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은 강요되지 않는다
낮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꿈의 장면이 오래 남았다.
미용실 이용권에 당첨되어,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하고 기분 좋게 돌아오려던 순간... 미용사는 염색이 포함되어 있다며 당연하다는 듯 권했다. 아니, 권했다기보다 거의 요구에 가까웠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염색은 좋아하지 않고,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용사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 지점에서 꿈은 끝났다.
깨어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장면은 요즘 나의 일상과 닮아 있었다.
나는 지금 하리 하루의 집에서 집안 정리와 돌봄을 돕고 있다. 집은 어수선하고, 물건은 제자리를 잃었으며, 분리수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나의 기준으로 보면 고쳐야 할 것, 바꾸면 좋을 것이 너무 많다. 말하고 싶고, 손대고 싶고,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도움일까, 간섭일까?'
꿈속의 미용사는 선의를 말했을지도 모른다. 이용권에 포함된 서비스였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필요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상대가 정해 놓은 '더 나은 모습'이, 나에게는 침범으로 느껴졌다는 점이다.
선은 그렇게 넘게 된다.
상대의 삶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명분으로, 나의 기준을 들이댈 때...
호의라는 이름으로 선택권을 빼앗을 때...
선을 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속도를 늦춰야 한다.
지금 당장 고쳐야 할 문제처럼 보여도, 그것이 정말 나의 몫인지 한 번 더 숨을 고른다. 그리고 질문을 바꾼다. '이게 틀렸다'가 아니라 '이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가'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견디는 일이다.
정리되지 않은 공간, 어수선한 방식, 나와 다른 삶의 리듬 앞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즉시 말과 행동으로 해소하려는 순간... 선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움은 상대의 경계를 존중할 때만 도움으로 남는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다가갈 때.
염색을 거부한 나는, 변화를 거부한 사람이 아니라 나의 선택을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존중받지 못했을 때, 불쾌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은, 아예 등을 돌리고 있겠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삶을 상대의 속도로 살아가게 두는 마음가짐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