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의 막말 그리고 트러블.
현재 난 백수다. 퇴사하기 전에는 나이도 이제 어느 정도 있고 퇴사도 해볼만큼, 정말 남부럽지 않을 만큼 해봤으니 이제 한 곳에 정착해서 열심히 잘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훌륭한 마케터(마케터로 전직했다)가 되어야지!... 까진 아니어도 내 나름대로 있는 열정 없는 욕심 다 끌어모아 일을 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수습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표가 면담을 요청했다. 그동안 회사에서 했던 업무에 대해 정리해오고, 계속 함께 일을 할지 아니면 회사를 떠나 다른 길을 갈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고민해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퇴사에 대한 고민은 늘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왔지만 이번엔 가볍게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정말 내 앞에 공식적으로 선택지가 주어진 것이다. 난 퇴사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억누르며 면담 준비를 해나갔다.
그리고 면담을 하기로 한 날 아침, 대표로부터 카톡이 왔다. "지금 면담 괜찮아요?"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대표에게 받은 카톡이었다.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회의실로 들어가자마자 마케터로서 한 일에 대해 얘기해보라는 말이 날아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내가 하는 얘기들은 번번이 대표의 말에 가로막혔고 난 그 앞에서 죄인이 되어있었다. 대표의 성격을 알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들어갔음에도 무소용이었다. 대표는 업무에 임하는 내 태도부터 시작해서 내 인생에 대해서까지 평가하기 시작했다. "넌 인생에 대해 너무 무책임해.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살 수가 있지?""넌 그렇게 30년을 낭비한 거야""결혼을 하면 뭐가 달라질 것 같니? 그리고 또 태어날 애는 무슨 죄니. 너 같은 부모 만나서. 그건 재앙이야, 재앙"
대표가 말하는 성공한 인생의 실례는 자기 자신이었고, 실패한 인생의 실례는 나였다. 내가 대표 밑에서 일한 건 고작 2개월 반이었다. 1시간 가까이 폭언 아닌 폭언을 들으면서도 바보같이 더 열심히 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얘기했다. 분했지만 대표는 호랑이였고 나는 궁지에 몰린 토끼였다. 그렇게 참고 넘어가려고 했다. 면담이 끝난 후에도 이어진 대표의 막말이 아니었더라면.
그래서 이 얘기를 왜 하느냐. 난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성격이다. 대표와 부딪히는 상황은 나에게 너무나 큰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제일 두드러지게 나타난 건 다름 아닌 피부였다. 그렇다. 피부가 다 뒤집어지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새신부의 피부를 걱정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신부관리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피부가 날이 갈수록 나빠지다니, 대표 스트레스와 피부 트러블이 만나 시너지를 낼 줄이야. 시간이라도 있으면 피부과를 가면 되지만 다니는 피부과는 잠실에 있고 회사는 합정, 즉 평일엔 함께 할 수 없는 사이였다. 이게 바로 직장인의 비애다.
지금도 피부는 나쁘다. 그래도 피부과는 갈 수 있다. 오늘도 피부과를 가서 염증 주사(개 아픔)를 맞고 이름도 어려운 무슨 필링인가를 하고 피지선 파괴술까지 받고 왔는데, 카드값을 보니 대표가 더 원망스럽다. 이제 안 볼 사람이니 잊어버려야지. adió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