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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물을 이해하기까지,

쉰 살의 고백

by 소풍

“우리 딸, 어릴 때 엄마가 많이 혼내서 미안해.” 전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의 무게감에 마음이 아프다. 언제쯤 엄마는 이런 죄책감에서 자유로워지실까.


스물일곱쯤 되었을 때 난 엄마에게 “엄마 왜 그러셨어요? 어린 저를 왜 그렇게 혼내셨어요?”라며 덜 여문 마음에 엄마를 원망했었다. 조용히 듣고 계시던 엄마께서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며 우셨다. 그날 이후에야 난 깨달았다. 엄마는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셨음을.


세월이 흘러 마흔도 훌쩍 넘어 쉰이 된 딸에게 엄마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간혹 하신다. “외할아버지는 전쟁에 참전하시고 서울에서 홀로 지내셨어. 글을 쓰신다고… 외할머니 혼자 육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셨지. 외할머니는 항상 바쁘셨어.” 무심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둘째 이모는 엄해서 막내 이모와 나를 혼내곤 했지. 그럼 들판에 나가 해질녘까지 쑥을 뜯다 오곤 했어.”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어린 엄마는 외로우셨겠구나.’하고. 경제적 책임에 육아까지 책임지셔야 했을 외할머니는 항상 바쁘셨고 어린 엄마를 따뜻하게 보살피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렇게 자란 엄마는 오빠와 나를 낳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셨다. 엄마의 외로우셨을 유년 시절과 고단했을 삶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라는 이름을 부여안고 많은 후회와 눈물을 흘리셨을 세월이 스쳐 가는 듯하다.


이제야 비로소 엄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는 친구 같은 딸이 된 듯하다. “엄마, 엄마 딸이어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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