들어 한 장 한 장 넘기게 되었다.
작가의 필체는 너무도 탄탄하고 마력이 있어 빠져들게 하였다.
빌려서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단골 중고매장을 폭풍 속도로 검색하였다,
새벽 단잠을 뒤로하고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순간 삶의 역동감이 벅차올랐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절망과 역경을 ‘사람’을 키워내는 것으로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 불식碩果不食의 교훈입니다.” -신영복 <담론> 중에서-
출근 전에 생각한다. 언제 이 책을 서점에서 데려올지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요 며칠 동안 일도 분주하고, 몸도 지쳐있어서 특별한 기쁨을 찾기 힘들었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마주하는 속 깊은 진실은 참 살맛 나게 한다.
주말에 남편에게 운전석을 맡기고 딸과 함께 대형마트로 향했다.
남편은 2층에서 장을 보고 나는 딸과 1층 중고도서 매장으로 향했다.
도서 위치 A10 [위에서부터 1번째 칸] 제일 꼭대기 칸에 위풍 당당히 뽐내는 책을 발견했다.
접이식 이동 계단을 올라가 책을 꺼내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새책은 아니지만 새책에 버금가는 책을 9,740원에 행복을 샀다.
때론 옷을 살 때보다도 책을 살 때가 더 기쁘다.
옷은 미적인 감각을 높여준다면 책은 사람됨의 정체성을 각인시켜주고, ‘앎’이라는 아름다운 인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일까?
책은 가보지 않은 곳을 가게 하고, 만나보지 못한 이를 만날 수 있어서 흥미롭다.
돈과 물건이 대체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공간, 사유의 공간이야말로 각자의 삶을 디자인하는
행복한 핵심 요소임은 틀림없다.
책부자가 된 오늘, 행복이 밀려온다. 가끔은 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