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소녀의 엄마로서..
올해 한국 나이 중 1인 둘째는 운동 소녀이다.
만 서너 살 때부터 공을 사달라고 졸랐고, 그 공을 들고 다니며 튀기기를 좋아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에너자이저였고, 잠자리에서도 잠이 들 때까지 입이라도 놀리다가 전원이 끊긴 듯 갑자기 잠드는 아이였다.
유치원 시절, 튼실한 허벅지로 달리기는 늘 일등이었고 중국에서 한 학기 다닌 초등 1학년때는 같은 학교 중고등 오빠들과 축구를 하려고 밥을 빨리 먹어치우곤 했다.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영어가 서툴러 쉬는 시간마다 남자아이들과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덕분에 남자아이들에게 인기 최고의 여학생으로 뽑히기도 했었다.
미국에서 그리 열망하던 축구팀을 처음 시작하던 전 날 밤, 설레어서 잠도 못 자던 아이를 기억한다.
미국과 캐나다는 쉬는 시간마다 모든 아이들이 -특별히 아픈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운동장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각 담임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서너 분의 돌봄 자원봉사자들이 늘 아이들을 지켜보았고, 학생주임선생님 같으신 분들이 구석구석 돌아다니신다.
아이들은 그런 꼼꼼한 보살핌 아래에 (그래도 물론 사각지대는 있다) 자유롭게 운동, 놀이, 게임 등을 하곤 했다. 운동이 격해지거나 다툼이 생기면 바로 제지가 들어갔고, 다친 아이가 생기면 당분간 그 운동은 금지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둘째가 4학년 때, 아이들의 쉬는 시간을 유심히 보시던 학생주임선생님으로부터 메일이 왔었다.
Grace가 축구를 매우 잘하니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축구클럽을 소개해 주겠다고.
2군 선수들과 프로 감독들이 무료로 코칭을 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거기서 잘하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며 특별히 알려주셨더랬다.
덕분에 둘째는 원래 다니던 축구 교실 외에 학교에서 소개해 주신 클럽을 추가해서 다니며 미국에 있던 기간, 원 없이 축구를 했었다.
하노이에서 Sub-teaching을 맡고 있는 미국계 국제 학교에서도 바깥공기의 질이 아주 나쁘지 않은 이상, 쉬는 시간은 예외 없이 모두 밖에 나가고 각자 자유롭게 활동들을 하게 시킨다.
축구를 하는 아이들은 물론, 모래 놀이를 하는 아이들, 정글짐에서 혹은 미끄럼틀에서 노는 아이들, 그냥 뛰어다니며 Tag 놀이를 하는 아이들, 앉은뱅이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들,, 등 각자 원하는 대로 논다.
최근에 접한 한국발 기사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금지한다는, 나로서는 상당히 놀라울 수밖에 없는 기사였다.
부모님들이 올리는 찬성과 반대의 여러 영상들도 보게 되었다.
한국 학교와 한국의 실정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게 금지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이 되긴 하지만, 어쩌면 아이들의 발달단계가 무시된 무서운 결정이 아닐까 라는 우려가 생긴다.
1학년과 6학년의 신체 발달과 능력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고려하여도, 아이들의 운동을 금지하는 것이 아닌, 큰 아이들에게 어린 동생들의 보호와 배려를 가르치며 운동을 할 수 있게 교육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둘째 아이가 공을 들고 다닐 때에, 걸어 다니며 튀기지 않기, 차도 쪽으로 가까이 가지 않기, 사람 많은 곳에서 그 공이 너의 손을 떠나는 순간 너는 공을 빼앗길 것이다라고 매번 교육을 시켰다.
실제로 둘째는 만 서너 살, 그 어린 나이에 공을 여러 번 뺏기기도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배려하고 통제하는 아이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운동에는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미국에서 쉬는 시간에 미식축구를 하다가 다른 아이의 발차기에 머리를 다쳐 뇌진탕이 온 적도 있었으니.
이 일로 한 동안 학교의 미식축구가 금지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은 더 많이 위험한 곳이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그 위험한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갈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캐나다에서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젊은 엄마들이 육아 상담을 해올 때가 있었다.
나는 늘 무조건 두 가지를 강조한다.
어릴 때일수록 악기와 운동, 될 수 있다면 두 가지 다, 아니면 둘 중 하나라도 무조건 가르쳐라.
이것저것이 아닌, 아이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이나 악기를 통해 아이가 노력하고 버텨서 마침내 해내는 습관을 길러주라고.
특별히 악기는 오케스트라를, 피아노를 하는 아이라면 반주를, 운동은 단체 운동을 시켜서 양보와 협동심, 개인의 성취감을 뛰어넘는 팀의 성취감을 꼭 느끼게 해 주라고.
나는 큰 아이는 바이올린을 통해, 둘째는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힘을 길러왔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미국에서 차 트렁크에 축구공과 간이 골대를 늘 갖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꽂아놓고 슈팅 연습을 했다. (늘 가까운 공원을 찾아 사람이 제일 없는 곳에서)
집에서는 혼자 영상을 찾아보며 축구 기술을 익히곤 했는데, 한번 시작하면 두세 시간을 쉬지 않고 집중해서 마침내 그 기술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집중력은 이 요란했던 아이를 매사에 집중하며 열심을 다하는 아이로 만들어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면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생각해 본다.
내가 한국에서의 학부모였다면, 나는 뚝심있게 나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축구에 열심이던 둘째는 현재 한 국제학교의 7학년으로, 지난 학기 중등 농구 경기에 최다 득점 선수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