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보내주면 안 돼?

큰 아이의 이야기

by 은마마

하노이에 도착한 날은 일요일 밤이었다.

월요일에 교복을 사고 화요일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아이들은 수요일부터 등교를 시작했다.

미국과 캐나다 공립학교에서 망아지들처럼 자유롭게 지내던 아이들은 규율이 많고 다소 엄격한 영국계 국제학교를 처음부터 힘들어했다.


우리 형편에 자비로 두 아이를 국제학교에 보내는 일은 정말로 큰 결정이었다.

하노이에 있는 한국학교는 자리가 없어서 들어갈 수도 없었고, 운 좋게 자리가 난다 해도 한국 학과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입학시험을 통과하리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아이들이 되었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하노이 도착과 동시에 거의 매일을 울음으로 지내던 큰 아이는..

등교 일주일쯤 후에 울면서 애원을 했다.

"나 다시 보내주면 안 돼? 미국도 좋고 캐나다도 좋으니깐 나만이라도 다시 보내주면 안 돼? 제발..

나 여기 있으면 죽을 거 같아. 진짜 죽어버릴 거 같단 말이야!"


미국에서 초등학교 졸업 후, 7학년 한 학기를 미국에서 더 보내고 캐나다로 갔던 큰 아이는 캐나다에서도 한참 동안 힘들어했었다.

초등학교 친구들 거의 대부분이 같은 중학교로 진학을 했고, 같은 동네에서 같은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오케스트라 활동에 열중하며 몇몇 남자아이들과 풋풋한 썸도 타고, 첫 성적표에서 최고를 받으며 그 생활을 너무도 즐겁게 즐기던 아이에게 이미 예정되어 있던 캐나다로의 이사는, 알면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는 캐나다에서 한동안 미국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선물들을 부둥켜안고 울곤 했다.


캐나다에서 아빠를 만나 다시 함께 살게 되었지만, 거의 4년을 부대끼지 못했던 시간의 간극과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의 반항심, 한국식 사고방식으로 아이를 생각하던 아빠의 가부장적인 언행들로 생각보다 힘든 가족 재결합의 적응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 사이 십 대가 되어버린 큰 아이는 아빠보다 친구들이 더 소중한 나이가 되어버렸었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건너갈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의 정착지는 미국과 캐나다,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양국의 이민정책이 시시때때로 바뀌고 그에 따라 많은 일들과 계획들이 취소 및 무기한 연기가 되면서, 우리의 삶에도 다시금 큰 변화가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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