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시절을 지나, 스무살이 되었을때
유년기 시절의 추억
아주 어릴 적 꼬마 시절, 책 전집이 담긴 박스들이 우리 집에 배달되던 순간들이 여전히 기억난다. 햇수로 따져보면 벌써 30년도 더 지난 오래전 기억이지만, 새 책을 맞이하며 설레었던 마음, 그리고 부모님께 감사했던 마음이 생생히 남아있다. 평범한 우리 집이었지만 책만큼은 풍성하게 허락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책을 장난감 삼아 재미나게 놀 수 있었다. 과학 만화책, 세계 동화책, 한국 고전 동화, 위인전기집, 역사 만화책 등 - 새로운 책이 우리 집에 도착할 때마다 나는 어린아이였는데도 그냥 기분이 좋았다. 책을 좋아하시는 아빠 덕분에, 유년기 때부터 나는 아빠와 서점 데이트도 많이 했었던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길거리에서 사든 하얗고 따끈한 떡꼬치를 입으로 호호 불면서, 아빠 손을 잡고 당시 부산의 큰 서점 영광도서를 향했던 나의 어린이 시절이 아득하게 그리워진다.
한국위인전기 30권, 세계위인전기 30권 이렇게 60권 전집을 열심히 읽었던 때가 8살쯤이었던 듯하다. 나폴레옹부터 퀴리부인까지, 다양한 나라와 분야를 배울 수 있었음에 세계 위인전기를 읽으며 나의 호기심은 한 층 더 커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한국 위인전기를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 1학년이니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위인전기 한 권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한편 30권의 한국 위인 전집을 다 읽었을 때 느낀 것은, 수많은 영웅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목숨을 바쳐 지켜낸 우리나라가 6.25 전쟁으로 분단국가가 된 것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는 마음이었다. 만약 내가 어른이 된 후 작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이 온전하게 한반도를 모두 회복하는데 이바지하고 싶다는 그런 막연한 꿈을 꾸었다.
10대가 되었고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맞이했을 때, 나는 부모님의 권유로 로스앤젤레스(LA) 근처에 계신 이모와 외삼촌을 만나러 미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나게 되었는데, 배낭을 메고 목적지를 향해 가던 시간이 두렵기보다는 설렘으로 가득 찼었다. 미국에서 허락된 한 달의 시간 동안, 나는 새로운 세계를 접한 후 많은 충격에 빠졌다. 특히 어린 나이였음에도, 미국의 교육시스템은 나에게 많은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모가 견학삼아 데려가 주신 미국의 초등학교에서는 마침 과학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교실 한가운데 모여서, 뱀이 입을 쩍 벌리고 생쥐를 잡아먹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한 달의 여정동안 나는 이모와 미국 서부 지역을 여행하며 미국 대학교들 몇몇 곳도 견학할 수 있었다. UC Berkeley와 Stanford University를 방문했을 때, 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책에 푹 빠져있거나 잔디밭에 앉아 토론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무척 부러워했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하기는 했었지만, 한 달의 미국 여행 후 나는 영어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학업에 스트레스를 주시지 않고 사교육을 고집 않는 부모님이셨기에 나는 자율적으로 공부를 하며 10대를 보내었다. 팝송을 들으면서 청소년을 위한 영자신문을 구독하고, 영자신문 동아리에 들어가서 참 말도 되지 않는 부족한 글을 많이 썼다. 공부를 하다가 지겨워지면 책을 읽었고, 일기인지 시인지 모를 글도 썼다. 유학생이 된 후 책을 많이 읽지 못한 스스로가 늘 많이 부끄럽지만, 돌아보니 10대의 나는 글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였음을 깨닫게 된다.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스무 살 봄 나는 미국에 유학을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모와 외삼촌이 계시는 미국 서부에서 나는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영어를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했었어도, 그때의 나는 미국의 대학생활이 수월할리 없는 한국인 토박이였다. 나는 나의 학업에 욕심 많고 누구보다 성실하려 했지만, 회화부터 듣기, 쓰기까지, 학업을 이어가기엔 그저 영어 꼬맹이였다. 하지만 '배우는 학생이 부족한 것이 당연하지'라는 생각으로 얼굴에는 미소를 띠우며 이 악물고 버티는 시간들이었다. (외국어는 철면피가 될수록 더 빨리 실력이 느는 법이라 믿었고,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이민법에 의거해 미국 유학생은 학생신분으로서 일을 할 수 없는데, 학교 내 캠퍼스에서는 합법적으로 일이 가능하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일이 하고 싶었던 나는 캠퍼스 내에서 내가 해낼 수 있는 역할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혹 새로운 직원을 찾지는 않을까, 학교 내 도서관에서 part-time 일자리를 신청해 보았다. 어설픈 인터뷰였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운이 좋게도 나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시간이 아닐 때는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무조건 신청했다. 일터가 도서관이기에 일하면서 틈틈이 공부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장소였다. 캠퍼스에서의 일 스케줄은, 같이 놀자며 연락이 오는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는 좋은 변명도 되어주었다. 낯설기만 한 미국에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하나 더 늘어났음에, 나는 그것만으로도 많은 용기를 얻었던 스무 살이었다.
업무에 쫓긴 연말을 지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인지, 다듬고 다듬으며 조심스럽게 글을 이어가 봅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과 기쁨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감사한 작가님과 독자님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