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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완벽한 일상을 애써 지켜내는 일그러진 얼굴

by joyakdoll Mar 11. 2025

빔 벤더스가 일본에서 제작한 <퍼펙트 데이즈>는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서사로 조형했다는 점에서 <패터슨>을 연상케 하며 영화의 후반부에서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그의 대표작 <파리, 텍사스>의 트래비스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영화 초반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일상은 영화의 제목대로 완벽한 나날들이다. 관객에게 처음 제시되는 하루에서 히라야마는 성실하게 일을 하고, 풍경을 필름카메라로 찍으며 행복해하고, 새싹을 담아 집으로 가져온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밖에서 밥을 먹는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책을 읽다가 잠에 든다. 관객은 지나칠 만큼 평온한 히라야마의 일상을 바라보며 스크린 상의 낯선 이미지를 체험한다. 히라야마의 일상은 관음의 대상으로 부르기 어려울 만큼 정제되어있는, 건강한 일상이다.



그러나 일상이 반복될수록 관객은 평온함 이상의 낯섬을 마주한다. 극중 히라야마와 타자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히라야마는 동료 타카시의 말마따나 과묵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인물이다. 그는 대부분의 상황을 말없이 넘긴다. 타카시와 같은 주변인들과 그는 인간적인 유대를 형성하기보다는 한 발짝 멀리서 바라보는 식으로 관찰한다.


하지만 그에게 인간으로서의 따듯한 정이 부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온정이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히라야마는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시선의 주체가 되어 일상에서 목격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순간들을 포착하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다. 철없고 바보같은 주변인 타카시의 연애 고민과 친구 데리와의 장난은 모두 그에게 동경의 대상이 될 만큼 따듯한 일상의 파편들이다. 차에서 타인의 행복한 모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 히라야마의 얼굴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이르지 않아도 감정을 무겁게 자극하는 중요한 순간이 된다. 공원에서 타인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 어쩔 줄 몰라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모두의 얼굴이 된다.


히라야마가 이자카야 여주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애정과 동경이 가장 높이 차오를 때, 그에게 조카 니코가 찾아온다. 히라야마는 니코를 반기면서도 어려워하고, 그녀에게 자신의 일상을 경험하게끔 해주면서도 그가 자신의 동생인 어머니에게 돌아가게끔 한다. 결국 히라야마는 니코를 보내면서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을 선택한다. 동생과의 대화에서 히라야마가 타자와 관계 쌓기를 멀리 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암시되고, 히라야마는 아버지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지금처럼 혼자 살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가 동생에게 건네는 포옹은 자신의 삶이 최선을 다해 온정을 붙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히라야마가 여동생과 조카를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다음날, 동료 다카시도 그의 곁을 떠난다. 혼자를 선택한 히라야마는 홀로의 일을 책임지게 된다. 혼자 두 배의 업무를 맡게 된 어려움에 애써 동료에게 붙인 정을 온전히 상실했을 때의 허무함이 덮쳐 히라야마를 괴롭힌다.


그리고 결말부, 마음이 있던 이자카야 여주인이 전남편 토모야마와 재회해 포옹하는 것을 목격한 히라야마는 토모야마와 대화를 나눈다. 그와 여주인 역시 이혼을 통해, 히라야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의 상실을 경험한 인물이다. 토모야마는 암에 걸린 시한부임을 고백하며 전 아내를 만나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히라야마는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싶어하는 토모야마를 자신에 투영하며 그 고통을 이해한다.


곧이어 그들은 그림자는 겹쳐지면 더 어두워지는지에 대한 의문을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하며 그림자 밟기 놀이까지 나아간다. 서로만이 이해해줄 수 있는 그림자를 놀이의 소재로 이용하면서 그들은 애써 그림자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위로한다.


결국 그의 삶에서 간간이 확인되는 결핍은 해소되지 않고 영화는 'Feeling Good'을 들으면서 웃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히라야마의 얼굴에 대한 클로즈업 숏으로 마무리된다. 이 한 숏에서의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얼마나 위대한지는 일단 차치하고, 결국 히라야마는 꾸준히 자신을 찾아오는 일상에서의 결핍과 어려움을 외면하고 완벽한 일상을 지켜낸다. 



결국 영화 초반에서 제시되는 히라야마의 완벽해보이는 듯한 일상은 그가 일상을 완벽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결핍된 채로 놔두는 식으로 부정함으로써 가능했다는 것이 마지막에 드러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의 욕망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완벽한 일상을 지켜내는 것이며, 그 욕망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겠다. 억지로 웃음을 짓기 위해 애써가면서 일그러지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신동엽 시인의 시구를 떠올린다.



담배 연기처럼 - 신동엽 (부분)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멀리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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