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지 못해도 쉽게 결론짓지 않는다
검정 박시 재킷 아래 흰색 면 롱치마를 치렁치렁하게 끌고 다니는 사람은 분명 남자이다. 익숙하지 않은 차림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돌아보고 싶어 진다. 그러나 내가 누리고 싶은 만큼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이 호기심을 이긴다. 돌아가던 고개를 붙잡아 세운다.
직장에서 만난 후배를 서로 알아갈 때였다.
어느 날 후배가 호피 무늬 가득한 블라우스를 입고 나타났다. 말 없고 얌전한 평소 이미지와 너무 맞지 않는 옷차림에 놀란 나는 “블라우스 무슨 일이야?”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농담을 꾹 눌려 넣었다. 대신 “오, 멋진데!” 내 표정이 당혹이 아니라 감탄으로 보이길 바라면서 얼른 말했다.
속으로 생각한 것이 밖으로 바로 드러나 보이는 내가 그때 말을 삼킬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 친구는 호피 무늬에 진심이었다. 평범한 검정 티셔츠 위에 호피 뷔스티에를 입었고, 호피 가방, 호피 신발, 호피 마스크까지 아이템도 다양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존중하기로 마음먹으니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 호피 블라우스를 보고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던 이유는 아직 친해지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알던 막연한 사이였으면 생각 없이 해 버렸을 말이었다.
우리는 가깝다는 이유로 쉽게 끼어들고 간섭한다.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도 악의가 없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블라우스 무슨 일이냐는 말은 농담이었지만 그녀의 취향에 대한 존중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불쑥 튀어나오려던 말에는 은연중에 편견과 판단이 들어있었지만 장난이니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내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자신의 취향에 대해 놀리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 눈에 비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존재이다.
그러니 공감하지 못하더라도 타인에 대해 쉽게 결론 내리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입고 싶으면서 타인은 내 기준을 내세워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 난다.
작가 은유는 ‘우리는 자기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남을 대한다’고 했다. 내가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이것은 선순환이어서 타인에게 너그러워지면 자신에게도 관대해진다. 다른 사람의 옷이나 행동에 분별하려는 마음을 거두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는 오롯이 자신이 누리게 된다. 늘어난 여유만큼 자유로움을 누린다.
남자가 치마 입는 것쯤이야 아무런 문제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다.
* 남을 판단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내가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