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갓 졸업했을 무렵, 나는 시골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니는 시외버스는 인근 직장인의 통근버스였다. 버스는 파출소, 면사무소를 지나 바닷가 작은 초등학교에 나를 내려주고 해양연구소와 다른 초등학교를 거쳐 터미널로 돌아왔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늘 같은 시간에 타는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의 직업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생 때 즐겨 입던 치마를 입고 버스를 타면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눈길들이 쏠려옴을 느꼈다. 주목받고 있다는 느낌은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한 감정이었다. 그럴 즈음 동료 교사가 같은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다른 학교 남교사들이 나를 두고 ‘결혼만 안 했으면 나도 저런 여자랑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험담을 했다는 것을 전해 주었다. 키 크고 옷 잘 입는 멋쟁이라 그런 것이라는 모호한 칭찬으로 얘기를 마무리했다.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 별 볼일 없는 사람들도 다 있다고 웃어넘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쓰였다. 버스 안에서 달라붙는 눈길들이 음흉하게 느껴지고 마치 내 잘못으로 술자리 안주거리가 된 것 같았다. 결국 짧은 치마 대신 긴 청바지로 다리를 가렸다.
어릴 때부터 멋 부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친구들 집에 몰려다니면 보자기를 둘러쓰고 패션쇼를 했고 패션 잡지를 정기 구독하며 마음에 드는 스타일은 따로 스크랩해서 파일로 모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고도 옷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 그렇게 움츠려 들자 옷을 입을 때마다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었다. 평범한 티셔츠를 입을 때에도 목이 너무 파였는지, 버스 손잡이를 잡으면 겨드랑이가 보일지 신경 쓰였다. 사회 초년생이었고, 시골 생활은 처음이었던 나는 그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어쩔 줄을 몰랐다.
몇 년 후 전근 간 학교에서 대학 친구 S를 만났다.
그녀는 짙은 화장에 부푼 파마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녔다. 커다란 링 귀고리에 몸매가 드러나는 롱원피스를 입고 여름에도 부츠를 신었다. 보수적인 교직 사회에서 그녀의 파격적인 패션은 늘 뒷담화 거리였다. 그러나, 내가 정말 놀랬던 건 그녀의 패션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대처하는 그녀의 태도였다. 그녀는 앞에서 웃으며 칭찬의 말을 늘여놓고 뒤에서는 험담하는 사람들을 알면서도 조금의 불쾌도 드러내지 않았다. 한마디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 S와 쇼핑을 가게 되었다.
매장에 옷들을 보고 있는데 “ 너, 대학 시절 멋쟁이여서 좋아했는데, 이제는 공무원 같은 옷만 고르네” 했다. 친구의 그 말을 듣기 전까지 재킷에 청바지를 교복처럼 입고 다니면서도 나는 내가 여전히 멋쟁인 줄 알았다. 조금이라도 몸매가 드러나거나 눈에 띄는 옷은 아예 보지 않고 평범하고 무난한 옷만 찾고 있는 나를 몰랐다. 나는 내가 자존감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눈치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입고 싶은 옷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먼저 생각하고 옷을 고르고 있었다.
뒷담화를 겪어도 친구는 영향받지 않는데 왜 나는 움츠려 들었던 것일까?
뒷담화를 당하니 세상이 전부 나에게 등을 돌린 것 같았다. 나만 빼고 모두가 한편을 먹고 나를 밀어내는 것 같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평가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뒷담화의 원인을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옷을 잘못 입어서 술자리 안주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신임 여교사 말고는 다른 흥밋거리가 없는 그들의 무료한 일상 탓이 아니고, 성희롱 뒷담화를 시샘하듯 내게 일러준 서너 살 많은 동료 탓도 아니었다. 젊음이라는 원죄도 모자라 긴 다리를 드러내고 짧은 치마를 입은 탓이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탓이고 어쩌다 빨간 매니큐어를 칠한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 눈에도 띄지 않고 아무도 입 대지 못할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의 뒷담화 대상이 되지 않으려고 나를 고쳐나갔다. 우리는 타인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비슷해지기로 결정한다. 남들과 같은 옷을 입고 남들과 같은 식사를 하고 그렇게 비슷한 모습으로 나를 맞추어 나간다. 무난하고 비슷한 삶을 추구하는 사이 내 진짜 모습은 잃어버리게 된다. 결국 자유롭고 멋 부리기 좋아하던 원래의 나와는 멀어져 버렸다.
친구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입었고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독특한 패션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라 그녀 다운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한다. 내 장점도 비판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내 부족함도 개성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 새내기 직장인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론 타협하고 맞춰나가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고 움츠려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뒷담화에 귀 기울이는 대신 뒷담화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바다에 파도가 일 듯 세상에는 뒷담화가 일어난다.
그러나 내가 흘려보내면, 들썩거리며 밀려오던 파도가 마지막엔 물거품으로 사라지듯이 뒷담화도 그렇게 사라진다.
* 나의 본질은 내 안에 있으며 내 뒤에서 일어나는 평가로 바뀌지 않으며 바뀔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