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좋은 영어 과외 선생님이라니!
미국에 간 지 7개월 만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미국은 월세집을 구하는 시스템이 한국이나 중국과는 너무도 달랐다.
중국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부동산들이 많아서, 이사 희망 날짜와 구하는 집의 조건을 알려주면 그들이 알아서 찾아보고 알려주었다.
리스트를 보고 마음에 드는 집들을 보러 다닌 후 여러 사항들을 조율한 후 계약서를 작성, 1달치 보증금과 첫 달 월세, 혹은 몇 달 치를 지불하면 계약 끝, 이사만 하면 되는 편리한 구조였는데..
미국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단 월세를 중개해 주는 중개인이 없었다.
리얼터는 모두 매매 계약만 해주는 사람들이었고 집을 구하는 사람이 직접 부동산 사이트를 보고 찾아야만 했다.
한국과 중국의 편리함만을 생각하다가 부딪힌 미국 현실은 정신이 없었고 렌트를 찾느라 2-3개월은 걸렸던 거 같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싱글하우스와 타운하우스를 보러 다니다가 현실을 깨닫고 아파트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잔디와 집안 관리도 혼자서는 자신이 없었지만 렌트비 외에 집이 크면 그만큼 나가는 유틸리티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남편이 중국에서 보내주는 유학자금으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아끼고 또 아껴야 했었다.
그렇게 열심히 찾게 된 타운하우스 형태의 아파트.
우리 세 모녀만의 미국에서의 첫 보금자리였다.
미국에서의 크레딧이 1도 없는 유학생의 신분으로 렌트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예 집을 보여주지도 않는 곳들도 많았다.
다니던 학교의 학생 신분을 보증으로 내걸고, 전 집주인으로 이모를 올려놓고, 2달치 렌트비를 디파짓으로 미리 내는 조건으로 겨우 들어갈 수 있었던 우리만의 작은 2층 집.
1층에 거실과 주방이, 2층에 욕실과 방 2개가 있는, 아이들은 그 소박한 집을 너무도 좋아했고, 캐나다로 옮겨가기까지 3년이 넘는 시간을 살게 된다.
아직 코로나 팬데믹 중이라 아이들도 나도 온라인 수업으로 그 해 겨울을 지냈고 이듬해 봄, 3월에 아이들이 드디어 주 3회 등교를 하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을 10개월 정도 했던 터라 귀는 어느 정도 트여있었지만 코로나 시국, 작은 한인 교회의 한국 어르신들을 한 번씩 만나는 것 외에 어떤 만남도 없던 터라 아이들의 영어 말하기는 형편이 없었다.
등교를 하게 된 둘째는 당시 2학년이었는데, 여러 가지 틱증상이 돌아가며 오기 시작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 여자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말이 필요 없는 운동을 하며 남자아이들과 어울렸고
친구를 사귀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4학년이던 큰 아이는 의젓하게 잘 다니며 나름 아는 영어를 총동원해서 친구도 만들고 잘 지내는 줄로만 알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등교를 하며 아이들의 영어 말하기가 조금씩 늘어갔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ESL 프로그램의 도움도 받으며 미국 생활에 젖어들며 두 번째 여름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아파트는 공용 잔디가 한가운데에 있고 아파트 건물이 ㄷ자로 늘어있는, 총 14 가구가 있는 작은 단지였다. 그중 우리 집은 ㄷ자의 꺾이는 한쪽 구석 끝집이었는데, 중앙 공용 잔디 건너에 우리 아이들 또래의 백인 여자아이 한 명이 살고 있었다. 이름은 케이디. 2021년 여름 방학 첫날, 중앙 잔디에서의 풍선 치기 놀이를 시작으로 아이들은 동네 절친이자 미국 베프가 되었다.
이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케이디는 두 살 터울의 우리 아이들의 딱 중간 나이의 외동딸이었다.
프리스쿨 선생님인 엄마 헤더가 매일 새벽 출근을 하면, 방학이라 집에 있는 케이디는 아빠 라이언이 돌보았다. 8세, 9세, 10세, 세 명의 여자아이들. 방학을 맞아 아침 느지막이 눈을 뜨면 어김없이 울리는 케이디의 초인종 소리로 하루를 시작해, 백야로 아직 밝은 9시까지 놀다 가는 일상이 계속되었다.
세명의 소녀들은 놀며, 싸우며, 뒹굴며, 때로는 호수로, 수영장으로 놀러를 다니며 여름을 지냈고
거의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던 케이디는 여름이 끝날 무렵, 김에 싸 먹는 흰 밥을 좋아하는 백인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의 두 딸들은, 케이디와 뒹군 시간만큼 영어가 엄청나게 늘어있었다.
혼자여서 심심했던 케이디와 역시 아직 친구가 없었던 우리 아이들,
서로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되었던 그 해 여름.
사랑하는, 잊지 못하는 케이디와 그 가족이 그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