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둘째의 틱 이야기
아이들은 미국 생활을 정말 좋아했다.
영어가 늘어가면서 학교 생활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성적도 쑥쑥 올라갔다.
처음 미국땅을 밟을 때, 큰 아이는 만 8세, 둘째는 만 6세로 각각 초등 3학년, 1학년으로 배정을 받았지만
코로나 시국이라 학교에 바로 등록할 수 없었고, 그나마도 등록 후 1년 동안은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돌이켜 보면 영어 준비를 거의 해 오지 않았던 아이들에게, 온라인 수업은 오히려 귀가 먼저 트이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온라인 수업으로 어느 정도 귀가 트인 아이들은 4학년,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등교를 하게 되었다.
등교 후, 원래도 불안이 좀 높고 예민한 기질이었던 어린 둘째는 낯선 환경에 노출되며 대여섯 가지 틱 증상이 돌아가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 깜박임으로 시작된 틱 증상은 목 끄덕거림, 어깨 씰룩거림, 킁킁 거리는 소리, 시도 때도 없이 냄새를 맡는 초 예민함 증상과 하루에 30번도 넘게 화장실을 가는 증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불안을 낮추기 위한 스스로를 보호하는 행동이었지만 자신이 이상해 보일 것을 잘 알고 있던 아이는 증상이 심해질 때면 엎드려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 증상을 감당하곤 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큰 아이는 동생의 이런 모습을 많이 속상해하며 때로는 창피해했고, 우리를 떠나보내고 중국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이 묶인 남편은 자신이 옆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자책하며 영상 통화로나마 아이를 계속 살펴주었다. (실제로 조금씩 나아지며 없어지던 틱 증상은 캐나다에서 아빠와 다시 살게 된 이후 완전히 없어지게 되었다.)
틱 증상이 최고조에 달했을 무렵, 나는 둘째와 눈을 마주치는 연습을 시작했다.
공부와 독박 육아에도 버거운 시간들이었지만 아이의 증상이 심해지면서 영상을 찾아보며 공부를 시작했고, 이것이 불안이 높고 감각이 예민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눈 마주치고 서로 쳐다보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아이가 안정과 편안함을 느끼며 집중을 할 수 있게 돕는 방법이었다. 처음엔 10초, 며칠 후엔 15초, 그다음엔 20초.. 이렇게 시간을 늘려 가며 아무 말 없이 둘이 눈을 마주치며 쳐다보는 훈련을 했다.
동생을 창피해하는 큰 아이에게 상황 설명을 하며 언니로서의 이해를 부탁했다.
학교에서도 감사하게 너무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아이가 수 없이 화장실을 가겠다고 얘기를 하여도
뭐라고 나무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도 어렸을 때 그랬던 적이 있었노라며, 언제든 필요하면 다녀와도 된다고, 깊은 이해를 해 주셨더랬다.
실제로 이 문제를 놓고 나는 한 번도 아이에 대해서 학교에서 지적이나 메일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이런 안팎으로의 노력으로 둘째의 틱증상과 불안증세는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씩 나아지게 되었다.
둘째가 이리도 힘겹게 적응 기간을 지나고 있을 때, 큰 아이는 1년이 채 안되어 ESL 코스를 마치고 조용히 자신만의 궤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여름 동안 케이디와 쌓은 영어실력 덕분에 5학년이 되어서는 좋은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었고, 중국에서부터 배웠던 바이올린 실력 덕분에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미국 생활에 깊이 젖어들고 있었다.
큰아이도 5학년때 너무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드러내길 좋아하지 않는 성격에 적극적으로 발표나 참여를 하지 않는 큰아이를 격려하시고, 때로는 채찍질도 하시며 아이의 학업 능력을 최고로 끌어주셨다.
큰 아이는 이때부터 영어와 학업, 모든 부분에서 자신감을 갖고 미국 생활을 더 즐기기 시작했다.
미국에 간 지 2년 만에, 그것도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스스로 이룬 큰 아이의 성과는, 지금까지도 부모로서 고맙고 미안하고 가슴 한 구석이 찡한 부분이다.
그 무렵 내가 해주었던 일이라곤, 주말과 텀방학을 이용해 시애틀 지역의 놀이터와 공원을 하나씩 찾아 데려가 주고, (1일 1놀이터로, 시애틀 지역 웬만한 규모의 놀이터는 거의 다 가본 것 같다)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바닷가와 호수들에서 하루 종일 놀게 해 주었던 게 다였다. (워싱턴 주에는 정말 아름다운 호수들이 너무 많다!)
시애틀 주변의 천혜의 자연환경을 200% 누렸고, 원 없이 놀았다.
여름 방학 때는 동네 마트에서 작은 서핑 보드를 하나씩 사서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놀려주거나, 아침 먹고 간식을 챙겨서 호숫가로 가서 해지기 전까지 놀다 오곤 했다.
물론 우리의 베프 케이디도 함께!
아이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쌓여 있는 공부와 과제를 해치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