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스러웠던 용기, 한국인이라는 자부심
학교 수업시간과 도서관의 일을 통해 만난 친구들에게 나는 한국 역사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 한국말로는 술술 이야기할 수 있는 한국 역사를 막상 영어로 설명하려니, 그 당시 어휘력도 부족하고 참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일본인 유학생 친구들에게는 위안부에 관한 역사도 종종 나누었다. 평생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라며 동그랗게 눈을 뜨고 놀라는 일본인 친구들을 보면서, 일본에서는 정말 그런 역사를 온전히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혼자 많이 안타까워했다.
세계지리학 수업 시간
대학교의 교양과목으로 세계지리학 수업을 들을 때였다. 세계지역의 주요 지명 및 분쟁등을 테스트하는 시험이 어느 주말을 지난 후 월요일 치러질 것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쓰는 자료들에 ‘동해’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 ‘일본해‘라고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주말 동안, 나는 독도가 왜 한국의 영토인지부터 동해라는 지명에 대한 자료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교수님에게 일본해가 왜 동해라고 불러져야 하는지 알려드리고 싶어서였다. 사실 자료를 준비하면서여러모로 부족한 유학생이 교수님에게 반박자료를 가져가면 훗날 이 수업의 내 성적은 바닥을 찍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는 마음도 올라왔다.
하지만 독도가 한국땅이고 동해가 올바른 이름인 것을 꼭 알려드려야 두고두고 내 마음이 편할 듯했다. 독도에 관한 40여 장의 자료를 프린트해서 가져갔던 것 같다. 짧은 시험이 치러지기 전, 교수님에게 면담을 부탁하고, 부족하지만 조곤조곤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참 놀랍게도 교수님은 나의 의견을 기쁘게 받아주셨다. 이렇게 논쟁이 남아있는 지명이라면 모두가 알아야 한다며 자료를 준비해 주어 고맙다고 하셨다. 그리고 시험을 치르기 전Sea of Japan은 East Sea로 함께 표기해야 맞는 것으로 인정해 주겠다고 학생들에게 공표하셨다. 어느 유학생의 의견도 교수님에게 흔쾌히 받아들여진 그 경험이 나에게는 American Dream을 더 꿈꾸게 하였다.
정치학 수업 시간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기본정치학 수업에서는, 매번 학생들이 돌아가며 중요한 신문 기사를 하나씩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당시 기본정치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나의 눈에는 유난히 백인들만 예뻐하는 백인우월주의로 보였다. 비록 내가 특별히 피해를 받은 것은 없었지만 그러한 교수님의 태도에 나는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마침 그때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님이 선출되신 기사를 신문으로 접했고, 나는 그것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20여 년 전 그때만 해도, 내가 Korean이라고 하면 미국인들은 늘 나에게 North Korea에서 왔냐고 되물어왔다. 그래서 나는 발표시간에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었다.
신문기사의 요약정리 후, 나는 나를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며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실 반기문 UN 전 총장님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6.25 전쟁 후 분단국가가 된 것이 속상하고 북한이 세계평화를 위협할 때마다 늘 안타깝지만, 대한민국은 반기문 총장님과 같은 훌륭한 인재도 배출하는 국가임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내가 발표를 마치자마자, 교수님은 갑자기 재킷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셨다. 자신이 들고 있는 핸드폰은 삼성이라는 기업에서 만들고 그 기술이 훌륭하다며, 조금은 생뚱맞다 싶은 삼성의 칭찬을 시작으로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이어가셨다. 늘 차갑게만 보였던 교수님의 그 발언이 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피부적으로 느끼기엔 2017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그 시작이었던 듯하다. 현재 K-Pop, K-Beauty, K-Food 등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26년 K‑Pop Demon Hunters (케대헌)과 K-Dramas 덕분에 한국을 모르는 미국인이 없다. 하지만 처음 유학을 시작했던 20년 전만 해도 내가 피부적으로 느낀 대한민국에 대한 인지도는 지금과 사뭇 달랐다. 비록 South Korea와 North Korea도 헷갈려했던 그 당시 미국의 분위기였지만, 여전히 자랑스러운 한국의 기업 Samsung은 그때에도 나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더 일찍 이민을 오신 분들은 그 변화를 더 크게 느끼시겠지만, 요즘과 같이 한국문화에 열광하는 미국에서 한인으로 살면서, 나 스스로는 대한민국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더욱 자랑스럽다. 그리고 종종, 20년 전 수업시간에서 한국을 알리고 싶어 했던 나의 모습이 쑥스러운 마음과 함께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