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마시기

최종적으로 한량이 되고 싶은 내 인생의 청사진

by now nina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술잔 세며 한없이 먹세 그려
- 정철 권주가-


대학교 4학년이 되고도 코로나 블루에 빠져 꼼짝도 하지 않던 딸이 지난주부터 마음을 잡고 공무원 시험을 쳐보겠다고 나섰다. 시험까지 대략 4개월 남았는데, 합격을 기대하기보다 뭐라도 해보겠다고 독서실로 나서니 그저 반가운 마음이다. 일요일이라 문을 연 식당이 없다고 2인분 시켜야 하는 낙곱새를 같이 먹자고 카톡이 왔다. 집 앞이라 세수도 안 한 얼굴에 마스크를 덮어쓰고 나서본다.


딸이 점심을 청해올 줄 모르고 집에서 이미 군고구마 2개를 먹고 난 뒤라 밥을 보고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대신 빨간 양념 속에 낙지와 새우와 곱창이 함께 익는 걸 보니 술 생각이 난다.

“소주가 좋을까? 맥주가 좋을까?”

“둘 다 좋을 것 같아”

“여기 소주 하나, 맥주 하나 주세요”


우와 달다, 생각보다 맛있네


처음 술을 마신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시험기간 때였다. 친구 부모님이 여행을 가시고 난 집에 친구와 나는 시험공부를 위해 넓은 사각 상을 펴고 앉았다. 상 위에는 꼬깔콘, 귤, 커피믹스 등 밤샘 공부를 위한 준비가 가득했다. 그러다 찬장에 친구 엄마가 만들어두신 담금주에 눈길이 갔다. 우리는 호기심에 살짝 맛만 보기로 했다.


“우와, 달다. 생각보다 맛있네.”

살짝 맛만 보려던 마음과는 달리 손은 다시 담금주로 향한다. 들키지 않게 표시 나지 않게 조심하던 처음 마음은 담금주 두어 잔에 사라져 버리고 과자를 안주 삼아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시험 점수와 성적 걱정이,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이 다 시시해져 버리고 마음은 세상 무슨 일이든 다 품어낼 수 있을 것 같이 부풀어 오른다. 나를 옥죄던 긴장과 스트레스가 다 사라지고 세상 누구보다 자신 있고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술 취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깥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친구 부모님 돌아오시기 전에 담금주를 원상복귀 해 놓아야 했다. 우리는 문도 아직 열지 않은 슈퍼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가 소주 3병을 사다 부었다.


대학생이 되고 술 마실 핑계는 매일 있었다.

‘풍다우주' 바람 부는 날엔 차를 마시고 비 오는 날엔 술을 마신다.

시장 막걸리 집에서, 학교 앞 소주 집에서 , 저녁 먹는 식당에서, 우리는 매일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 당시 술 마시는 법칙은 단 하나, 술 한잔에 안주 한 젓가락이었다. 80년대 가난한 대학생이 술을 마시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술은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물론, 술이 인간을 개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경험이 다르고, 다른 모든 것처럼 각자의 정답이 있을 뿐이다) 어쨌든 내 생각은 그랬다. 아니, 지금도 그렇다. 이면이 없는 것은 없다. 동전에 앞 뒷면이 있듯이, 선과 악이 있듯이. 낮과 밤이 있듯이, 음과 양이 있듯이 술도 그럴 뿐이다.


다른 자랑거리가 없으니 이런 것도 자랑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잘 마신다’는 것이 술이 세다는 의미보다는 내 양을 내가 안다는 거다. 술이 정신을 잡아먹고 나를 삼켜 버리기 전에 위장에서 술이 받지 않아서 더 이상 못 마신다. 그러니 자주 마셔도 기억이 없다든가 미쳐 날뛸 기회는 거의 없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속에서 스톱 신호를 보낸다. 젊은 날 그것을 어기고 더 마셨다가 명치에서 시작한 구토가 온 몸을 휘젓다가 기어코 먹은 것을 눈물 콧물과 함께 다 토해내는 주접을 떨어야 했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미어지는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였으나, 술에 취한 고통을 당해 보니 실연의 아픔은 새까맣게 사소해지고 전봇대를 잡고 빨리 이 숙취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호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술을 조절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러고도 두어 번 숙취로 고생한 일이 있지만 술을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으니 애주가를 자처해도 될 것 같다.

낮술은 흔하지 않다.

술은 보통 어스름 저녁에 시작해 깜깜한 밤을 배경으로 마시게 된다. 낮술은 흔하지 않다.

아이가 어렸을 때 설악산으로 여름휴가를 갔다가 돌아오는 날, 속초에서 점심을 먹고 내러 가기로 했다. 정갈한 식당은 아귀찜 전문집이었다. 맛 집이었는지 방석을 깔고 앉은 손님들이 여기저기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 눈길을 끄는 테이블이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 세 분과 남성분이 함께 어울려 아귀찜을 드시고 계셨다. 한 눈에도 현지인처럼 보였다. 바쁠 것 없는 대화를 하며 느긋하게 식사를 하시는데 테이블에 소주병이 보인다.

젊은 시절엔 왜 그리 할 일이 많았을까? 휴가를 가서도 아이에게 보여줘야 할 곳과 거기까지 간 김에 해봐야 할 것들이 숙제처럼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의 피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 집에 가려면 7번 국도를 타고 족히 4시간을 달려가야 할 터였다. 도착하고 나면 또 어떤가? 여행 짐을 풀어야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다시 직장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50대 아줌마들 사이에 끼여 앉아 같이 소주를 마시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들처럼 한갓지게 한낮의 시간을 술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바쁘게 차를 달려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어둠에 쫓겨 급히 술잔을 털어 넣지 않아도 되는 ‘자기 동네에서 낮술 마시기’는 그때부터 나의 로망이 되었다. 시시해서 더 좋은 나의 버킷리스트이다.


그러나 시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낮술을 마시려면 일단 건강해야 한다. 낮술을 이길 만한 체력이 있어야 한다. 술은 참 매력적인 물건이지만 내가 술을 마실 때에 한한다. 술이 나를 마시면 이 행복도 끝이다. 그래서 소소한 이 행복을 위해 나는 건강의 목표를 ‘술 마실 수 있는 노년’으로 잡는다. 그 정도 건강이면 충분히 감사하다.




맥주 한 병, 소주 반 병을 반주삼아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차츰차츰 꿈의 크기를 줄여나가는 딸의 노리끼리한 안색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늘어져 있는 딸에게 잔소리만 해대었는데 오늘은 낮술 한잔에 숨어있던 속마음이 새어 나온다. "네가 목표를 잡고 공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네가 시험에 붙는다 해도 엄마는 걱정이야. 네가 벌써 취직하고 돈 버는 인생을 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딸의 눈빛이 순간 출렁인다. 그러나 딸은 곧 심상하게 한 마디 한다. "이제 공부 시작한 지 1주일 됐는데 뭐"


이러면 안 되는데


김상배 시인의 ‘낮술’이라는 시는 달랑 일곱 자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뒤에 내가 후렴을 붙여 노래를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좋아 안 되는데’

바깥은 겨울 한 낮 햇빛이 쨍하고 술잔은 지금 내 앞에 있다.