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re happy

So am I

by 은마마

아침 일과를 끝내 놓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인스타 디엠이 울렸다.

(아이들은 카톡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거야 정말...)


"Chemistry A+!!!!"


학교에 있는 큰아이였다.


"Great job!"

"That's you!"


"ikk"

"hehe"


큰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서 기뻤던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C보다는 B가 좋고, B보다는 A가 좋은 건 당연한 이치이지만 단지 그 문제만이 아니었다.


하노이 7개월째,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학교에서의 적응을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던 큰아이는 올여름 학사 연도가 끝나면 학교를 그만둘 수 있게 해 주겠냐는 요구와 자퇴 후 본인만의 플랜 B를 세우겠노라 했었다.


남편과 나는, 너의 플랜 B의 내용을 들어보고 고려해 보겠노라 대답을 해 놓은 상태이다.

(허락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고려", "consider"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큰아이의 학교 적응이 힘든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캐나다의 친구들과 학교 생활에의 그리움.

이 부분은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부분이기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다독여주는 방법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학업 스트레스.

캐나다 중학교와 IB학교인 영국계 국제학교의 커리큘럼 차이, 거기에서 느끼는 혼란,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과학 과목의 어려움, 그리고 경쟁 없이 슬슬 공부해도 늘 최상위권이었던 캐나다에 비해 경쟁이 치열한 학교 분위기와 한국 친구들과의 소통의 피곤함 등이었다.


언어의 스트레스도 있었다.

미국 원어민 영어를 구사하는 아이가 왔다고 첫날부터 주목을 받던 큰아이는 자신의 빠른 현지 영어를 알아듣는 친구들이 없다 보니 점점 영어로 말하는 빈도를 줄여가기 시작했고 한국 친구들과의 교제를 위해 한국어 사용 빈도를 늘려가면서 표현의 한계와 피곤을 느껴갔다.

(대신에 한국어 능력과 발음은 빛의 속도로 좋아졌다.)


영국계 학교이다 보니, 같은 학년의 외국인 친구들이나 선생님들도 영국, 호주, 뉴질랜드 출신들이 많았고 그런 부분이 큰아이에게는 이질감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학교는 다녀야 하는데 공부도 쉽지 않고, 마음 터놓고 대화할 친구도 없고, 자유롭게 영어로 소통할 사람도 없던 큰아이는, 점점 마음의 문을 더욱 닫아갔던 것이다.


그럼에도 공부에 욕심이 없지 않던 터라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했으나, 과학 과목에서 지난 1학기 최종 성적으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알파벳을 받게 된 충격까지 더해졌었다.


둘째 아이가 활기차게 학교 생활을 하며 전 과목에서 뛰어난 성적과 성과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이미 키도 언니를 넘어섰다), 더욱 스스로 비교를 느끼며 힘들어하지 않았나.. 엄마로서 조심스레 짚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고민을 하며 아이와도 대화를 계속 이어나갔다.


지난주부터 7과목의 시험이 연속으로 있다며 일찌감치 공부 계획을 세워서 나름의 공부를 해 나가던 아이는, 주말에 목이 붓고 열이 나는 감기로 인해 며칠을 앓아누웠더랬다.

(아빠가 운영하는 영어학원을 주 2회 다니는 것 외에 다른 과목의 사교육은 하지 않고 있다.)

학교도 하루 결석하고 3일 정도를 누워서 앓았기에 시험 준비는 못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스스로 기쁜 소식을 전해 온 것이다.


딸아이와 디엠을 주고받은 후, 방에 있던 남편에게도 이 소식을 알려주었다.


"애가 A+를 받은 게 좋다기보다, 이런 작은 성취를 통해 학교 생활의 재미를 찾게 되는 게 더 좋아.

학교 생활에서 한두 개씩 성공을 맛보면 자신감도 회복하고 재미도 찾겠지."


아이의 플랜 B를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않고, 일단은 학기가 끝나면 들어보고 상의해 보겠노라 한 건, 그 고민의 시간을 통해 아이 스스로도 자신의 미래를 심각하게 계획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였고, 나도 아이를 위해 더욱 기도 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키운다고 했던 나의 아이들,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었던 적이 없었기에, 아이와 약속한 기간 동안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 할 시간을, 나에게도 아이를 위해 기도 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런 아이를 말릴 수 없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엄마 아빠를 통해 배운 삶의 모습이 이것이 아니겠는가.

편히 사는 법을 택하지 않고, 여러 나라에서, 여러 방법으로 살아보며, 늘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사는 삶의 모습. 우리 부부가 이런 삶의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줬으니, 이것에 대한 책임도 져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적응은 힘들었지만 학교에서 버텨나가며 이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약속한 시간이 3개월 남짓 남았다.

그 3개월 동안 아이의 생각이 바뀔지, 어떤 계획을 우리에게 펼쳐 놓을지, 우리가 받아들이고 지지해 줄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부딪힐 문제들을 깨닫고도 그 길을 가려고 할지, 아직은 모르지만 계속해서 이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다.


힘들어했던 과학 과목에서 A+를 받고 아기처럼 신나서 엄마에게 디엠을 날린 아이에게 진심을 다해 나도 답을 날려준다.


"Enjoy your own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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