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킥 영어

늦깎이 유학생의 영어란..

by 은마마

2020년 3월,

중국에서 11년을 살던 나는 나이 만 40세에 6세, 8세 두 딸들과 미국 시애틀로 유학길에 올랐다.

말이 유학이었지... 다른 흑심(?)을 품고, 남편의 야심 찬 후원으로 출발했으나..

할 수 없이 공부를 하게 된 약 3년의 고난의 행군, 그 시작이었다.


그중 가장 큰 고난은

코로나 팬데믹도, 남편 없는 독박육아도, 이역만리타국의 외로움도, 늘 모자란 잠도 돈도 아닌, 단연코 영어, 영어, 영어였다.


코로나 시절이라 온라인 수업으로 컬리지 어학코스 2 쿼터를 마치고 본과로 올라갔다. (코로나를 등에 업고 힘들게 미국까지 갔는데 아이들도 나도 거의 1년 동안 온라인 수업을 들었어야만 했다.)

20여 년 전 한국에서 대학생 시절, 졸업 후 유학을 꿈꾸며 당시 제일 유명했던 종로의 YBM, 파고다 어학원에서 회화코스도 들었고 졸업 후에는 대학원 준비로 토플 상위권 점수도 받았던 터라 미국 컬리지에서도 나름 어학코스 장학생(?)으로 선발돼서 본과 첫 학기 컬리지 영어는 한 단계 건너뛰고 장학금까지 챙겨 월반을 했다.

그러나.. 본과의 영어는 차원이 달랐고 귀머거리와 벙어리 2년 반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학코스의 선생님들의 영어는.. 정말 친절하고 친절하고 또 친절한 영어였다.

내가 선택한 전공은 Music & Sound Certificate 코스로, 사운드 디자인과 프로듀싱 공부였다.

한국으로 치면 실용음악 작곡&음향 공부 같은, 2년 수강 후 수료증을 받고 1년 OPT를 받아 인턴십으로 취업이 가능한 코스였다.

한국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피아노, 음악 선생님으로 20년을 살아왔던 터라 수업 자체는 어려운 것이 없었으나.. 늘 영어에 발목이 잡히는 현실이었다.


본과 수업은 필수 과목 외에 선택 과목들이 있었는데, 필수와 선택을 합쳐도 유학생은 나 하나, 그것도 대부분의 학생들보다 2배도 넘게 나이가 많은, 거의 교수님들급의 나이를 갖고 있는, 40대의 아시안 아줌마였다.

교수님들의 말을 혼자만 못 알아들어서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옆자리 친구가 알려주는 일은 다반사였고, 동문서답은 내 이미지가 되었다.(이건 지금도 가끔씩.. 아이들이 부끄러워한다.)

전공 수업시간에는 젊은 친구들의 스몰톡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서 혼자 딴짓을 하며 앉아있었고 학기마다 두 번씩 있는 발표시간은 미리 양해를 구하고 원고를 써와서 읽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나아보고자 Public Speaking 과목을 수강해서 말하기 연습도 많이 해보는 등 노력에 노력을 더해봤지만, 학교에서 잠시 듣고 쓰는 영어만으로 말하기 실력을 늘리기엔 역부족이었다.

give up이라는 표현 대신에 forgive라고 말한 것을 나중에 깨닫고 부끄러움에 혼자 이불킥을 한 적도 있고(찰떡같이 알아들어 주신 교수님 정말 감사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필요 이외에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의도하지 않게 조용하고 사려 깊은 학생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혼자 작업을 하며 2년 본과를 마치게 되었다.

이후 나의 영어 듣기와 말하기는, 캐나다에서 일을 했던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의 실전훈련에서 늘게 된다.


내가 이렇게 이불킥 영어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아이들의 영어는..

뜻하지 않은 최고의 과외 선생님을 만나, 놀라울 만큼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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