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을 쫄지 말고 말할 것

by now nina

내 책꽂이에는 사놓고 읽어지지 않는 책이 몇 권 있다.

'미움받을 용기'도 그중 한 권이다. 워낙 오랫동안 에세이 매대에 있기도 했지만 이 책을 집어 든 이유는 제목 때문이었다. '미음 받을 용기'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그러나 대화체 형식의 책은 내 취향에 맞지 않았고 책값은 제목이 다하고 말았다.




오래전, 친구 3명과 프랑스 파리를 여행할 때이다.

해외여행 경험이 별로 없던 우리는 내가 짠 일정에 따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에펠탑, 샹드리제 거리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센 강이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기억이 강렬해서 퐁네프다리를 거닐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 퐁네프 다리는 차가 달리고 있어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았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걷다 보니 빈티지 물건을 파는 가게 앞이었다.


주홍색 알이 굵은 녹이 낀 브로치, 아직도 보석빛이 살아있는 청동 귀고리, 누군가 이브닝 파티에 들었을 법한 반짝이는 새까만 비즈 지갑, 가게를 꽉 채운 신비로운 향내음, 가게 안과 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새 물건은 없었다.

로코코 시대에 사용했을 것 같은 장식장, 중세시대 기사가 사용했을 법한 투구, 물건마다 자기만의 스토리를 품은 채 세월의 흔적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가슴이 마구 뛰고 설레기 시작했다.

나는 할 수 있으면 물건 하나하나와 다 눈 맞추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냥 한번 휙 둘러보고 나가고 싶어 했다.

할 수 없이 나오려는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옷이 있었다.

많이 입어서 색이 바랜 초록색 가죽 코트였다. 대략 66 사이즈에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허리 묶는 트렌치코트 스타일이었다. 한눈에 반했다.

그 당시 우리는 끼니를 햄버거로 때우거나 마트에서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사서 먹는 가난한 여행자였다.

얼마 남지 않은 개인 경비를 털어 사기에 비싸기도 했지만 로마로 넘어가는 짐가방에

구겨 넣기에는 부피 또한 컸다.

친구들은 나를 끌고 나가려고 하지만 나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친구가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비싸기도 하지만 남이 입던 옷을 어떻게 입겠다는 거야? 찝찝하지 않아?"

내가 매혹당한 물건들이 친구(친구들)에게는 찝찝한 물건이었다.


나의 상식이 너의 상식과 맞지 않을 때 우리는 무력감을 느낀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다. 그래서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는 쪽을 택한다.

무엇을 왜 좋아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명쾌하고 논리적이기보다 모호하고 애매할 때가 많다.

때로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을수록 더 강한 힘으로 끌어당기는 것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좋아서 선택했다면 이유를 굳이 밝힐 필요는 없다.

좋으면 그냥 좋다고 말해버리면 된다.

세상에 이해받기 위해서 옷 입는 것이 아니라 나 좋을러고 입는 것이다.


' 누군가 입어서 찝찝한 게 아니라 누군가 입었기 때문에 지금의 낡음과 색 바람으로 존재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옷이 너무 좋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친구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초록색 가죽 코트를 구입했다.




결국 옷 입기에서도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수 타인의 취향과 다르다 하더라도 쫄지 말고 말하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쫄지 않고 말할 때 세상을 즐겁게 못해도 최소한 나 자신을 즐겁게 할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 초록색 양털 머플러를 구입했다. 적당히 낡은 가죽 트렌치에 풍성한 털 머플러를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멋지다는 친구들의 칭찬은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은 만족감을 거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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