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치킨 런>, <숀더쉽 시리즈> 등을 제작한 아드만 스튜디오의 대표작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자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묘한 사랑스러움이 있다. 아마도 점토로 만든 동그랗고 큰 눈과, 월레스의 새하얀 이빨이 도드라지는 미소에서 비롯되는 감상이 아닐까 싶다. 캐릭터들을 조형하는 점토의 질감과 움직임은 그들을 단순히 서사의 주인공으로서의 몰입 대상이 아닌,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점토인형이나 장난감과 같은 추억의 감각을 보유하는 대상으로서 여기게 한다.
이 시리즈의 창작자이자 고전 코미디의 열렬한 팬인 닉 파크는 고전 코미디 영화의 연출 방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특히 점토의 애니메이션 움직임이 강조되는 장면들에서는 대사 없이 상황이나 동작만을 통해 유머스러운 장면을 연출해내는데, 여기서 사용되는 문법이 대개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등의 무성영화 코미디의 문법에서 학습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개 말을 하지 않는 강아지 캐릭터 그로밋이 주로 이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오마주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제작 방식과 결합하여 더욱 강조된다. 움직임이 매끄럽지 않은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특성은 영화가 등장한 이후 초기 18프레임으로 제작되었던 무성영화의 움직임을 연상케 한다. 프레임이 끊기면서 동작이 불완전하게 연결되는 움직임은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위험이 될 수도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점토의 감각에 대한 추억을 통해 관객은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1989년 시작된 이 시리즈는 이제 나름의 고전이 되었다. 치즈로 이루어진 달로 날아가, 빵에 치즈를 발라먹는 장면은 오랫동안 기억될 명장면이 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득 메워진 스크린 가운데서, 한 프레임 한 프레임 수작업의 조형을 통해 제작되는 이 영화는 존재 자체로 질문을 던진다. 중요한 점은 이번 영화,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의 주제의식이다. 영화는 이 시대의 AI를 상징하는 '노봇'이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AI에 대한 담론을 제시한다.
영화가 작성하는 대답은 가장 적절한 대답인 동시에 지나치게 원론적이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 또한 있다. 'AI를 선한 의도로 사용하면 괜찮을 것이다'라는 주장인데, 이는 꽤나 직접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 노봇은 극중 악역, 페더스 맥그로에 의해 프로그래밍 설정이 '악함'으로 설정되자 악행을 일삼고 자체적으로 악역이 된다. 그러나 후반부 월레스와 그로밋의 선역 일당은 그 프로그래밍 설정을 '선함'으로 다시 바꾸며, 영화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프로그래밍 설정이 바뀌는 장면에서는 직접적으로 'Good'과 같은 언어가 크게 제시됨으로써, AI 기술의 사용 방식을 결정하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선한 성격으로 돌아온 노봇과 기존의 월레스와 그로밋, 그리고 사람들이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에필로그 성격의 결말을 바라보며 AI라는 문제에 대한 접근법, 그리고 현 시점의 이 문제를 영화는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확인한다.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영화 속 AI의 묘사는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의 HAL 9000일 것이다. 빨간 LED의 렌즈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장면은 인간이 미지의 AI에게 느낄 수 있는 공포를 근본적이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연출한 예로 기억된다. 그 전에도 65년 <알파빌>이라는 영화에서 장 뤽 고다르가 알파 60이라는 컴퓨터를 등장시킨 사례도 있다.
AI라는 개념 및 컴퓨터 인공지능에 대한 언급이 1950년대에 시작되었기 때문에 영화에서 AI가 등장한 역사 또한 짧다. 기술이 발전되고 점차 AI가 현 시점에서의 문제에 가까워질수록 AI의 스크린 출현은 잦아졌다.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등의 SF 장르를 통한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AI의 소재가 주로 사용되었음을 생각하면 AI에 대한 인식이 주로 공포라는 감각으로 형성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가끔 <그녀>와 같은 영화도 있었다.)
최근에는 톰 크루즈가 제작한 두 편의 영화를 눈여겨볼만 하다. 아무래도 톰 크루즈는 컴퓨터로 CG를 입혀서 영화를 제작할 바에는 그냥 내가 뛰고 말게, 하는 방식의 액션을 고집하는 성격이라 그런지 AI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답변을 반복적으로 내놓는다.
예로 <탑건 : 매버릭>에서는 군사기술에서의 AI 시스템이 무용이 되자 인간 개인의 초인적인 능력으로 상황을 극복하고 영웅이 되는 서사가 확인된다. 초인적인 영웅의 능력이라는 설정이 영화의 문제를 우문으로 만들어버리는 지적이 있지만 톰 크루즈를 비롯한 제작진은 인간으로서 쟁취할 수 있는 낭만을 주목하게끔 유도한다. 'Not today'라는 대사는 직접적으로 인간이 기술에 대체되는 문제가 당장 지금은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은 <탑건 : 매버릭>에서 지적받았던 비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벗어나, 기존 시리즈의 서사를 확장하면서 동시에 AI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담론을 제시하였다. 엔티티라는 이름의 AI는 현실 속 AI를 통해 체험되는 공포를 온전히 재현한다. 이는 곧 불확실성의 공포라는 이름으로 확인되는데, 인공지능이 온전치 못하거나 임의로 악한 의도가 심어졌을 때 그것이 제시하는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공포이다. 특히 이는 AI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을 때, AI를 거쳐 바라보는 세계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의 공포로 확장된다. (그렇기 때문에 과제를 AI로 작성한 이후에는 반드시 검토 단계를 거쳐야 한다. AI가 틀린 답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영화 시대로 건너온 이후 스크린 속 재현되는 세계의 불확실성은 이제 인간이 아닌 AI가 세계를 창조해내는 단계에 접어들어 새로운 문제로 전환된다. AI 시대로의 전환을 통해 특정한 결론이 도출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시점에 가서야 지금의 시각들을 결과론적으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창작자들의 진영에서 AI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는 HAL 9000의 빨간 렌즈를 바라볼 때처럼 불확실하며 두려운 문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