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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 nina May 27. 2022

사랑의 주도권을 함께 가지고 갈 것

시소는 체중이 비슷한 두 사람이 탔을 때 가장 재밌다

후배 부부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커플이었다.

키 크고 잘생긴 남편에 연예인 미모의 아내, 두 사람 다 전문직 맞벌이이다.

후배 남편은 상냥하고 어찌나 예의가 바른 지, 낯가리는 우리 남편과도 잘 어울렸다.

남자들은 ‘주식투자’라는 공통 화제가 있었고 애들 나이도 비슷해 휴일이면 가족 단위로 여행을 다녔다.




  강릉의 펜션에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낼 때이다.

일찍 저녁을 먹고 난 후 여유롭게 시내 구경이나 가자며 각자 방에서 준비 중이었다. 

그때 “부끄러워서 당신이랑 같이 못 다니겠어. 왜 이렇게 촌스러워, 옷 좀 잘 입어!”

하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지막하지만 강한 어조였다. 너무 놀란 나는 들뜨고 좋았던 기분이 한꺼번에 가라앉는데 내가 들은 걸 모르는 후배는 평소처럼 태평했다.


다음날 후배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런 말을 듣고 왜 가만히 있느냐고. 남편은 부잣집에서 자라서 옷도 잘 입고 패션 감각이 있지만, 자신은 형제 많은 집에서 빠듯하게 자라 옷 입을 줄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의 옷차림을 지적해도 그러려니 한다고 했다. 가족 모임이나 행사가 있는 날, 기껏 차려입고 나가도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타박을 한다고 했다. 기분이 나빠도 내색하지 않고 참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졌다며 나에게 옷 잘 입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제야 후배 남편의 과도한 예의 바름이 눈치보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모든 점에서 뛰어난 형과 비교되어 주눅 들어 컸다는 자조 섞인 말을 해도 해사한 얼굴에 튕겨져 나왔는데 이제야 그 말이 형태를 갖추고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다가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자신의 열등감을 투사시킨다. 미모의 아내를 통해 자신을 세우려는 어리석음이 읽힌다. 후배가 알아야 할 것은 옷 잘 입는 법이 아니라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자존감 낮은 남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이다.


그러려면 먼저 사랑하는 관계에도 주도권이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결혼은 각자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균형을 맞춰나가는 과정이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자기주장이 강해서 먼저 양보하거나 져 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 원칙이나 신념이 있었고 나 역시 물러날 수 없는 나만의 방식이 있었다. 그래서 의견대립이 일어나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상처를 입었다. 당시에는 당장에 이혼하고 싶었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위해 맞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시소는 두 사람의 체중이 비슷할 때 가장 재미있는 기구이다.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무거우면 다른 쪽은 발을 동동 굴려도 마음대로 내려오지 못한다. 올려진 쪽은 언제 나를 떨어뜨릴지 불안해하며 상대방의 선의에 내 행복을 맡겨야 한다.

결혼이라는 시소에 올라탔다면 힘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랑하는 관계에서 어느 한쪽으로 주도권이 쏠리면 다른 한쪽은 원하지 않는 일들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주도권을 쥔 쪽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강압적이 되어간다. 잘못은 남편에게 있는데 아내에게 고치라고 한다. 양보와 인내는 아름다운 덕목이지만, 어느 한쪽에만 요구될 때  결국 모두 행복하지 않다.


우리 부부는 사랑의 시소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부분과 물러서야 할 자리를 알게 되었다. 나 혼자만 이해하고 참는 것으로는 오랜 세월을 살아갈 수 없다.  눈앞의 평화를 위해 참기보다 장기적인 행복을 위해 그동안 침묵으로 일임한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옷 잘 입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이 입어보고 스스로 만족하는 스타일을 서서히 찾아 나가면 된다.

그러나 무슨 옷을 입든 내가 알아서 정하고 그것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매일 내가 입을 옷을 내 마음대로 하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결코 시시한 일은 아니며, 내 삶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는 매일의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있다면,

시소에 발이 닿지 않아 불안하다면,

어떤 옷을 입든지 내가 알아서 입겠다고 선언하자.

내가 입은 옷 속에 삶의 주도권이 깃들어 있다.



 * 시소 높이 오르는 기쁨은 스스로 땅에 내려올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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