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의 반복 연습

50번 만에 되는 경험

by 은마마

아이들의 학교는 교복을 입는다.

영국에 있는 본교의 교복 그대로 입는 터라 매일 아침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넥타이를 매야 한다.

고무 밴드가 달려있는 장착형 넥타이가 아닌, 남성들이 매는 길고 얇은 바로 그 넥타이에 규격에 맞는 검은 구두를 신어야 하고 봄, 가을에는 재킷도 입어야 한다.


교복을 구입하고 이틀 후에 등교를 시작했던 아이들.

둘째는 집에 오자마자 유튜브에서 넥타이 매는 법을 검색하더니 열심히 연습하기 시작했다.

될 때까지 수십 번을 연습하더니 결국 스스로 매고 첫 등교를 했다.


큰아이는 몇 달 동안 동생에게, 아빠에게 부탁을 하더니 언제까지 부탁을 할 거냐는 나의 잔소리에 비로소 연습을 시작했다.

몇 번을 연습해도 계속 뒷부분이 길게 나오자 짜증에 짜증을 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연습을 계속하는데 왜 안되냐면서 징징대기 시작했다.


"다섯 번 해서 안되면 여섯 번 하면 되고, 열 번 해서 안되면 스무 번 하면 되지."


내 말에 입이 댓 발이 나오면서 계속 연습하더니 결국 알맞은 비율을 만들어냈고, 한마디 덧붙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세탁기 돌릴 때 절대 풀지 말아 줘!"




백 번만 해 봐, 되나 안 되나.


피아노를 가르치던 학생들과 악기 연습을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대학 시절 담당 교수님께서 레슨 시간에 하시던 말씀이기도 했다.


소프라노는 음정을 계단처럼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스케일 테크닉을 필수로 갖춰야 한다.

여간 어려운 테크닉이 아닌데, 특히 이 스케일 레슨을 받을 때면 교수님께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부분 백 번 연습 해와. 그래도 안되면 내가 니 제자 할게."


경험 상, 백 번을 작정하고 부분 연습을 시작하면 십중 팔구는 50번도 안되어서 성공을 했고 많이 어려운 부분은 7-80번 만에 성공하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때까지 전공으로 했던 피아노도 다를 바 없었다.

어려운 부분은 그 부분만 따로 반복 연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고, 그 과정이 없이는 곡을 완성해 낼 수 없었다.

기술이라는 영역은, 반복에 반복이 쌓인 시간의 결과물로 능숙함이라는 이름이 주어지는 것인가 보다.


코로나 이후, 반복 연습을 극도로 싫어하는 학생들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초등 1, 2학년의 어린아이들 같은 경우는 구슬려가며 연습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3학년만 넘어가도 고집이 생겨서 하기 싫어했다.


"다 아는데 왜 또 연습해야 해요?"


서너 번의 반복 연습도 싫어하는 친구들에게 종종 듣던 항의였다.


아는 것과 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결과이다.

꼭 뭐든지 잘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기술을 습득함에 있어서는 아는 것 이상을 뛰어넘어 반복 연습을 통해 능숙해지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단 공부나 예체능만일까.

관계의 기술, 만남의 기술, 대화의 기술, 배려의 기술, 가르침의 기술, 배움의 기술, 그리고 삶의 기술까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능숙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백 번 이상의 반복 연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의 아주 작은 조각인 넥타이를 매는 일도 반복 연습이 필요하듯이.



큰아이가 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면 종종 같은 잔소리를 하곤 한다.


"그 부분만 백 번 해봐."


매번 듣는 둥 마는 둥 반응도 없던 아이가 어느 날 연습 도중에 바이올린을 들고 와서 말했다.


"엄마 말 듣고 이 부분 백번 시작했는데 한 오십 번 만에 이렇게 되더라."

하며 연습 한 부분을 들려준다.


둘째는 워낙 시키지 않아도 반복에 반복을 더하는 아이이다.

운동은 말할 것도 없고, 레슨을 받는 클라리넷과 취미로 집에서 뚱땅거리는 기타까지, 수십 번 수백 번을 반복하는 아이.

캐나다에서 연주회를 앞두면, 연주회 당일 아침까지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는 아이였다.

둘째는 공부도 그렇게 한다.

반복에 반복, 되감기에 또 되감기.

시험이 있는 날에는 스쿨버스에서 읽고 또 읽고 외우고 또 외운다.


이곳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같은 잔소리를 늘 한다.

한 번 읽어서 이해가 안 가면 두 번 읽으라고.

두 번 읽어서 안 되면 세 번, 네 번 읽으라고.

단어도 한 번 외워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반복하라고.


잔소리를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도, 그대로 따르는 것도 학생들의 몫이다.

그러나 모두 갖고 태어난 능력치가 다르고 이해력이 다르고 암기력이 다르지만, 반복 훈련이야말로 노력을 통해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공평한 것이 아니겠는가.


캐나다에서부터 온라인으로 피아노 레슨을 해 온 5학년 여자 친구가 있다.

State Music Festival 콩쿠르를 준비하며 백 번을 반복해서 연습하라 하면 그대로 연습해 오는 친구이다.

그 뚝심의 결과로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피아노 3개의 전 부분에서 1등을 거머쥐고 장학금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하노이 청소년 음악회를 앞두고 있는 나의 딸들에게 나는 오늘도 같은 잔소리를 한다.


"자, 그 부분 지금부터 백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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