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자아에서 걸치는 옷으로 넘어가는 중일까,
지금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이고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애매한 소제목을 작성해 놓고, 실제로 글을 쓰고 수정하고 발행하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소제목을 노려보며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또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미래에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또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럼에도 발행을 누를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이 글은 지금의 스냅샷이라는 판단에서 인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
나와 비슷한 예정일을 앞두고 있는 친구 A의 질문이었다. 통화 너머로 들려온 그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단순한 이유 하나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 A는 초등학생 때 부모님과 미국으로 이민을 왔지만 한국말도 한국 문화도 능숙했다. 흔들리던 대학 시절, 나는 늘 방향이 모호했고, 반대로 A는 하고자 하는 것이 뚜렷했다. 학부 졸업 전 이미 랩실에서 박사 입학을 허가받았고, 27살도 되기 전에 박사 학위를 마쳤다.
대학시절 휴학을 하고 방황하던 나를 서울로 찾아와 “정신 차리고, 학교로 돌아가서 졸업해라(A는 나에게 Get your shit together라고 아주 직접적인 표현을 했다)”라고 말해준 것도 A였다. 우리는 각자의 길에서 사회생활과 박사 생활로 멀어졌다가, 내가 남편과 다시 미국으로 오면서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코로나 이후 A는 첫째 아이를 낳았고, 출산 휴가 직후 팀 전체가 대량 해고되는 상황에서 일을 쉬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좋은 조건의 퇴직금 패키지(Severance)를 받았고, 그녀는 아이를 돌보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올해, 나는 첫 임신을, A는 둘째 임신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하게 되었다. 임신이 처음인 나는 A에게서 많은 걸 배우고 있고, 가끔 몇 시간씩 통화하기도 한다. 그런 대화 중, 출산 휴가 기간에 이직을 시도하려는 내 계획을 들은 A가 조심스레 물었던 것이다.
A는 첫째 육아를 시작하며 새로운 회사를 찾아보았지만, 아직 몇 달 되지 않은 아이를 데이케어에 맡겨야 한다는 죄책감이 너무 컸다고 했다. 둘째에 대한 계획도 서둘러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A는 남편과 상의 끝에 둘째 돌까지는 일을 쉬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와의 통화가 끝나는 그때까지도 나는 끝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며칠이고 같은 질문을 되뇌었다.
왜 나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을까,
'매몰비용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잘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니, 이 일을 가능하다면 계속하고 싶다.'
나의 첫 번째 대답은 어찌 보면 단순한 의지의 표현이다. 대학교 4년, 석사 2년, 박사 1년(1년 만에 때려치우긴 했지만...) 그리고 8년에 가까운 관련 직무 경험.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시간과 공부를 투자한 분야는 이것뿐이다.
이 일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 일을 떼어내면 나를 설명하던 여러 조각이 함께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있다. 지금의 나는 주중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관련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카페에서 관련 수업을 듣는 삶을 살고 있다. 일과 관련된 분야가 내 일상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셈이고, 결국 나에게 이 직업은 나의 자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투자한 나의 시간이 ‘내 자아와 일의 결합’을 강화했던 셈이다.
그래도 박사 과정을 포기한 경험은 일과 나 사이에 거리를 되찾게 해 주었다. 대학원에서는 매일 24시간 연구를 하고 연구만을 생각하는 것이 미덕이라 믿었고 그래서 늘 조급했다. 직장인이 된 지금은 그때와 다르게, 내 시간을 어딘가 조금은 지키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 변화로 “일은 나를 정의하지만, 전부는 아니다”라는 감각을 처음 가져다줬다.
'지금 버는 월급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직업을 유지하고 싶은 이유에는 분명 경제적 측면도 있다.
한국에서 첫 직장을 다닐 때, 팀의 리드가 농담처럼 “대출 껴서 차를 사라. 그래야 퇴사 못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땐 웃어넘겼지만, 지금 돌아보면 일정한 경제적 동기 자체도 나를 안정시켜 주는 장치가 될 수 있음을 느낀다.
