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영화의 열차 -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에 덧붙이기
두 영화를 AI를 소재로 한 최근의 매력적인 영화들로 비교하면서 무엇인가 빠뜨렸다는 불편함이 계속 있었는데,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의 향수에 취해 전작들을 다시 돌려보면서 생각났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연출자들은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을 필두로 한 고전 코미디 영화의 문법을 차용하여 스톱모션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살려 재미를 봤다. 이중 특히 버스터 키튼은 스턴트 액션을 통한 슬랩스틱 장르로 유명한데 열차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이 대표적이다.
갓 발명된 영화는 근대 문명의 상징과 같은 열차를 자주 등장시켰다. 혹자는 필름의 연속 이미지와 열차의 창문을 통해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의 유사성을, 무의식 중에 영화라는 매체가 열차를 채택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최초의 영화로 잘 알려진 <열차의 도착>을 시작으로, <대열차강도>와 같은 작품이 초기에 있었다. 그리고 버스터 키튼의 작품들은 영화와 열차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버스터 키튼이 열차 위에서 해낸 창의적인 스턴트 액션을,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활용해 오마주한다.
일례로 <전자바지 소동> 편에서는, 집안의 모형 열차 위에서 캐릭터들이 액션을 벌이는 설정으로, 측면에서 열차의 진행 방향을 따라 카메라가 트래킹하며 촬영되는 샷에는 분명히 고전에 대한 동경이 담겨있으며 총에 끊긴 갓등이 그로밋의 머리 위로 떨어지거나, 선로가 끊기자 장난감 선로를 바로 앞에 깔아가며 악당을 추격하는 장면은 독창적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도둑과 그를 잡기 위한 자경단의 추격전이라는 면에서 고전 서부극 장르가 연상되기도 한다.
다시 최근의 <복수의 날개> 편으로 돌아가, <월레스와 그로밋> 시리즈는 AI를 소재로 다루며 다시 한 번 열차를 등장시킨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마지막 시퀀스의 열차 추격씬이 그것이다. 이 씬은 직접적으로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의 결말부를 오마주한다. 열차가 다리를 지나갈 때 다리가 폭파되고, 주인공은 극적으로 살아남으며 악당이 쟁취한 주머니 안에 다른 물건이 들어있는 전개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제 4의 물결의 사전 징후로 보는 가운데 두 편의 영화는 근대문명의 상징 자체인 기차를 위협에 빠뜨린다. 열차가 파괴될 위기에 몰리는 서사는 종종 있어왔으나, 주로 액션영화에서의 열차 액션은 문명을 통한 편의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AI 담론을 내세우는 이 두 작품의 열차 액션은, 근대화 이후의 물질문명과 사고방식에 대한 위협으로 감각된다. 다시 말해 AI를 바라보며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은, 안전하다고 믿었던 열차의 철도가 갑작스레 끊기는 사고로 은유된다.
사람들은 그 불안을 나름대로 해소해주는 작품들을 감상하며 위안을 얻는다.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에서 월레스와 그로밋, 그리고 AI 로봇인 노봇이 행복하게 어울리는 결말을 보면서는 '그래, AI를 좋은 목적으로만 이용하면 우린 더 좋아질 거야'라는 식으로 위로를 하게 된다.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에서 톰 크루즈가 오토바이를 타고 절벽 아래로 뛰어 활공하는 장면을 보면서는, <탑건 : 매버릭>에서의 'Not today'를 떠올리며 인간으로서 해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월레스와 그로밋 : 복수의 날개>는 고전적 제작 방식을 통해 강한 향수를 제공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한동안 영화 흥행에 실패했던 아드만 스튜디오가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적 맥락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은 클리프행어식 결말을 택하며 AI 시대에 대한 제작진의 선명한 대답은 다음 작품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내용이 됐건 톰 크루즈의 시대 역행적 액션은 또다시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