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식 주차장에서 죽을 각오를 하다

죽음만큼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기를

by now nina



부산에 이사하고 제일 불편한 점이 타워식 주차장이다.
넓고 쾌적한 도로 옆 쭉쭉 뻗은 아름다운 고층빌딩은 대부분 그 속에 타워주차장을 품고 있다.
내가 자주 가는 빌딩의 지하 주차창은 열서넛 대 정도의 차만 주차할 수 있고 나머지는 모두 타워 주차를 해야 한다. 빌딩 주차 관리인은 그 날의 기분과 기준에 따라 열 번 가면 한번 정도는 지하주차장 주차를 허락해주고 나머지 아홉 번은 타워 주차로 이끈다. 먼저 수신호에 따라 둥그란 회전판 위에 차를 올리면 적응할 사이도 없이 회전판이 돌고 차는 낮은 창고 같은 곳으로 직진해 들어가야 한다.

동승자는 내리고 그 불안한 곳으로 혼자 들어간다. 차체 길이만큼 짧은 거리를 살짝살짝 액셀을 밟아가다 붉은 등이 켜지면 정지이다. 폭은 얼마나 좁은지 테트리스 하듯 차를 반듯하게 일자로 세우지 못하면 한쪽 바퀴가 주차 철판에 끼이듯이 들어가진다.
사이드 미러 접고 불안한 마음을 추스르며 차 안에 널브러져 있는 가방과 핸드폰 등을 주섬주섬 챙겨서 차에서 내리면 구멍이 숭숭 뚫린 주차장 철판 바닥 사이로 아득한 아래가 언뜻 보인다. 순간 핸드폰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주고 긴장하게 된다. 그리고 뒤에서 누가 덜미라도 잡는 것처럼 얼른 차를 두고 몸만 빠져나온다. 지금 한 발자국을 빨리 떼지 않으면 차와 함께 바닥으로 내려앉기라고 하는 것처럼 서두른다.

타워 주차를 무사히 마치고 볼일을 보고 난 다음 더 큰 문제는 차를 뺄 때이다. 이번에도 동승자는 밖에 세워두고 혼자 저 무서운 곳으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더 큰 마음을 먹고 차에 올라탄다. 그 잠시 잠깐의 순간 이대로 차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서 나온다. 눈앞에 단단해 보이는 바닥으로 차 네 바퀴를 다 올렸을 때는 다시 삶으로 무사히 안착한 느낌이 든다.

누구는 나의 이런 심정이 이해하기 힘든 과한 반응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나의 이런 원시적인 두려움은 물질에 대한 지식의 결여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차량의 강도가 얼마이고 주차장을 떠받치고 있는 철판의 강도가 얼마여서 어느 정도의 무게를 견딘다고 하는 그런 상식이 있다면 이런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두려움을 가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우리의 무지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미지의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다. 죽음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어서 죽으니 어떠하더라 하는 지식의 축척되어 있다면 아마 인간은 죽음조차 뛰어넘을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죽음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끝도 없는 삶을 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면 타워주차장에서 주차할 때 보다 더 모골이 송연해진다.


삶은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답고 절실한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만큼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할 이유이다.


그나저나 나는 오늘도 지하주차를 할 수 있을까 주차관리인 아저씨에게 만면의 웃음으로 인사해 봤지만, 여지없이 둥그런 회전판에 올려져 차와 함께 죽음의 바닥으로 꺼져도 어쩔 수 없다는 각오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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