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롤모델
몹시 바쁜 한 주였다.
preschool담임과 5학년 EAL전담, 3학년 담임까지 4일 동안 매일 출근을 했다.
이틀째 만났던 5학년 담임 선생님,
6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백발의 백인 여선생님이셨는데, 깡마른 체격에 굉장히 깐깐해 보이는 첫인상이었다.
하루 종일 이 선생님의 5학년 영어 수업을 서포트하고 1:1 EAL수업이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첫 Reading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 나는 오늘 여기 돈을 받고 배우러 온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힘이 있었고, 표정은 엄하지만 따뜻했으며, 제스처는 절제되어 있지만 정확했다.
한 명 한 명 살피셨지만 농담을 던지지는 않으셨고, 매사에 진중하신 모습이었다.
5학년, 키와 덩치들이 나보다도 큰 20명의 아이들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집중시키며 이끌어 나가시는 모습에서 진정한 전문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수업 역시 눈을 뗄 수 없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Reading은 아이들이 약 20분 동안 강의를 듣고 약 30분 동안 각자 자신의 책을 읽은 후 내용을 구조화시키는 수업이었는데, 숨소리 정도만 나는 교실에서 질문을 위해 조용히 손을 드는 것 외에는 다들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50분의 리딩 수업 후, 잠시의 쉬는 시간도 없이 바로 Writing 수업으로 넘어갔다.
역시 20분 정도의 강의 후, 30분 정도의 쓰기 시간이라 아이들의 집중이 떨어질 만도 한데, 전혀 흐트러짐 없는 교실을 보면서 마음속 깊이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교실을 운영하시고 통제하고 계셨다.
이 사춘기의 문턱에 있는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이 느껴졌다.
선생님의 강의도 정말 탁월했다.
알아듣기 쉬웠지만 내용은 깊이가 있었고, 설명은 자세했지만 명확했다.
이 교실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학생들의 작문 최종 점검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손을 들면 가서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나에게 주시는 지시사항도 굉장히 명확하고 깔끔했지만 사려 깊으셨다.
일개 대체교사를 대하시는 존중과 배려에서 이 분의 인격을 느낄 수 있었고, 주시는 지시사항의 내용에서도, 일면식도 없는 나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선생님과 꼬박 하루를 함께 보내면서 같은 수업을 두 번 진행하고 나서, 나는 이 선생님을 티칭과 학급 운영에 대한 최고의 롤모델로 삼겠노라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배움을 얻는다.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처럼 뛰어난 전문가를 통해 일에 대한 배움을 얻기도 하고, 마음 깊이 존경하는 분들을 통해 삶의 지혜와 인격의 배움을 얻기도 한다.
어떤 때는 나의 실수, 상대방의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기도 하고, 학생들이나 나의 아이들을 통해서도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분야에서 롤모델로 삼아야겠노라 마음먹었던 대상을 흔히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노이의 탑티어 미국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완벽한 배움터에서 배우면서 일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 생각했는데, 이 완벽한 배움터에서 완벽한 롤모델을 만나게 된 것이다.
또 언제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눈을 불을 켜고 배웠다.
그리고 이틀 후, 교장선생님의 긴급 요청으로 원래 예정되어있던 EAL수업 대신 3학년 담임 자리를 맡게 되었다.
눈에 불을 켜고 배웠던 모든 것들을 실습에 바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것이다.
행운의 행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