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경단녀

잠시, 현재 진행형 #1

by 은마마

숙제를 하던 큰 아이가 거실로 나오더니 묻는다.


"엄마, 베이비붐이 언제였어?"

"음.. 아마 세계적으로는 2차 대전 후 20-30년 정도일걸. 왜?"


세계사 수업에서 전후 베이비붐과 여성 노동력의 증가에 대해 배운다며

출산과 육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자들에게 많이 불공평한 조건인 것 같다며 투덜댄다.

역사와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큰 아이.

그래서 사회(Humanity) 과목과 선생님이 제일 좋다고 한다.


숙제를 하다 보니 점점 열불이 올라오더란다.

같은 교육을 받고, 어쩌면 더 능력이 출중한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경단녀가 되어 경력을 이어가지 못하거나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고군분투하는 현실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하노이에서 새롭게 인연을 맺게 된 한 지인이 떠올랐다.


둘째 아이의 같은 반 학부형이기도 했던 그 지인은, 만날 때마다 참 감각이 돋보이는 사람이라 느껴졌다.

50대 초반의 나이로, 화려하거나 튀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항상 깔끔하고 세련되었으며 소품과 액세서리 등도 과하지 않으며 감각적이고 적당히 돋보였다.

함께 시내 나들이를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이러한 안목은 소품과 장식품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시는 모습을 통해 조용히 드러나 보였다.


이후 함께 하게 된 식사 자리에서 나는 그동안 느꼈던 그분의 심미안에 대해 언급하며 소소하게 칭찬을 꺼내 놓았다.


"언니는 안목이 진짜 좋으신 거 같아요. 평소 차림새나 소지품 같은 거 보면서도 그런 생각했는데, 물건 고르시는 안목도 되게 탁월하신 거 같더라고요."


"그래?"

나의 말을 듣자마자 대답하며 반응하던 그분의 반짝이던 눈빛.


"나 사실,, 가방 디자이너였어.."


"아... 어쩐지! 남다르시다 했어요!"


"해외 출장도 많이 다녔는데, 우리 00 낳고 남편이 주재원 발령 나서 해외 나오게 되면서 퇴직한 거야."


한 동안 나의 기억에 깊게 남아있던 대답과 눈빛이었더랬다.

그리고, 딸아이와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분의 이 눈빛과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분에 대해 얘기해 주며 나는 덧붙였다.


"그렇게 누군가가 밖에서 조직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아갈 때,

혹은 아이들이 학업과 학교 생활, 다른 활동들에 전념할 때,

반드시 집을 지키고 가꾸고 관리하는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가 뒷받침이 되어야 해."


"그 숭고한 일을 내가 하기로 결정 한 사람도 있고, 가족 중 누군가에게 부탁하게 된 경우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를 고용해서 맡기게 되는 경우도 있고, 각각 다양하지만 결론은 반드시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지."


"가정을 꾸리고 부모가 된다는 일은, 그럼에도 그렇게 삶을 뒤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엄마가 아는 그분은 그 멋진 디자이너의 삶을 뒤로하고 늦게 얻은 외아들을 너무 멋지게 열심히 키우고 계시더라."


전업 주부로서, 또한 일하는 엄마로서 나는, 전업 주부와 일하는 엄마들 모두를 존경한다.


나는 운이 매우 좋았다.

전공과 본업이던 음악으로 둘째가 두 돌이 되던 달, 지휘자와 피아노 선생님으로 일을 다시 시작했고

감사하게도 타고난 언어 감각으로 미국에서의 공부, 캐나다에서의 일이 연결되어 하노이에서도 영어와 음악을 가르치는 강사로, 국제 학교 파트타임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겪게 되는 남편과의 갈등의 중심에는 여전히 육아와 살림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갈등은 어쩌면 아직 해소되지 않은 나의 내면의 불평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2년 터울이 채 되지 않는 딸아이 둘을 중국에서 낳고 혼자 키우던 외롭던 시간 동안, 일과 자신의 취미활동에 열과 성을 다했던 젊은 시절의 남편에 대한 불만.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고,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지나온 모든 시간과 오늘을 충분히 행복해하며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여자들에게 불공평한 컨디션이라는 큰 아이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리고 큰 아이가 여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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