결혼 후, 우리는 지금까지 7년 동안 다양한 경제적 형태를 경험했다. 맞벌이 시기, 내가 석사를 하며 남편이 훨씬 큰 벌이를 가져오던 시기, 내가 박사 조교로 외벌이를 하고 남편이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까지.
나는 어느 가족이나 가족 단위의 최선의 경제적인 전략을 선택한다고 믿는다. 때론 맞벌이가, 때론 한 사람이 돌봄을 전담하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을 것이다. 둘 중 하나에게 레이오프의 어려움이 닥칠 수도 있다. 우리 상황도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 그럼 그때 그에 맞게 또 선택하면 된다.
다만 지금은 맞벌이의 형태를 유지하고 싶다. 두 사람의 월급으로 계획을 세우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대비하고, 매달 두 번 들어오는 이 주급(현재 미국에서 우리는 월급이 한 달에 두 번으로 나눠서 통장에 꽂힌다)을 보며 작게나마 목표를 이루는 재미가 있다. 어쩌면 이 짧은 로테이션이 회사 생활 중 찾아오는 현타를 이겨내게 해 주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갈 길이 멀지만, 둘이서 그 과정을 함께하며 차곡차곡 모아가는 이 재미를 즐기고 싶다.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AI관련 일을 하면서도, AI의 발전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복잡하다. 만약 또 한 번의 큰 기술적 전환점이 온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제까지 의미가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직업이 언제까지 유효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직업적 기회가 계속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따라가려고 애쓴다. 하루만 지나도 새로운 툴과 논문(이제 신간 논문을 쫓아서 사는 삶은 포기했다)이 쏟아지고, 테스트하고, 적응해야 한다. 새로운 무언가에 허덕이는 삶은 지친다. 그래서 가끔 남편에게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 두려움조차 지금의 나를 계속 일하게 하는 힘이 된다.
이 끝이 나의 번아웃이든, 직업의 변화든, 그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이 일을 이어가고 싶다.
물론 일을 이어가고 싶지만, 끊임없이 번아웃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나와 결혼한 덕분에(?) 평생 생각해보지 못한 해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더 나아가 일과 야근에 치여 살아가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 경제적인 측면으로만 현재의 직업을 바라본다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할 것 같긴 하다. 예전에는 일이라는 옷이 나를 입고 있었다. 자아실현이든 생계유지든, 일은 나의 정체성을 꽉 붙잡아 두었다.
위에 나열한 이유들로 일을 계속하고 싶지만, 임신 과정을 통해 점점 일과 분리되는 나의 자아를 재정비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부모가 되는 과정을 겪으며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부모가 되는 과정은 일과 나의 정체성의 결합을 느슨하게 만들어, 나에게 ‘이 일이 갈아입어도 되는 옷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했다.
인생에서 가장 비싼 옷만 계속 입을 수는 없고, 때로는 가볍고 편한 옷이 더 적절한 날도 있을 수 있고, 어쩌면 그것이 나에게 더 맞는 옷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면,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지금의 직업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 일이 ‘삶 전체’를 대신할 만큼 절대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꾸려 나가는가’이지, 어떤 직업을 붙잡고 있는가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어려움이 많은 세상에 지금 고민하는 것이 나의 직장/직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당장 오늘 일을 좀 못해서 잘릴 수는 있지만, 내일의 해는 또 뜰 테니.
물론 나는 여전히 애매한 중간 어딘가에 서 있는 것 같다.
일을 계속하고 싶은 이유는 단순한 열정도 아니고, 완벽한 확신도 아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쌓아온 시간, 경제적 안정, 변화에 대한 불안, 그리고 무엇보다 다가오는 새로운 삶의 형태
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일을 계속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과 혼합된 정체성에서 선택이 가능한 갈아입을 수 있는 옷으로 점점 전환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허덕이면서 쫓아가야만 하는 직업에서 조금 더 자아와 거리가 느슨한 직업(그런 직업을 찾을 수 있다면)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 인가이다. 그렇게 일이 나를 입는 관점에서, 내가 일을 입는 관점으로 이동하고 싶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나와 일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도 좋겠지만, 이 거리감을 배워가는 과정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급해한다고 지름길이 열리는 것도 아닐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