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불가능한 나로 살기 위해
직장 새내기 시절, 사촌의 결혼식이 있었다.
'너는 옷이 그게 뭐니, 선생이면 좀 선생답게 입어야지'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언니의 말에 나쁜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언니가 생각하는 ‘선생답게’는 내가 입은 폭넓은 플레어 가죽 스커트에 화려한 베이지 실크 블라우스보다는 단정하고 얌전한 옷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름이 되자 공무원의 품위 유지 어쩌고 하는 옷차림을 단속하는 공문이 내려와 숨 막힘을 느끼는 중인데 언니의 그 말은 뇌관을 건드렸다. 아니, 도대체 선생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애들이랑 있을 때 선생이지, 언니 앞에서 선생이야?’ 대꾸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친척 어른들은 나를 말대답하는 못된 아이로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들의 기억을 소환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못된 아이가 아니라 착한 어른이니까.
사범대를 가야 했을 때 유아교육학과를 선택한 것은, 사춘기 중고등학생보다는 유치원 아이들이 귀여울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조금 짧았다. 아이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동시에 나는 공립 유치원 교사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직장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직장동료는 교대 출신의 초등교사들이었다.
학교에서 마주치는 동료들은 나의 옷차림에 관심을 가졌다. 민소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으면 여름에 청바지가 덥지 않은지, 큰 가방을 들고 다니면 여행 가는지 물어왔다.
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차림이 다른 사람에게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었다.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길은 그들과 비슷해지는 거다.
직장경력이 쌓일수록 의식하지 못한 사이 나는 조금씩 ‘선생답게’ 입기 시작했다.
친구와 약속이 있는 어느 주말 아침, 옷장을 열어보니 입을 옷이 없었다.
무채색 포멀한 재킷, 벨트가 달린 얌전한 원피스, 정장 바지와 블라우스, 그 많은 옷들이 모두 비슷비슷하다.
옷장에 원래의 자유로웠던 나는 없고 틀에 박힌 교사만 가득했다.
아마 그래서 일 것이다. 뉴욕을 갈망한 것도.
처음 뉴욕 JFK 공항에서 내쉬던 그 편한 숨을 잊지 못한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
브레인 워시(Brain Wash)가 일어났다.
자유인으로 그곳에 서서 온갖 역할을 벗어버린 나를 느꼈다.
마약을 하거나 대단한 일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입든 상관하지 않는 땅에 있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옷을 입은 것은 아니다.
끈 원피스를 입고 목이 깊게 파인 티셔츠를 입고 다리를 드러내고 미니팬츠를 입었다. 그렇게 입고 구게하임 미술관을 가고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고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즐겼다. 불빛이 쏟아지는 맨해튼의 밤을 누비며 자유로움을 한껏 들이켰다.
뉴욕에서의 2주는 금방 지나갔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고작 그런 옷을 입고 그렇게 행복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비행기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대단한 옷을 입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교사답게’의 틀을 벗고 '나 자신'으로 돌아와서 행복한 것이었다. 옷은 그냥 표상일 뿐이었다.
사회에 나가는 순간 우리에게는 역할이 주어진다.
군인답게, 의사답게, 교사답게, 우리는 각각의 역할에 대해 기대를 품는다. 의사다워 보이는 선생님에게 신뢰가 가고, 교사다워 보이는 사람에게 내 아이를 맡기고 싶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은 바람직하며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역할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분야의 일을 직업으로 삼아 덕업 일치를 이룬 사람들은 분명 행운아이다. 굳이 역할과 나를 분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역할이 곧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직업인으로서의 우리의 모습은 소중하다고 해도 전부는 아니다.
아무리 몸에 맞는 옷이라 해도 24시간 입고 살 수는 없다.
평생 아이폰과 아이패드만 가지고 일만 했을 것 같은 스티브 잡스가 명상과 요가 마니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스탠드 조명 하나로 불을 밝힌 어둡고 텅 빈 실내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찻잔을 손에 쥔 그가 정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사진을 보았다. 검정 터틀넥과 리바이스 501을 벗고 편안한 요가복을 입은 사진 속 그는 애플의 CEO 대신 자신에게 충실한 자연인으로 보였다.
스티브 잡스에 비춰보기엔 우리 삶이 소소하긴 하지만, 아무리 무거운 역할을 지고 산다 해도 역할의 옷을 벗고 자연인인 나로 돌아오는 시간은 필요하다.
직장의 옷은 퇴근하면서 벗어버리자.
의사가 의사 가운을 벗듯이, 노동자가 작업복을 벗듯이,
퇴근과 동시에 역할의 옷을 벗어두고 나오자.
조직의 틀에서 벗어나자.
우리에게는 ‘역할답게’를 벗고 ‘나답게’를 입을 시간이 필요하다.
‘나답게’를 입고 살 때만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나의 인생을 살 수 있다.
나는 날마다 뉴욕으로 퇴근한다.
물론 잘 안 되는 날도 있다.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뉴욕 근처에 가보지도 못하고 지쳐 쓰러져 버릴 때도 있다. 오래 입다 보니 역할이 문신처럼 몸에 새겨져 벗겨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기필코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당신도 퇴근과 동시에 조직의 옷을 벗고
당신 자신으로 돌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